남미 해방신학 현장을 가다
1.그들은 빨갱이였을까.2.키리츠 목사의 목회 신십계명3.해방신학 선구자 성정모 교수 인터뷰4.브라질 갱들이 한인교회 돕는 이유는5.민중들과 함께 성서를 읽어보니6.목사 후보생들이 해방신학 현장을 둘러본 소감은7.아르헨티나 문한림 주교가 20년간 지켜본 프란치스코 교황은8.김근수 <행동하는 예수>저자 인터뷰9.`더러운 전쟁'의 아르헨티나10.아르헨 개신교지도자가 본 `프란치스코 생각'
아르헨티나 개신교연맹의장 레스토르 미게스 목사
지난해 12월 한 모임에 참석한 모임에서 어린이가 프란치스코 교황의 모자를 벗기자 웃고 있다. AP 뉴시스
8월 방한을 앞둔 가톨릭 수장 프란치스코 교황의 인기는 연이어 상종가다. 지난달 미국 경제전문지 <포천>이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지도자 50인’ 가운데 그는 1위에 올랐다. 또 최근 미국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바티칸에서 그를 만나 ‘프란치스코 교황을 몹시 숭배한다’고 고백하기도했다.
1년 전 교황에 선출되기 전 그가 어떤 인물이었는지는 주로 그와 함께 일한 아르헨티나 가톨릭 내의 전언을 통해 알려져 왔다. 그렇다면 과연 가톨릭이 아닌 이웃 종교인에게 비친 그는 어떤 사람일까. 이에 대해 비교적 상세히 전해줄 수 있는 아르헨티나의 종교지도자 네스토르 미게스(65) 목사를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만났다.
그는 아르헨티나에서 가톨릭 다음의 세력을 지닌 개신교 27개 교단 연합체인 ‘아르헨티나 개신교연맹’(FAIE) 의장이다. 남미의 대표적인 해방신학자인 호세 미게스 보니노(1924~2012)의 아들인 그는 감리교 목사이자 저명한 신약 학자이기도 하다.
미게스 목사는 18살 때부터 베르골리오 신부를 알고 있었고, 베르골리오가 대주교이던 7~8년 전부터 신학자 및 종교 지도자로서 여러 차례 대화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고 한다. 깊은 우정을 나누지는 못했지만, 가톨릭과 개신교의 양대 지도자로서 에큐메니컬 예배에 참여하며 서로 언제나 환대해주는 관계였다는 것이다.
“굉장히 심플하고 검소하고 소박한 성격이었다. 베르골리오는 성직자가 부의 축적과 명성을 추구하는 게 좋지 않다고 반대했다. 그것이 그를 바티칸까지 가게 한 것 같다. 그는 교회가 민중들에게 인정을 받음으로써 강력해지는 것이지, 부를 축적한다고 강해지는 게 아니라고 생각했다.” 미게스 목사는 2007년 브라질 아파레시다에서 베르골리오가 주도한 ‘제5차 라틴아메리카 주교회의’에 옵서버로 초청받아 참여했다고 한다. 그는 그때 베르골리오의 생각을 읽었다.
“그는 바티칸에 모든 권력이 집중된 것이 가톨릭의 위기를 초래하고 있다고 보았다. 그래서 민중들에게 밀착하는 사목적 태도를 가져야 한다고 했다. 힘이 바티칸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민중들에 의해서 나오는 교회가 진정한 교회라고 보았다.”
미게스 목사는 “베르골리오가 군사독재 시절 어떤 태도를 취했느냐는 논란이 많다”며 “베르골리오는 빈민 사역에 직접 참여한 것은 아니지만, 빈민 사역에 용기를 북돋워주고 지원해주고 빈자와 소외된 이들의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민중미사를 적극 장려한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미게스 목사는 베르골리오가 주위 사람들에게 관심을 기울이고 걱정해주는 데 남다른 태도를 지닌 사례를 들려주었다.
“내 전임 의장인 노르베르토 베르톤 목사가 병들어 요양원에 입원했을 때 베르골리오 추기경이 병문안을 와주었다. 또 베르톤이 사망했을 때 미망인에게 전화해 위로하고 격려했다. 그런데 베르골리오는 교황이 된 직후에도 이 미망인에게 전화를 했다. ‘당신을 찾지는 못하지만 언제나 기억하고 기도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개신교 목사들이 보인 것보다 더한 관심을 교황이 보여주었다.”
미게스 목사는 베르골리오에 대해 한마디로 “정치적 제스처와 태도에 능한 인물”이라고 평했다. 다양한 계층 및 부류의 사람들 사이에 적당한 중립을 유지하면서 자신을 잘 조절해왔다는 것이다. 가령 빈민지역에서 사역하는 신부들과는 ‘좋은 관계’를 유지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낙태·피임·동성애 등에 보수적인 신부들과도 ‘좋은 관계’를 가졌다는 것이다. 하지만 “베르골리오가 오푸스 데이와 같은 극우파와는 거리를 뒀다”고 회고했다.
미게스 목사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나고 자란 남미의 독특한 종교 현황도 설명해줬다. 남미는 스페인 정복시대 이전의 토착 인디오들의 영성과 가톨릭 영성이 혼재해 있다. 아르헨티나의 가톨릭은 40년 전엔 전 인구의 98%였는데, 지금은 75%로 줄었고, 그중 대부분이 냉담자이고 15%만이 성당에 나간다.
남미에서 개신교 신자가 급증해 브라질 25%, 아르헨티나 10%에 이르렀고, 과테말라의 경우 40%까지 상승했다. 대략 이런 내용이다. 전세계 가톨릭의 절반이 몰려 있는 남미에서 가톨릭의 위기를 보여주는 셈이다.
미게스 목사는 “개신교의 성장은 미국 교회가 엄청난 자본을 집중 투자해 매스미디어를 동원해 집중 광고하는 빌리 그레이엄, 루이스 팔라우, 팻 로버트슨 등을 필두로 선교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생명과 정의가 이뤄지는 세상을 앉아서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헌신과 투쟁을 통해 다가가는 해방신학을 따르는 주교부터 일반 신자 수천명이 독재 정권에 의해 살해를 당하고, 교황청에선 요한 바오로 2세와 라칭거 추기경(교황 베네딕토 16세)이 탄압했다. 베르골리오는 해방신학을 주창하는 사람은 아니었고 중도적인 입장을 취하는 사람이었다”고 말했다.
미게스 목사는 “빈자와 약자를 우선시하는 그가 교황이 된 뒤 아르헨티나에서 가톨릭 냉담자들 중 성당에 다시 나가는 사람이 늘고 있다”고 밝혔다.
부에노스아이레스/글·사진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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