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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심정 조현이만난사람

“알타이 암각화 보는 순간 선사인들과 시간여행 빠져들었죠”

등록 2020-09-07 20:40수정 2020-09-08 23:07

[짬] 조계종 백년대계본부 사무총장 일감 스님

일간 스님이 7일 전시 준비중인 서울 인사동 아라아트센터에서 자신이 찍어온 알타이 암각화 탁본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 조현 기자
일간 스님이 7일 전시 준비중인 서울 인사동 아라아트센터에서 자신이 찍어온 알타이 암각화 탁본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 조현 기자

20대 때 ‘가야산 호랑이’ 성철 스님의 책을 읽고 존재의 궁극에 대한 물음을 안은 채 해인사로 출가했던 스님이 예순을 앞두고 암각화에 미쳐 선사인들과 대화에 나섰다. 수락산 용굴암 주지이자 조계종 백년대계본부 사무총장을 맡고 있는 일감 스님이다. 그는 지난 5년간 암각화에 미쳐 탁본하고 기록한 내용을 모아 <하늘이 감춘 그림, 알타이 암각화>(불광출판사)를 펴냈다. 이어 오는 15일~21일 서울 인사동 아라아트센터 1층에서 60여점의 탁본을 전시한다. 7일 서울 인사동에서 그를 만나 “왜 왜 암각화에 빠지게 됐는지” 물었다.

2016년 지인과 러시아 알타이 여행
칼박타쉬 동산 암각화 보고 ‘미친듯’
5년간 10여차례 탐사해 책으로 출간
‘하늘이 감춘 그림, 알타이 암각화’
15일부터 탁본 60여점 인사동 전시

“피안-차안 영매처럼 현대어로 통역”

중앙아시아 고원지대에서 암각화 탁본 작업을 하다 잠시 망중한을 즐기고 있는 일감 스님. 사진 불광출판사 제공
중앙아시아 고원지대에서 암각화 탁본 작업을 하다 잠시 망중한을 즐기고 있는 일감 스님. 사진 불광출판사 제공

문자가 없던 시대 고대인들은 어떻게 삶을 개척했을까. 그들도 ‘먹고사니즘’을 넘어 신이나 초월 같은 숭고함을 갈망했을까. 지금 우리가 겪는 코로나19 사태 못지 않게 생존을 위협하는 난관을 그들은 어떻게 이겨냈을까.

일감 스님에게 이 모든 물음의 해답은 암각화에 있었다. 15년 전 수묵화가 김호석 화백의 안내로 해인사 인근 경북 고령 장기리 암각화를 처음 봤을 때만해도 그는 암각화에 대해 아는 게 없었다.

그러다 2016년 ‘러시아 알타이에 가는데, 함께 가지 않겠느냐’는 김 화백을 따라 홀린 듯 길을 나섰다. ‘우리가 알타이어족에 속하니, 그곳이 민족의 시원 아닐까’하는 막연한 생각을 했을 뿐, 알타이가 어디에 붙어있는지조차 몰랐다. 그런데 러시아 노보시비르스크를 거쳐 자동차로 꼬박 하루를 더 달려 알타이공화국에 도착한 다음날, 칼박타쉬 암각화가 새겨진 동산에 오른 그는 사랑에 빠졌다. 암각화를 본 순간 타임머신을 타고 선사시대로 이동했다.

그 뒤 휴가란 휴가는 모두 암각화와의 데이트에 썼다. 그렇게 러시아, 몽골, 키르기스스탄, 카자흐스탄을 누볐다. 언젠가는 김 화백과 종로의 한 카페에서 카자흐스탄 탐갈리 암각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 ‘이렇게 말로만 하지 말고, 바로 가보자’고 즉흥적으로 의기투합해 벼락치기 겨울 순례를 떠난 적도 있다. 눈 덮인 황무지에서 텐트를 치고 라면을 끓여 먹으며 암각화를 보러 다녔다. 또 키르기스스탄에서는 30㎏의 배낭을 짊어지고 해발 3500m의 무인지경에 올라 ‘시간 여행’을 했다. 그렇게 때론 영하 30도가 넘고, 매서운 바람이 불고, 숨 쉬기 어려운 고산증을 겪으면서도 10여차례의 암각화 탐사를 이어갔다.

일감 스님의 암각화 명상록 &lt;하늘이 감춘 그림, 알타이 암각화&gt;의 표지. 사진 불광출판사 제공
일감 스님의 암각화 명상록 <하늘이 감춘 그림, 알타이 암각화>의 표지. 사진 불광출판사 제공

그는 암각화를 학문적으로 연구한 전문가는 아니다. 그러나 금산사 템플스테이에서 참여자를 방치하는 ‘내비도 프로그램’을 만들 만큼 자유분방한 아이디어맨이자 참선 수행자이며 종교인인 그가 해내는 독특한 해석이 남다르다. 김 화백은 “스님은 학위만 없을 뿐 박사급 수준의 식견을 가지고 있다. 어떤 선입견도 없이 암각화가 말하고자 하는 떨림을 감지하는 특별한 감이 있다”고 귀띔한다.

일감 스님은 전문가들이 ‘버섯인간’이라고 명명한 그림을 ‘제사장이 밤하늘에 기도하는 모습’으로 해석하는가 하면, 암각화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빗살에 대해 “태양을 형상화한 것으로 인디언들이 머리에 쓰는 빗살 또는 부처님과 예수님 등 성인의 후광(광배)”으로 해석해 동행자의 감탄을 자아냈다. 특히 불립문자 속에서 이심전심으로 진리를 꿰뚫는 선처럼, 그는 독특한 안목으로 형상 너머의 의미를 전달했다.

“암각화는 종교화에 가까워요. 동물의 그림이 여러 겹으로 중첩된 벽화가 많은데, 동물의 영혼을 나타낸 것이에요. 수렵생활로 동물을 잡아먹을 수밖에 없지만, 죽은 동물의 영혼을 하늘로 잘 올려보내야 다시 우리 곁에 온다고 여겼던 선사인의 마음을 읽을 수 있어요. 문명인이라는 우리는 질병의 위험만 있어도 산 생명을 땅에 묻어버리는데, 그들은 오히려 잡아먹은 생명조차 이런 바위에 지극정성으로 새기며 천도를 해준 것이지요.”

일감 스님은 그렇게 구법승 혜초와 현장이 죽음을 각오하고 넘은 파미르 고원 등의 암각화를 찾아가 마치 피안과 차안을 소통하게 하는 영매처럼 암각화를 현대어로 통역해냈다. ‘지금보다 더 나은 세상으로 향상시키려는 큰 마음을 잃지 말라. 모든 사람이 곧 하늘이다. 생명 있는 것은 저마다 하늘의 성품이 있다. 근원적 신성함과 삶의 숭고함을 놓지 마라. 공동체 전체의 이익과 가치를 추구하라. 우리는 모두 한 생명이다. 마음 속의 태양을 잃지 마라’.

그가 암각화 앞에서 얼어붙은 듯 혹은 삼매에 든 듯 이심전심의 속삭임으로 얻어낸 고갱이는 만년 바위가 그를 통해 우리에게 전해주는 명상록이 아닐까.

글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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