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샤추쿨의 축제
고개 넘자 나타난 샤추쿨의 ‘굿’같은 축제
성과 속 아우르는 흥겨운 행사엔 행복감 물씬
고생 끝에 낙이 왔다. 세계에서 3번째로 높은 5360m 창라 고개를 넘으니 샤추쿨이다. ‘북쪽 고개’라는 뜻의 창라에서 몰아치는 눈보라와는 천양지차다. 평화롭기 그지 없다.
모든 것은 우연을 가장한 필연이라던가. 우리가 도착한 날은 샤추쿨 사원의 가장 성대한 축제일이었다. 순례자가 그 날에 맞춰간 것은 아니었지만, 결과적으로 샤추쿨의 모든 대중들이 순례자를 위해 준비한 축제의 장을 펼치는 것 같았다.
오지마을 사원은 학교이자 시장
오지에서 사원은 마을공동체의 구심점이다. 티베트불교 문화의 풍토에서 태어나 자라는 이들에게 사원은 마음의 귀의처이자 학교이고 시장이기도 하다. 학교를 찾아보기 어려운 오지에서 사원은 동자승학교를 둔 학교다. 또 축제 때가 되면 마을 사람들은 팔 물건을 가지고 나와 펼쳐놓아 사원은 난장이 열린다. 이날도 마을 사람들은 일찍부터 가족단위로 소풍을 나와 풀밭에 앉아 놀면서 난장을 둘러보기도 했다.
축제는 티베트의 길고 긴 나팔 ‘둥첸’ 소리로부터 시작됐다. 우리나라도 사찰에서 종과 북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티베트에선 어느 법당에 가든지 소라나팔인 둥카르를 볼 수 있다. 히말라야가 오래 전 바다였다가 융기한 땅인 때문일까. 히말라야의 고찰들에선 바다의 향수를 그리듯 둥카르 소리가 울려퍼진다. 새벽마다 13번씩 울려퍼지는 둥카르소리를 들으며 라다크 사람들은 미망에서 깨어나 깨달음을 향한 보리심으로 돌아간다.
바다향수 그리는 소라나팔이 새벽 깨워
티베트 사원에서 축제는 스님들이 직접 악기를 불고 경전을 읽고 노래를 하고 춤을 춘다. 그들이 입고 나서는 빨강 파랑 노랑의 원색 복장들은 화려하기 그지없다. 그처럼 화려한 복식을 입거나 탈을 쓴 채 자신을 잃은 것처럼 춤과 하나가 된 모습은 우리나라의 굿을 연상케한다.
달라이라마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 <쿤둔>을 보면 10대의 달라이라마가 나라의 중요 시기 때마다 점을 쳐주는 네충 라마로부터 신탁을 받는 대목이 나온다. 중국 침공으로 달라이 라마가 살해당할지도 모른다는 위협이 팽배한 당시 춤을 추어 신탁을 받은 네충은 달라이 라마에게 바로 그날 밤이 망명할 때임을 예시해준다. 네충의 모습은 굿판에서 영혼과 하나가 된 무속인과 한가지다. 1300여년 전 불교가 들어가기 전 성행했던 토속신앙인 뵌교의 영향으로 토속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티베트불교의 무속 문화는 지금도 불교 문화 속에서 그 명맥을 고스란히 이어오고 있다.
10여명이 둥첸을 불고, 다른 10여명이 경전을 암송하는 가운데 화려한 옷을 입은 무희들이 등장한다. 정화수로 장내를 정화한 뒤 여러가지 형상으로 만들어진 제물을 차려놓고 그 둘레에서 무희들은 신들린 듯이 춤을 춘다. 한바탕 춤이 끝나면 다시 둥첸 소리가 울려퍼지고, 둥첸소리가 끝나면 다시 경전 암송이 시작된다. 이렇게 반복되는 축제는 서너시간 동안 계속된다.
제물 둘레에서 무희들 신들린 듯 춤춰
무희들은 화살을 쏘아 악령을 맞추어 악귀를 제압한다. 그리고 다시 춤을 춘다. 그 악귀는 수행자들에겐 마음 속의 마장이다.
축제의 막판이 되면 모든 제물을 들고 절문 밖으로 가지고 나간다. 절 밖으로 나가면 그 동안 구경꾼으로만 머물던 마을 사람들도 축제 한마당에 함께 한다. 가면을 쓴 무희는 남성 성기 모형을 들고선 마을 처녀들을 희롱한다. 커다런 성기 모형이 다가오면 처녀들은 질겁을 하고 고함을 친다. 가면을 쓴 무희는 더 신난다는듯 모형을 들고 장난을 친다. ‘스님이 어떻게 축제에서나마 저런 짓을…”하고 혀를 차는 사람이 이곳엔 없다. 성스럽고 속스러운 것을 가르기보다는 성속이 하나로 어우러지면서 이들은 행복감에 젖는다.
축제에 나선 라마(스님)들은 마침내 마을 사람들과 함께 선악의 모든 표징들인 제물들을 남김 없이 태운다.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선신도, 악신도 마침내 영원한 것은 없다. 이렇게 즐기는 축제 속에 담겨진 불교의 진리를 아는지 모르는지 그저 불은 타오른다.
사원 마당 안팎에서 축제가 펼쳐지는 사이에 절 건물 방에선 마을 사람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다. 이곳엔 또 하나의 축제가 펼쳐지고 있다. 보시 축제다. 청전 스님이 한국에서 보시받은 의약품을 쌓아놓고 마을 사람들의 요청에 따라 약을 나눠주고 있다. 일년 내내 보리 수제비만 먹고 사는 이들이 대부분인 오지 마을 사람들의 상당수는 영양 결핍이다. 그래서 영양제 하나만 먹어도 낳는 병들이 많다. 이들은 항생제도 거의 사용한 적이 없고 약을 써본 적이 거의 없어서 의약품의 효과는 놀라울 정도로 높다. 그들은 청전 스님에게 다가와 자신이 아픈 곳을 내보이며 고통을 호소한다.
절 건물 안에선 조용한 ‘보시 축제’ 열려
몸이 아픈 사람에게 약을 주고, 시력이 나빠져 경전을 읽을 수 없는 스님에겐 돋보기를 준다. 또 평생 시계 한번 차 본적이 없는 사람에게 한국인들의 집안에 버려져 있던 헌시계들을 가져와 채워주면 이들은 너무도 행복해 한다.
척박한 오지를 돌아다니면서도, 홀로 20여년 동안 정든 고국을 떠나 살아가면서도 끊임 없이 솟아나는 청전 스님의 활력과 기쁨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보시는 청전 스님이 라다크인들에게 하는 것만이 아니었다. 청전 스님은 자비를 주고 라다크인들은 행복을 주었다. 그래서 그것은 2배가 되고, 3배가 되고, 무한히 커지고 있었다. 축제는 그렇게 넓게 넓게 퍼져가고 있었다.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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