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행복공동체 리종사원
부처와 스승-제자 함께 더불어 ‘염화미소’
신성불가침의 라마나 린포체도 유머 도구
라다크는 수천수만년 동안 비가 내리지않은 지역이다. 비가 내리더라도 한두방울뿐이다. 순례 직후인 지난 6일 라다크에도 사상 최악의 폭우가 내려 지구상에서 기상이변의 예외 지역이 없음이 입증됐지만 설산 아래 대부분의 지역은 사막화한 불모지다. 라다크인들은 여름철 설산에서 눈이 녹아 흐르는 물로 겨우 보리농사를 지어 호구지책을 삼는다.
벼랑 끝 동굴에서 3년 동안 두문불출 수행해 성불
리종사원은 티베트불교 최대 종파인 겔룩파의 수장인 리종린포체의 본찰이지만 라다크의 모든 절 가운데 가장 삭막한 사찰이다. 풀 한포기가 없는 불모의 산악지역 깊숙히 자리하고 있다. 산허리를 돌고 돌아 강줄기에서 계곡 옆으로 치고 올라갈 즈음 인적없는 깊은 산속에서 웬 함성이 들린다. 아이들의 목소리다. 계곡으로 목욕하러 내려온 리종사원 동자승들이었다. 코흘리개들을 볼 때만도 절이 그 가까이에 있을 것으로 여겼다. 하지만 험한 경사를 치오르던 차가 마치 구례의 평지에서 지리산 성삼재 높이까지 오르고서야 리종사원의 모습이 드러났다. 나무와 풀은 커녕 물도 없는 삭막한 곳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모습은 어떨까.
노승들이 달려나온다. 분명히 노인들인데 천진한 어린아이의 얼굴이다. 50살만 넘어도 노인 대접을 받는 라다크에서 70살이 넘으면 상늙은이다. 노승들의 해맑은 미소가 불모지에서 나무처럼 그늘을 드리우고, 약수처럼 시원하다.
리종사원은 300여년 전 출팀 리마 존자에 의해 세워졌다. 상인이었던 리마는 20대 후반 티베트에서 불법을 만난 뒤 부인과 아들까지 출가시킨 뒤 아무도 없는 이 험준한 불모의 협곡에 들어왔다. 벼랑 끝 동굴 속에서 3년 동안 두문불출한 채 수행을 해 성불한 뒤 세운 절이다. 리종사원의 법당 안엔 외부로 통하는 통로가 봉쇄돼버린 채 리마가 안에서 용변까지 해결하며 3년을 머물던 1~2평 남짓의 동굴이 그대로 보존돼 있다. 스님들의 거처들은 경사진 동굴 옆에 개미집처럼 붙어있다.
동자승 한 명 한 명 기구한 운명…백치도 제몫
라다크의 산사엔 대부분 학교가 있다. 오지에서 사원은 정신적인 구심체일 뿐 아니라 아이들을 돌보고 기르고 가르치는 보육원이자 학교의 역할까지 한다. 맨 아래 건물엔 동자승학교와 식당이 있다. 식당에서 리종사원 20여명의 음식을 준비하는 50대 ‘공양간 거사’는 무슨 말을 해도 그저 배시시 웃기만 하는 백치다. 조그만한 신체적 장애만 있어도 출가조차 거부하는 우리나라와 달리 라다크의 사원에선 곱추와 간질병 환자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세상에 나가서는 살기 어려운 이 백치 남자도 이곳에선 부엌에서 제 몫을 하며 살아가고 있다. 최고령으로 스스로 머지않은 날에 죽을 것을 예고한 릭돌(88) 스님은 식당에서 식사를 마친 뒤 거처까지 100m 높이를 올라가는데 한두시간이 소요된다. ‘그르, 그르릉’대는 숨소리를 몰아쉬며 서너발을 옮기고는 금새 주저않아 쉬는 릭돌 스님 옆으로 ‘공양간 거사’가 다가와 손을 잡고 걷다가 릭돌 스님과 함께 앉아준다. 백치의 마음이 관세음보살의 마음이다.
10여명의 동자승들이 이 불모의 심산까지 오게 된 경위는 각각이다. 부모가 아이를 공부시킬 방도가 없어서 출가시키거나 너무 가난해 굶주림이라도 면하라고 보낸 아이도 있다. 한 아이는 계곡에서 빨래를 하던 홀어머니가 급류에 떠내려가 버려 돌볼 사람이 없자 이곳에 왔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미소’ 남긴 스님
여성이라곤 한명도 없는 이곳에서 아이들의 헤진 옷 바느질까지 해줄 정도로 엄마처럼 아이들을 돌보는 동자승학교 교장인 텐진 갸초(74) 스님과 출팀 남될(73) 스님도 64년 전 같은해 이곳에 출가해 평생을 함께 살았다. ‘어린 시절 누가 때리고 누가 맞았느냐’는 짓궂은 질문에 갸초 교장 스님이 ‘남될 스님이 짓궂게 다른 아이들을 꼬집었다’고 말하자 남될 스님은 혀를 빼물고는 부끄러운 웃음을 짓는다.
외부와 고립된 곳인 때문일까. 리종사원은 독특할 정도로 가족적이다. 노승들은 또 얼마나 인자한지 모른다. 청전 스님이 전생에 부모로 여겨 ‘아빠 스님’과 ‘엄마 스님’으로 부르는 쬔뒤 스님과 왕걀 스님도 리종사원 스님이다. 쬔뒤 스님은 지난 2월 열반했지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미소’로 사람들 뇌리에 기억되고 있다. 그런데 리종사원에 와보니 하나같이 이곳 사람들의 얼굴엔 다 그런 아름다운 미소가 감돌고 있다.
새벽 동이 터오르자 예닐곱 꼬마 승려들은 침대에서부터 서로 장난을 치기 바쁘고, 좀 더 큰 10대의 소년 승려들은 어른 스님을 도와 그릇을 씻거나 아침식사용 밀가루를 반죽한다. 아침엔 반찬 하나 없이 맨밥을 먹거나 수제비 한그릇을 먹으면서도 웃음이 그치지않는다.
티베트 불교에서 ‘깨달음을 얻은자’들의 환생으로 인정받는 린포체는 ‘살아있는 부처’로 존경을 받는다. 그만큼 스승과 부처와 차이를 두지않는다. 그래서 티베트 사원에선 어디서나 법당이나 자기 방에 달라이 라마를 비롯한 린포체들의 사진을 모시고 있다.
이대로 좋을 뿐, 린포체 될까 되레 두려워해
하지만 교장 갸초 스님의 방엔 린포체 사진 대신 막내 동자승 아이의 사진을 놓아두고 있다. 어미개의 젓을 물기 위해 달려드는 강아지들마냥 그의 주위로 몰려들어 교장실인지 동자승들 합숙소인지 구분이 가지않은 그의 방 창문 너머로 막내가 내다본다. 교장 갸초 스님이 “우리 린포체님”이라고 농담을 한다. 그러자 막내는 “린폰체 아니다”며 목소리를 높인다. 그리곤 반격을 가한다. “우리 스님이 달라이 라마”란다. 교장 스님은 달라이 라마의 본명인 텐진 갸초와 이름이 같다. 그러자 교장 스님이 손 들었다는 듯 웃고 만다. 막내가 환호한다. 티베트 불교에선 신성불가침의 영역인 달라이 라마나 린포체조차도 어린 동자승들에겐 유머의 도구다. 린포체도 부럽지않다. 이대로 좋을 뿐이다. 그래서 린포체가 되면 행여 높은 법좌에 올라 이곳을 떠나야할까봐 오히려 그것을 두려워한다.
온갖 사연을 가진 동자승들의 얼굴엔 아무 구김살이 없다. 린포체나 부처나 스승과 제자라는 이름이 가둘 수 없는 자애로운 웃음이 끊이지않은 리종사원. 야크떼와 양떼가 강가에서 노니는 어느 샹그릴라같은 초원이 이 불모의 땅보다 아름다울까.
조현 종교명상전문기자 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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