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휴심정 순례기

[성서의 현장을 가다]모세의 시나이산, 어둠은 빛을 이기지 못했다

등록 2010-09-09 16:14

[이집트~이스라엘, 성서의 현장을 가다] <1>

 ‘좁은 길’ 따라 오른 시련 끝에 아침 해는 ‘불쑥’

 십계명 이후 3천년, 세상은 그래도 아직 황무지

[이집트~이스라엘, 성서의 현장을 가다] <1> 모세의 시나이산, 어둠은 빛을 이기지 못했다 <2> 죽음으로 산 자유의 요새 마사다 <3> 닫혀 죽은 사해와 달리 열려 생명수 된 갈릴리 <4> 3종교 경배-저주가 십자가처럼 엇갈려 평화 통곡  

경술국치 100년이다. 100년 전 한민족은 나라를 잃었다. 일본은 거대한 제국이었고, 대한제국은 완전히 꺼져가고 있었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희망의 등불을 찾아야 했던 선구자들. 그들은 어디에서 희망을 보았을까. 

 

당시 기독교(개신교)는 전 국민의 1~2%에 불과해 여전히 배척받는 소수종교였지만 ‘창조적 소수’들의 상당수가 주목한 것은 당시 유대땅의 상황과 기독교의 역할이었다. 그들은 노예상태의 동포들을 이끌고 이스라엘의 역사를 연 모세의 성서에서 희망의 빛을 발견했다.

 성서의 인물들은 안창호, 조만식, 서재필, 이상재, 이승훈, 유영모, 함석헌, 김약연, 이동휘, 김구, 유일한 등 기독교 선각자들의 멘토였다. 지난 2일부터 8일까지 분당 새에덴교회(담임·소강석 목사) 순례단과 함께 그들의 숨결이 배어 있는 이집트와 이스라엘을 찾았다. 그 순례의 길을 앞으로 4회에 걸쳐 연재한다.

 

 

한밤 중인 새벽 1시30분, 길을 나서다

 

광야다. 하지만 풀 한 포기 찾을 수 없는 모래뿐이다. 숨막히는 열기가 뿜어져 나오는 사막이 가도 가도 끝이 없다. 이집트의 수도 카이로에서 시나이산으로 향하는 길 양편의 모습이다. 메마른 모래 언덕 너머로 홍해가 잡힐 듯 말 듯 아련한 꿈처럼 스쳐 지나치기도 하지만  곧 시야를 막막하게 채우는 것은 다시 사막이다.

 

이집트의 방대한 땅의 대부분은 이런 사막이다. 그래서 전체 면적의 4%에 불과한 나일강 유역에서 8천만 국민의 대다수가 살고 있다.  시나이반도는 나일강에서 벗어나 이스라엘 및 홍해와 접해 있다. 이집트와 이스라엘 사이에 뺏고 뺏기는 전장이었던 이곳은 현재 이집트에 속한다.

 

사막에 있는 숙소에서 쉬다 길을 나선 것은 4일 새벽 1시30분. 모세가 십계명을 받은 시나이산에 오르기 위해서다. 어둠 속의 시나이산 길 초입엔 벌써부터 시나이산 일출을 보기 위해 산을 오르려는 순례객들로 가득하다. 길가엔 순례객들을 태우려 한밤중에 불려나온 낙타들이 졸린 듯 앉아 있다. 

 

 

“정작 영광 얻기까지 홀로의 고난 더 절절”

 

시나이산은 풀 한 포기 없는 황무지다. 어둠 속의 좁은 길을 함께 가야 하는 낙타의 발에 채이지 않으면서 모래에 미끄러지지 않으려고 발걸음은 매우 조심스러워진다. 80 노구의 몸을 이끌고 모세가 오르던 그 길이다. 지금은 요소요소에 순례객들이 쉬며 차나 물을 마실 수 있는 휴게소들이 있지만 3천여 년 전엔 휴게소도 손전등도 없었을 것이다.

 

더구나 모세는 혼자였다. 그는 지도자였지만, 그에게는 한 뼘의 땅도 주어지지 않았고, 그를 환영해줄 곳 하나 없었다. 하지만 그는 이미 여호와의 명령으로 애굽(이집트)에서 탈출시키기 위해 수많은 동족들을 데리고 나왔다. 오직 자신만을 바라본 채 광야에 나선 사람들을 먹이고 재우고 길을 가고 가나안까지 입성시켜야 할 막중한 책임뿐이었다.

 

새에덴교회 이종민 목사는 “시나이산은 모세가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한 곳이어서 영광만을 생각했는데, 정작 영광을 얻기까지 홀로 감내해야 했던 외로움과 고난이 더 절절히 느껴진다”고 말했다.

 

앞으로도 얼마나 많은 시련이 그 앞에 기다리고 있을지 알 수 없기에 모세는 외로웠을 것이다. 그래서 하늘의 달빛과 별빛이 그의 마음에 더욱 깊게 스며들었을까. 시나이산을 오르던 새에덴교회 박요셉 협동목사는 “홀로 편안한 삶을 구가할 수 있는 이집트 왕자의 삶을 버리고 동족들을 위해 고난의 길을 택한 모세는 이미 40년 동안 광야에서 동족들을 이끌 훈련을 홀로 감당해냈을 것”이라고 말했다.

 

 

‘여기 있는 자’면서도 볼 수 없는 자, 어떻게 나타날까

 

일출 전인데도 한발 한발 오를 때마다 달빛과 별빛은 옅어지고, 여명이 밝아오기 시작한다. 산 중턱을 넘어서면서부터 어스름한 시야에 시나이산의 나신이 정체를 드러낸다. 수억년 동안 이글거리는 태양 아래 익은 때문일까. 달아오른 몸처럼 붉다. 마침내 해발 2286미터 정상에 다다르니 일출을 보기 위해 담요를 덮어쓰고 바위 틈새에 진을 치고 있는 순례객들과 바위가 마치 반인반수의 스핑크스처럼 어우러져 있다.

 

시나이산은 이집트인의 90%를 차지하는 무슬림들에게도 성산으로 여겨진다. 메마른 산임에도 호쾌한 기상은 하늘과 땅을 연결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일출을 보기 위해 산을 오른지 세시간. 기다림은 지루하다. 하지만 오름과 기다림은 연단의 시간이다. 그토록 뜨지 않던 해가 오르는 것은 한순간이다. 그야말로 보이지 않는 어떤 손이 해를 밀어올리듯 ‘쑥쑥’ 떠오른다. 어둠에 묻혀 있던 시나이산이 온전히 제모습을 드러낸다. 

 

‘여기에 있는 자’(여호와)이면서도 결코 눈으로는 볼 수 없는 자는 어떻게 나타날까. 모든 것을 불태우는 태양의 열기 아래서도 시나이산의 바위들은 녹지 않고 더욱 더 빛을 발하고 있다. 온갖 고난 속에서 부유한 집의 노예가 되기보다는 자유를 찾아 사막행을 자처한 유랑객들의 정신처럼. 거친 광야에 시나이산이 홀로 서 있다.

 

 

글·사진 조현 종교전문기자cho@hani.co.kr

 

 

◈ 드라마틱한 운명의 모세

유대인 아이에서 이집트의 왕자로

다시 거친 광야 떠돌다 ‘영웅’으로

 

성서 구약속의 인물인 모세는 기독교에서도 중대한 인물이지만, 유대교에선 더욱 중요시된다. 기독교는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의 등장으로 예수보다 중요한 인물은 없지만, 아직 ‘메시아가 오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유대교에선 모세가 최고의 영웅이다. ‘여호와의 백성으로 선택했다’는 여호와의 말씀인 토라(모세5경·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를 받은 모세는 유대교의 초석을 놓은 인물이다.

 

모세의 운명은 그야말로 드라마틱하기 그지없다.  ‘모세’라는 이름은 ‘강에서 건진 아이’라는 뜻이다. 당시 이집트에 살던 유대인들은 중동의 절대강자였던 파라오인 라메스 2세(기원전 1290~1223)의 박해를 받았다. 라메스 2세는 유대인들의 수가 날로 불어나 이집트인들의 수를 위협하는 지경에 이르자 남아가 태어나면 즉시 죽이도록 했다.  

 

모세의 어머니와 누나 미리암은 기지를 써서 파라오의 딸인 공주가 오가는 강가 갈대 숲에 아기 모세를 담은 상자를 놓아두었다. 아기 모세를 발견한 공주는 모세를 양자로 삼았다. 모세의 어머니는 궁궐의 아기 모세의 유모로 들어가 자식을 돌봤다. 

 

궁에서 왕자로 자랐지만 유대민족으로서 정체성을 잃지않았던 모세는 40살 때 공사장에서 유대인이 핍박당하는 현장을 목격하고 이집트인 감독을 쳐죽였다. 식민지 백성으로 동포들이 겪는 고통을 외면하지 못하고 핍박자를 죽이고 맞선 점에서 한민족에겐 일제의 수괴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안중근을 연상케 한다. 

 

모세는 혁명을 모색하다가 실패하자 이집트와 가나안의 중간지대인 미디안으로 피신한다. 미디안에서 종교지도자인 이드로의 딸 시포라와 결혼해 종교지도자로서 훈련을 받으며 40년 동안 광야에서 살았다. 모세는 80세가 되어 여호와로부터 ‘민족을 구원하라’는 명령을 듣고 파라오에 맞선다. 시나이산에서 십계명과 토라를 받은 모세는 수십만명의 유대인들을 이끌고 광야에 나선다. 하지만 그는 가나안에 입성하지 못한 채 120살로 생을 마감한다. 유대민족의 가나안 입성은 그의 후계자인 여호수아에 의해 이뤄진다.

 

조현 기자

 

 

◈ 유대인과 유대교

떠돌이 2천년, ‘선민’으로 신앙 지켜

박해·학살 뚫고 세상 바꾼 인물 배출

 

유대인들은 노벨상 수상자 4명 가운데 1명을 배출하고, 세계 금융계와 정계를 움직이는 막후로 알려진다. 공산주의를 낳은 마르크스, 심리학의 대부 프로이드, 천재 과학자 아인슈타인, 마이크로소프트 회장 빌 게이츠까지. 세상의 흐름을 바꾼 유대인들이 한두명이 아니다. 나라조차 없이 2천년 동안 세상을 떠돈 그들은 어떻게 ‘유대인’이란 정체성을 잃지 않았고, 그렇게 탁월한 인물들을 낳을 수 있었을까.

 

유대인이란 실은 민족이라기보다 유대교를 믿는 사람들이다. 여호와로부터 선택받았다는 선민의식이 강한 유대인들은 유랑객으로 떠돌면서도 유대인들끼리 똘똘 뭉쳐 자신들의 신앙을 지켜왔다. 나라가 없었기에 언제든 쫓겨날 가능성이 컸던 부동산보다는 현금을 중시했던 그들은 유럽과 러시아 등에서 고리대금업으로 악명을 떨치면서도 동족들에게만은 이자를 받지 않았다. 

 

어느 곳에 가서도 결코 섞이지 않고, 자기들끼리만 뭉치는 배타성 때문에 유대인들은 ‘눈엣가시’같은 존재였다. 더구나 로마를 비롯한 유럽사회가 메시아로 신앙하는 예수를 죽음에 이르게 하고 더 나아가 끝내 저주로 일관한 것도 반유대감정에 불을 질렀다. 그들은 19세기 후반에 유럽에서 반유대인 운동이 전개돼 나치에 의해 600여만 명이나 비참하게 살해 당하는 비극의 주인공이 되었다.

 

서기 66년 로마제국에 의해 예루살렘에서 쫓겨난 뒤, 2차대전 이후 이스라엘을 세울 때까지 2천년 동안이나 전세계를 떠돌면서 살아남아야 했던 그 고난이야말로 유대인들의 힘이 되었다. 더구나 그들은 나라 없이 세상을 떠돌면서도 모세가 여호와로부터 받은 토라와 선지자들의 율법을 통해 ‘선택받은 자들’이란 자부심과 신앙을 잃지 않은 채 자신들의 정체성을 유지해왔다.

조현 기자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휴심정 많이 보는 기사

명절에 전 안 부쳐도 된다…성균관이 선언했다 1.

명절에 전 안 부쳐도 된다…성균관이 선언했다

경허선사가 술, 여자, 병자를 만나면 2.

경허선사가 술, 여자, 병자를 만나면

하늘이 당신에게 시련을 주는 이유 3.

하늘이 당신에게 시련을 주는 이유

네 운명을 사랑하라, 아모르 파티 4.

네 운명을 사랑하라, 아모르 파티

나르시스트 부모 대응책 5.

나르시스트 부모 대응책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