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이스라엘, 성서의 현장을 가다] <4>
성지 같은 기독-이슬람-유대교 미움의 ‘뿌리’
예수와 마호메트 메시아도 서로 총구 겨눌까
[이집트~이스라엘, 성서의 현장을 가다] <1> 모세의 시나이산, 어둠은 빛을 이기지 못했다 <2> 죽음으로 산 자유의 요새 마사다 <3> 닫혀 죽은 사해와 달리 열려 생명수 된 갈릴리 <4> 3종교 경배-저주가 십자가처럼 엇갈려 평화 통곡
감람산에 오르면 예루살렘이 한눈에 들어온다. 갈릴리에 살던 예수가 예루살렘에 입성하면서 사람들의 환영을 받고, 죽기 전날 홀로 기도한 게세마네동산이 있고, 부활한 지 40일 만에 승천했다는 곳이 모두 감람산이다. 해발 800m다. 예루살렘이 해발 720m가량이니 80m 높이의 언덕일 뿐이지만 예루살렘을 조망하기엔 더할 나위 없는 곳이다.
감람산 밑엔 유대인들이 최고 명당으로 꼽는 공동묘지가 펼쳐져 있고, 그 아래 유대인들이 메시아가 직접 문을 열 것이라고 믿는 성벽이 굳게 닫혀 있다. 그 성벽 위엔 아브라함이 여호와께 아들 이삭을 바치려 한 성전산이 있다. 이곳엔 무슬림의 황금사원과 알 아크사모스크가 나란히 서 있다. 이슬람교 창시자인 마호메트가 승천했다는 곳이기도 하다.
왜 하필 이곳에 와서 최후를 맞이했을까
무슬림 사원 아래 움푹 파인 곳엔 60m의 웅대한 돌담이 있다. 지금 무슬림들과 철천지 원수가 된 유대인들의 최고 성지 ‘통곡의 벽’이다. 서기 70년 로마군에 의해 성벽이 파괴되면서 멸족당한 뒤 예루살렘을 떠나 세상으로 흩어져야 했던 유대인들이 1967년 중동전쟁에서 승리해 2천 년 만에 되찾은 이곳엔 매년 전 세계 유대인들이 찾아와 벽에 이마를 박고 ‘여호와가 유대인에게만 한 언약’ 토라를 외우며 경배하는 성지다.
또 800여 미터에 이르는 골고다언덕의 ‘십자가의 길’과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곳에 세워진 성묘교회는 기독교인들이 가장 성스럽게 여기는 곳이다.
전 세계 23억 명의 신자를 가진 기독교와 15억여 명의 무슬림이 있는 이슬람교, 1400만여 명의 유대인들이 모두 자신들에게 특별히 성스러운 곳이라고 주장하는 성지가 한 곳에 집결돼 있는 셈이다. 그래서 더욱 성스러워야 할 이곳은 평화롭기보다는 살벌하다.
4천여m의 성벽에 둘러싸인 성곽 안엔 유대인과 아랍인(팔레스타인) 구역이 따로 있고, 좁디 좁은 시장통에 있는 예수의 ‘비아돌로로사’(십자가의 길)는 늘 기독교 순례객들과 아랍상인 및 손님들과 이스라엘 무장경찰들이 뒤섞여 인산인해를 이룬다. 총격과 자살폭탄의 현장이기도 한 이곳에서 완전무장한 이스라엘 경찰들의 발걸음이 빨라지는 모습만 봐도 긴장이 고조된다. 예수는 왜 이곳에 와서 최후를 맞이했을까.
원래 뜻이 ‘평화’의 ‘도시’인 예루살렘의 역설
유대인들의 교과서 <탈무드>엔 ‘아름다움의 척도 열 가지가 세상에 주어졌는데, 그 중 아홉 가지를 예루살렘이 가졌다’고 했다. 하지만 아름다움보다는 번득이는 총구가 먼저 눈에 띈다.
예루살렘의 예루는 ‘도시’를 의미하고, 살렘은 ‘평화’를 뜻한다. 따라서 예루살렘이란 ‘평화의 도시’다. 평화가 너무도 간절하기에 예루살렘인 것일까.
예루살렘에서 여전히 평화는 멀고 저주는 가깝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평화협상이 진전하려 하자 최근 유대교 지도자인 랍비 오바디아 요세프는 “아부 마젠(팔레스타인 압바스 수반의 별칭)과 모든 악의 민족은 지구상에서 멸망할 것”이라면서 “신은 팔레스타인인들을 역병으로 치실 것”이라고 했다. 2천 년 동안의 고난을 잊은 듯 보수 유대인들은 팔레스타인인들을 고사시키는 데 열을 올리고 있다.
하지만 유대인과 아랍의 갈등이 지구상 최고의 ‘뜨거운 감자’라 하더라도 유대인과 기독교의 역사적 갈등에 비할 바가 아니다. 갈릴리호수에서 만난 유대인 여인 드와이트에게 예수에 대해 물었을 때 “예수도 붓다나 마호메트와 같은 위대한 인물”이라고 했던 것은 기독교 순례객들의 뱃놀이로 밥벌이를 하는 그만의 예외적인 언사였을 뿐이다.
예수는 2천 년 이래 유대인이 낳은 지상 최고의 슈퍼스타지만, 유대인들에게 있어서만은 ‘지상 최악의 인물’이다. 예수에 대한 지구상 최고의 환호와 저주가 영원히 만나지 못할 수직과 수평의 십자가처럼 예루살렘에서 상극을 연출하고 있다.
“십자가 너무 싫어해 교차로도 십자로로 만들지 않아”
유대인과 기독교의 악연은 유대인에 의한 예수의 죽음 이후 유대멸망사로 이어진다. 당시 유대인들은 바리새파와 사두개파, 엣세네파, 그리고 예수를 메시아로 믿는 나사렛파가 연합해 로마와 대항해 싸웠는데, 나사렛파만이 서기 70년과 서기 135년에 잇따라 항쟁 대열에서 이탈했다. 이를 두고 유대인들은 멸망 원인의 화살을 예수와 유대 기독교인들에게 돌려 이들을 반역자 취급하고 있다.
서기 1096년 기독교인 십자군이 예루살렘을 점령했을 때, 그들이 죽인 것은 당시 성지를 차지하고 있는 무슬림들이 아니라 유대인들이었다. 예루살렘의 유대인 30만 명 대부분을 불에 태워죽였다. 유럽 기독교권의 유대인에 대한 저주는 결국 20세기에 600만 명의 유대인들을 죽인 홀로코스트로 이어졌다.
성지를 안내하던 손문수 목사(히브리대 박사과정 준비)는 “그 때문에 지구상에서 기독교 선교가 가장 어려운 사람들이 유대인들”이라면서 “유대인들이 예수에 대해 ‘호모’라는 등의 욕을 하는 것은 다반사고, 십자가를 너무나 싫어한 나머지 교차로도 십자로로 만들지 않을 정도”라고 말했다.
저주와 저주가 이어지며 피와 피가 넘쳤던 예루살렘 ‘십자가의 길’ 마지막에 성묘교회가 우뚝 서 있었다. 예수가 십자가에 매달려 죽은 자리이고 묻힌 곳이다. 당대에도 가장 고통스럽다는 십자가형을 받으면서도 자신을 정죄한 자들을 향해 ‘주여, 저들을 용서하소서”라고 빌었던 곳이다. 모두가 상대를 제물로 바칠 때, 그 자신을 모든 이의 제물로 바친 곳이었다.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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