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박하기 그지없는 노수도사가 있었다. 어느 날 수도원 내 양로원에 몸이 아주 허약해 보이는 수도사가 찾아왔다. 하지만 이 수도사를 대접할 만한 영양가 있는 음식이 양로원엔 없었다. 노수도사는 서둘러 계단을 통해 지하실로 내려갔다. 수도원은 해안가 절벽 위에 지어져 일렁이던 바다 수면 바로 위에 있었다. 그는 수도원 지하실 창문 밖으로 바다를 향해 손을 내뻗으며 말했다. "나의 승천 성인이시요, 제가 이 허약한 수도사를 대접할 수 있게 부디 물고기를 주십시오!"그러자 놀라운 일이 생겼다. 바다에서 한 마리의 큰 물고기가 튀어 올라와 그의 손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는 이런 기적이 아무런 일도 아니라는 듯이 태연하게 물고기를 가지고 올라갔다. 그리고 허약한 수도사가 원기를 차릴 수 있도록 기쁜 마음으로 정성껏 음식을 마련했다.
이 일화는 지난 1994년 세상을 떠난 파이시오스 수도사가 <아토스 성산의 수도사들>에 기록한 것이다. 파이시오스 수도사는 회고한다. "그 시절 영적 아버지들은 많이 배우지는 못했지만 믿음이 매우 강하고 소박했으며 자신을 낮추었기에 계속해서 하느님의 은총을 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우리는 이런 기적과 하늘나라의 사건들을 특별한 것이 아닌, 그저 당연한 것으로 간주했다."
현세적 욕망을 놓은 무욕의 인간에게 주어지는 은총, 우리가 늘 고대하는 드라마다.
<그리스 인생학교>(조현 지음, 휴) 2장 지상 낙원, 아기아나 수도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