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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철 제논에 물대기 바쁜 종교인 보고 맹자가 운다

등록 2021-12-27 15:59수정 2022-06-26 21:20

정치보살의 길

사진 픽사베이
사진 픽사베이

올해만큼은 『 맹자 』 「 양혜왕 」 의 첫 번째 장면을 인용하지 않기를 바랐다 . 내년 대선을 앞두고 있는 지금 , 정치와 종교가 손을 잡고서 연출하는 꼴사나운 모습을 보고 있으려니 , 또다시 맹자 선생님을 불러들이지 않을 수 없게 됐다 . 본의 아니게 두 분에게 미안하다 . 그동안 대선과 총선을 앞두고 정치인과 종교인이 벌이는 수준 낮은 민낯을 두고 보기가 힘들었다 . 그래서 그때마다 정치와 종교의 수준을 조금이라도 바꿔보자고 두 분을 글의 첫 머리에 모셨다 . 매우 서글픈 마음으로 『 맹자 』 의 첫 장면을 옮겨본다 .

부국강병의 깃발을 세우고 남의 나라 땅 뺏기에 온통 집중하던 중국의 전국시대 , 혜왕이 맹자에게 신의 한 수를 부탁한다 . “ 선생님께서는 틀림없이 우리나라를 이롭게 해 줄 방법이 있으시겠지요 ?” 그러나 맹자가 누구시던가 ? 단칼에 왕의 의중을 잘라버린다 . “ 임금께서는 어찌하여 이익만을 말씀하십니까 ? 어짊과 의로움 ( 仁義 ) 만이 있을 뿐입니다 .” 이어 고독한 왕도정치 ( 王道政治 ) 의 주창자답게 왕에게 하나하나 예를 들어 땅 따먹기의 위험을 설명한다 . 임금은 오로지 무엇으로 ‘ 자기나라만 ’ 을 이롭게 해주겠는가를 묻고 , 대부 ( 大夫 ) 는 무엇으로 ‘ 자기집안만 ’ 을 이롭게 해주겠는가를 묻고 , 사 ( 士 ) 와 서민은 무엇으로 ‘ 나만 ’ 을 이롭게 해주겠는가 , 하고 묻는다면 , 왕이시여 ! 위아래가 서로 이익을 추구하게 되어 나라가 위태로워집니다 , 라고 일침을 놓는다 . 이렇게 각자가 자기 밥그릇만 챙기려 든다면 나도 좋고 너도 좋은 대동세상은 이루어질 수 없음을 경고한 것이다 .

서울 여의도순복음교회 조용기목사 상가에서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를 잡고 ’하나님 믿어야 돼!’라고 말하는 김장환 목사. 사진 크리스찬투데이 유튜브 갈무리 편집
서울 여의도순복음교회 조용기목사 상가에서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를 잡고 ’하나님 믿어야 돼!’라고 말하는 김장환 목사. 사진 크리스찬투데이 유튜브 갈무리 편집

2022 년을 앞두고 있는 대한민국의 지금이 바로 이런 형국을 연출하고 있다 . 그 상대는 대통령이 되고자 하는 대선후보와 종교계의 대표자들이다 . 그런데 이 맞수들은 , 전국시대와 대화의 상황은 같은데 답이 다르다 . 왜냐하면 , 대선후보의 요청에 종교계 대표자들의 답이 맹자 선생님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 그간 민주당 , 국민의힘 대선후보들과 종교계 ‘ 힘 있는 ’ 분들의 대화를 재구성해 보자 .

후보님 - “ 목사님 , 여러모로 부족한 제가 국민의 부름을 받고 대한민국을 융성하게 해보고자 마음을 내었습니다 . 부디 큰 가르침을 주십시오 .” ( 저 , 사실은 어떻게든 대통령이 되어야하거든요 . 그러니 목사님 교회에 오는 많은 성도님들에게 저를 찍어주시라고 기도해 주세요 . 한국교회의 성도들은 예수님 말씀보다 목사님 말씀을 더 믿는 거 잘 알거든요 .)

목사님 – “ 후보님 , 축하합니다 . 자 , 우리 모두 후보님의 앞길에 하나님의 영광이 충만하기를 기도합시다 .” ( 이어 힘 있는 목사님들이 후보의 어깨에 손을 얹고 축복한다 .) “ 하나님의 은혜로 대통령이 되시어 하나님의 종으로 소명을 다하게 해주십시오 . 아멘 !” ( 너 , 급하니까 우리교회에 손 벌리는 거 다 알아 . 그러니 대통령 되면 우리 말 잘 들어야 해 . 특히 ‘ 차별금지법 ’ 은 꿈도 꾸지 말거라 .)

조계종 총무원을 찾은 민주당 이재명 후보. 사진 공동사진취재단
조계종 총무원을 찾은 민주당 이재명 후보. 사진 공동사진취재단

선거를 앞두고 후보들은 지푸라기도 동아줄로 보인다 . 상대적으로 조직력과 결집력이 느슨한 불교계지만 그래도 화합과 상생을 명분으로 이번에는 사찰을 찾는다 . 참으로 공정과 정의의 실천자들이 아닐 수 없다 .

후보님 – “ 스님 , 저의 가족들 중에는 이러이러한 분들이 절에 다니면서 저를 위해 불공을 드렸습니다 . 그리고 부처님의 자비와 화합의 정신을 늘 가슴에 새기고 있습니다 . 나라를 위해 제가 일할 수 있도록 큰 지혜를 주십시오 .‘ ( 지금 나는 이분들의 관심을 잘 알고 있지 . 그걸 그럴듯하게 포장하는 기술을 지금 우리 당에서 연구하고 있지 .)

스님 – “ 후보님 , 부처님이 잘 도와주셔서 좋은 결과 있을 것입니다 . 모쪼록 분발하십시오 . 그리고 불교는 종교 이전에 우리 문화의 근간이니 부디 전통문화 복원과 계승에도 관심을 가져주십시오 .” ( 지금 우리는 매우 자존심이 상해있어 . 잘 알고 있지 ? 그리고 예산에 무엇을 크게 반영해야 한다는 것도 잘 알고 있겠지 ?‘

5 년마다 어김없이 연출되고 있는 모습이다 . 대화의 문법이 조금도 변하지 않고 있다 . 그 옛적 맹자가 왕에게 핵심을 직언하는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 그렇다고 그럴듯한 , 원론적인 , 정치적 조언도 찾기 힘들다 . 노골적으로 ‘ 하나님 믿어야 해 ’ 라고 공석에서 속삭임 한다 . 웃음 속에 비수를 감추고 있는 소리장도 ( 笑裏藏刀 ) 의 수준을 넘는다 . 참으로 다종교국가인 대한민국에서 나타나는 특별한 갑을관계가 아닐 수 없다 .

선거에서 한표라도 더 얻어야 하는 절박한 심정을 헤아려 본다면 대선후보들의 종교계 행보는 그리 나무랄 일도 아니다 . 그러니 아름답지 못한 모습의 탓은 순전히 종교계에 있다 . 세속인들과 뭔가는 달라야 하는 것이 종교의 모습이 아닌가 ? 추구하는 세계도 달라야 하고 , 정치에 대한 생각도 달라야 하고 , 그리고 던지는 ‘ 말 ’ 도 달라야 하는 게 아닌가 ? 다르지 않다면 별반 다를 게 없다는 말이 된다 . 후보들에게 건네는 말이 여느 집단과 다르지 않다면 종교도 세속의 이익집단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자기비하가 되는 것이 아닌가 ?

개신교계의 국가조찬기도회에 함께 참석해 기도중인 이재명 후보와 윤석열 후보. 사진 사진공동취재단
개신교계의 국가조찬기도회에 함께 참석해 기도중인 이재명 후보와 윤석열 후보. 사진 사진공동취재단

선택하는 ‘ 말 ’ 이 다르면 세계가 달라진다 . 건네는 ‘ 말 ’ 이 다르면 사람의 생각이 달라진다 . 그러기에 말은 곧 생각이고 세계가 된다 . 종교에는 선지자와 예언자라는 말이 있다 . 위기와 절망의 현실을 예민하게 아는 분들을 말한다 . 미래의 위험징후를 확연하게 감지하고 희망의 길을 제시하는 분들이다 . 사자후라는 말이 있다 . 사자가 내뿜는 용감하고 우렁찬 목소리를 말한다 . 활구법문 ( 活句法門 ) 을 하라고 했다 . 의례적인 말이 아닌 , 생명력이 펄펄 넘치는 말을 하라는 것이다 . 예언자와 사자는 좌고우면하지 않는다 . 또 무엇보다도 나와 나의 편을 생각에 넣지 않는다 . 오로지 ‘ 모두 ’ 의 자유와 행복만을 생각한다 . 그 ‘ 모두 ’ 는 편 가르기가 아니다 . 편 가르기는 일방의 세상을 만들뿐이다 .

다시 , 맹자와 혜왕으로 가보자 . 왕이 , 대부가 , 관료와 백성 개인이 , 자기만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을 경계하는 대화이다 . 왕도정치 , 여민동락 ( 與民同樂 ) 의 정치는 각기 자신의 입장과 이익에 갇히지 않겠다는 생각이다 . 그런데 지금은 어떠한가 . 자기의 정당의 이익 , 우리의 지역의 이익 , 대기업의 이익 , 자기들의 집값만을 헤아리고 있지는 않는가 ? 자기들에게 이익만을 주라고 대선후보에게 요구하고 있지는 않는가 ? 그런 생각들의 위험을 알리고 , 위험에서 벗어나는 말을 건네야하는 몫은 종교가 아닌가 ? 어이하여 선지자의 길을 , 활구법문의 길을 벗어나고 있는가 ?

이런 대화는 정말 불가능할까 ? 종교인들을 찾는 후보에게 건네는 이런 ‘ 말 ’ 은 정녕 힘 드는 일인까 ? “ 후보님 , 부디 가르는 정치가 아니라 모으는 정치를 해주십시오 . 지금은 ‘ 전환의 시대 ’ 라고 하니 근본적으로 정치와 정책의 가치와 지향을 문명전환의 방향에서 이루어주십시오 . 또 우리시대의 가장 큰 위기는 기후위기이니 정책에 최우선으로 반영해주십시오 . 시대착오적인 패권 경쟁을 벗어나십시오 . 비핵화로 가는 길을 결코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 ‘ 작은 것이 아름답다 ’ 는 말에 주목하시고 그에 맞는 정책개발과 지원을 바랍니다 .”

이런 말이 어째서 종교인들에게 나오지 않는 것일까 ? 왜 이런 말들이 시민사회의 원로들의 입을 통해서 나오는 것일까 ? 이런 말을 하는 게 왜 어려울까 ? 말은 곧 세계라고 했다 . 그 말은 곧 생각이 말로 나온다는 뜻이다 . 생각이 다른 곳에 가있으니 그런 말이 나오지 않는다고 밖에 단정할 수 없다 . 안타까움은 늘 서글픔과 함께 온다 . 지금의 종교가 그렇다 .

슬프다 . 슬프다 . 또 슬프다 .

글 법인 스님 / 실상사 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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