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이며 작가였던 아서 고든(Arthur Gordon)이 우울증에 빠졌다. 그는 무력증에 빠져 더 이상 글을 쓰지 못할 지경에 이르자, 작가가 글을 쓸 수 없다는 충격에 자살까지 생각했다. 그러다가 의사인 친구를 찾아가 자기의 사정을 털어놓았다.
“나는 더 이상 살고 싶지 않네.”
친구가 물었다. “자네가 어렸을 때 가장 하고 싶어하고 좋아했던 일은 무엇이었나?” 아서는 힘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어렸을 때 좋아했던 것은 해변에서 파도소리를 듣는 일이었지.”
친구는 아서에게 한 가지 제안을 했다. “그러면 내가 시키는 대로 해보겠나? 이 네개의 처방전을 가지고 어릴 때 놀러갔던 해변에 가서 퍼보시게.”
별다른 대안이나 희망이 없었던 고든은 친구의 말대로 해변으로 갔다. 아서는 친구의 말대로 아침 9시에 첫 번째 처방전을 펴보았다. <자네가 좋아하는 파도 소리, 갈매기 소리를 잘 들어보게> 그는 바닷가에서 어린 시절 듣던 파도와 갈매기 소리에 귀기울였다.
12시가 되자 두 번째 처방전을 펼쳤다. <자네가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행복했다고 기억되는 순간들을 생각해보게> 그는 행복했던 추억들을 떠올리자 마음에 조금씩 기쁨이 생겼다.
3시에 처방전을 펴 보았다. <자네 인생의 동기와 의미를 검토해보게> 그는 자신이 왜 글을 쓰는지 생각해보니, 자기 명예와 사람들에게 박수갈채를 받기 위한 것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그러자 ‘나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지 않고 의미 없고 헛된 내 이름을 위해서 살았구나’라는 자신의 추했던 모습에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6시에 마지막 처방전을 폈다. <자네의 죄와 허물을 하나님께 자백하며 그것들을 모래사장에 써보게> 고든은 모래밭에 자신의 죄를 쓰기 시작했다. “하나님, 저는 주님의 영광이 아닌 제 욕망을 위해 살았습니다. 하나님도 이웃을 진정으로 사랑하지도 못했습니다.”
그런데 그가 자신의 죄들을 다 쓰기도 전에 밀물이 들어와 그가 써놓은 죄들을 지워버렸다. 이 모습을 본 고든은 큰 깨달음을 얻었다. 아서 고든은 그 시간 인생에 전환점을 맞게 되었다.
깨달음이라는 것은 마치 알이 깨지듯이 자기가 만든 틀이 깨지는 것을 뜻합니다. 아침에 눈을 뜨면 꿈에서 깨어나는 것처럼 허상에서 실상으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깨달음은 자각하는 것, 곧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깨닫고 나면 그 동안 가장 귀하다고 생각했던 가치가 바뀌는 것입니다. 기독교의 깨달음은 피조물 중심의 가치가 창조주 중심의 가치로 바뀌는 것입니다. 양자 되었다는 것은 혈통은 다르지만 권한은 이어받았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양자된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 중심의 생각을 갖는 것입니다.
문병하 목사/양주 덕정감리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