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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이 갖고 있는 놀라운 힘

등록 2022-05-02 14:02수정 2022-05-02 15:47

 픽사베이
 픽사베이

촛불을 켜고 싶은 날이 있습니다. 특히 제 마음이 정전(停電)된 날 촛불을 켜죠. 온종일 괜히 분주한 일로 여기저기 쏘다니거나 많은 사람을 만나 너무 떠들고 집으로 돌아오면 마치 정전이라도 된 듯 마음이 헛헛하지요. 에너지를 너무 많이 소진한 탓일 겁니다.

이런 날은 골방으로 들어가 초에 불을 붙입니다. 그리고는 편한 자세로 앉아 고요히 타오르는 촛불을 바라봅니다. 촛불 명상이라고나 할까요. 그렇게 한참 동안 촛불을 바라보고 있으면 제 안에 다시 에너지가 고여 듭니다. 태양 같은 큰 빛은 우리의 의식을 바깥으로 확산시키지만, 촛불 같은 작은 빛은 우리의 의식을 내부로 향하게 하고 에너지를 응축시켜 주기 때문입니다.

프랑스의 사상가 가스통 바슐라르도 말합니다. “촛불은 영혼의 고요를 재는 압력계다. 결이 고운 평온, 삶의 세세한 부분까지 내려가는 평온의 척도일 수 있다. 평온해지고 싶은가? 조용히 빛의 작업을 수행하는 가벼운 불꽃 앞에서 가만히 숨 쉬어보라.”

그러니까 우리가 촛불을 마주하고 있는 동안 영혼의 고요에 이르게 된다는 겁니다. 더 나아가 마음의 평온까지 선사해 준다고요. 우리가 부박한 일상 속에서 영혼의 고요, 마음의 평온 같은 상태에 이르기는 참으로 쉽지 않은 일이지요. 그런데 그 작고 가벼운 촛불이 우리에게 그런 선물을 준다니 얼마나 놀랍습니까. 저는 그 값 없는 선물에 반해 자주 촛불 앞에 앉는지도 모릅니다.

“밤에 홀로 촛불이 비추는 책―책과 촛불은 두 개의 조그만 빛의 섬이다―과 함께, 정신의 어둠과 밤의 어둠에 맞선다.”

이 아름다운 문장 역시 바슐라르의 깊은 통찰이 담겨 있습니다. ‘책과 촛불은 두 개의 조그만 빛의 섬’이라는 명구를 읽으며 저는 무릎을 쳤지요. 책과 촛불. 조그맣지만 빛의 섬이라니! 지금처럼 전등이 없던 시절, 혹은 갑자기 정전이 되었을 때 여러분도 촛불 아래 책을 펼쳐본 경험이 있을 겁니다. 우리가 촛불을 가까이하거나 책을 가까이하면 그것이 빛의 섬이 되어 우리의 마음과 정신을 밝게 해준다는 거죠. 따라서 우리가 정신의 어둠과 밤의 어둠에 맞서려면 우리는 촛불과 책을 가까이해야 하겠지요.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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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요즘 사회적 거리두기로 홀로 집에 있는 날이 많아 책을 가까이하고 지냅니다. 특히 바슐라르의 <촛불>이란 책을 읽고 또 읽고 있지요. 산문이지만 시에 필적할 만한 아름다운 문장에 반했죠. 그의 책은 빛의 섬과도 같아 칙칙해지기 쉬운 제 마음을 환히 밝혀줍니다. 제가 반한 또 한 문장을 소개해 드릴게요.

“불꽃은 몽상가의 고독을 보여준다. 그것은 사색에 잠긴 이마를 환히 비춰준다. 촛불은 백지의 별이다.”

저는 이 구절에서 촛불은 ‘백지의 별’이란 말이 가슴에 와 닿았죠. 우리의 고민이나 괴로움, 혹은 외로움을 친구에게 털어놓아도 그걸 있는 그대로 받아주는 이는 드뭅니다. 그러나 촛불은 백지, 즉 아무것도 쓰여 있지 않은 별이기 때문에 우리의 진정한 친구가 될 수 있는 것이죠. 우리가 굳이 상담가를 찾아가 우리의 고민을 해결할 수 없을지라도, 그냥 홀로 촛불 하나 켜는 것으로 우리 마음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수도 있을 겁니다. 촛불이 갖고 있는 놀라운 힘이죠.

박정대란 시인은 촛불이 갖고 있는 힘에 대해 이렇게 노래합니다. “촛불을 켠다/ 바라본다/ 고요한 혁명을.”(<촛불의 미학>) 그렇습니다. 촛불은 우리 존재 내부에 고요한 혁명을 일으키는 존재죠. 타오르는 촛불을 잘 관찰해본 이들은 이 시인의 말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겁니다. 초는 자기 존재를 태워 촛농을 흘리고 심지도 불타 사라지는 변화를 보여줍니다. 그야말로 초는 변화로 존재하는 존재이며, 초라는 그 존재 자체가 변화인 존재지요. 너무 말이 어려운가요.

저는 이런 변화, 즉 존재인 촛불을 보면서 우리가 세상에 힘을 보태려면 촛불 같은 존재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하죠. 굳이 여기서 예수를 끌어들일 필요도 없지만, 예수야말로 촛불처럼 자기를 태워 세상을 밝히시지 않았던가요. 그러니까 우리도 촛불처럼 기꺼이 변화하는 존재가 될 때 비로소 ‘세상의 빛’이 될 수 있지 않을까요.

고진하/ 목사 시인, 원주 불편당 당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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