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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심정 벗님글방

일체의 생각과 감정을 쉬어야하는 이유

등록 2022-05-31 16:21수정 2022-06-01 07:53

픽사베이
픽사베이
공부는 내가 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공부는 몰라도 마음공부만은 내가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놀라거나 무조건 쉬면서 방일(放逸)하란 것도 아닙니다. 그래서 마음공부를 하는 데도 중도가 필요한 것입니다.

내가 하는 게 아니라면 대체 나는 어떻게 하란 말인가요? 나란 것의 정체가 무엇인지 계속 정견하시면 됩니다. 그러면 결국에 깨닫는 것은 나란 게 ‘생각+감정+느낌’에 불과하단 겁니다.

정말로 아이러니한 일이지만 이것이 바로 나를 구원·해탈하는 방법입니다. 왜냐면 영원한 진리는 나란 현상을 넘어서 그 이전 자리에 있기 때문입니다. 넘어서 있다는 건 나를 생각하기 이전 이후에 먼저 있다는 말뜻입니다.

이게 굉장히 어려운 것 같지만 사실은 인간의 존재를 규명하는 쉬운 일입니다. 이것은 나란 생각 자체가 아직 생기지 않은 아기에게도 이미 갖춰져 있습니다. 아기에게도 있는 게 뭐겠습니까? 바로 생명 자리가 아니겠습니까?

사람들은 생명은 몸이 죽으면 없어지고 소멸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인간들 생각일뿐이지 얼음이 녹아서 사라졌다고 그얼음을 만든 궁극적 제1원인인 에이치투오(H2O)까지 일체다 사라진 것은 아니지요. 그래서 자기 감각기관에 안 보이고 느껴지지 않는다고 없다고 단정하는 것은 매우 어리석고 제한된 생각입니다. 오늘날 과학적으로 보더라도 인간의 감각에 감지되지 않는 얼마나 많은 원자, 분자, 바이러스, 미생물들이 있습니까?

픽사베이
픽사베이
예전에 <제5원소>란 영화가 있었습니다만 생명이야말로 일체를 다 있게 하는 제1원소이자 제1원인입니다. 왜냐하면 생명이 없으면 의식도 없고, 의식이 없다면 일체를 다 인식하여 있다 없다 하는 의식 작용도 없으니까요. 그러므로 스스로 제1원인이 아닌 ‘생각+감정+느낌’으로 진리를 재단하고, 이거다 저거다 규정하는 모든 종교적인 행위들은 다 자숙하여야 합니다. 이야말로 가장 과학적이며 합리적인 이성의 결정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공부는 ‘생각+감정+느낌’의 조합물인 내가 하는 게 아니란 겁니다. 그래서 조사들은 자꾸 쉬어라, 입 닥쳐라 하면서 ‘너 자신이 그것이다’라고 가르쳐주는 것이니 다만 생각으로 분별하기만 멈추면 바로 깨어납니다.

생명에 대해 관념으로만 알아 가지고는 아직 생명의 실상을 모릅니다. 생명을 스스로 직접 보고 체험하여 증득하고 알아야 합니다. 이것은 내가 하는 게 아니라 진리 자리가 드러나도록 시끄러운 나를 정지시키는 데 있습니다.

​글 김연수/ 피올라마음학교 교장· 한양특허법인 대표변리사 ·<정견>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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