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와 달이 뜨고 지고, 오이씨가 비바람 맞아가며 커서 줄기마다 오이를 열고, 아가들이 자라나서 노인이 되고 또 스러져가는 이 세상의 신비한 이치를 줄이고 또 줄이면 ‘사랑’이라는 두 글자라면서요.
그래서 바오로 사도도“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고 모든 신비와 모든 지식을 깨닫고 산을 옮길 수 있는 큰 믿음이 있다 하여도 나에게 사랑이 없으면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하고 고백하신 게지요. 불경만 해도 팔만 대장경이요, 28권 성경에 노자, 공자, 바가바드기타, 코란 같은 온갖 경전도 간단히 요약하면 그냥 ‘사랑’.
‘차별금지법’또는‘평등법’이라 이름한 법안을 둘러싸고 온 나라가 시끄럽습니다. 우리 헌법 제11조에는“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누구든지 성별, 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는 당연한 말이 써 있습니다. 차별금지법은 이걸 좀 더 자세히 풀어 놓은 겁니다.
우선 헌법상 차별의 이유로 열거한‘성별, 종교, 사회적 신분’을 차별금지법은 ‘성별, 장애, 병력, 나이, 출신 국가, 혼인 여부, 가족 형태, 종교, 사상, 성적 지향, 성별 정체성, 학력’등 21개로 세분했습니다. 그리고 헌법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생활의 모든 영역에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는 부분은‘고용 (모집, 채용, 근로조건), 재화·용역 (금융, 교통수단, 상업· 토지· 주거시설등의 공급과 이용), 교육 (교육기회, 내용), 행정·사법 서비스 제공’의 네 가지 영역에서 차별하지 말도록 구체화했습니다. 얼핏 생각하면 너무 당연한 내용 아닌가 싶지만, 펄쩍 뛰는 이들이 있지요. 우선 똑같은 일을 시키면서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차별대우하는 기업주들이 그렇고, 그보다 훨씬 더 심하게 반발하는 이들은 기독교계입니다.
기독교계 일부에서는 특히‘성적 지향과 성별 정체성’을 이유로 한 차별금지를 문제라고 봅니다.‘성적 지향’은 독신주의, 남녀 간의 이성애, 동성애 중 어느 것을 지향하느냐이고, ‘성별 정체성’은 실제 생물학적 성별과 상관없이 자신을 남성 혹은 여성 어느 쪽으로 생각하고 있는가를 말합니다. 차별금지법은 헌법을 구체화하면서 ‘성적 지향과 성별 정체성’에 따른 차별도 해서는 안된다는, 어찌보면 당연한 법리를 명문화한 겁니다. 그런데 혹시 이 법이 동성애를 죄로 보는 기독교 교리를 불법화하고 결혼제도를 무너뜨리는 거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들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법에는 동성애가 옳다거나 그르다는 판단은 일체 없습니다. 단지 동성애를 이유로 고용이나 교육, 재화와 용역의 제공 영역에서 차별을 하지 말자는 겁니다. 종교활동은 차별금지 대상영역에 아예 들어있지 않습니다.
이런 의문도 있을 수 있습니다. 교회나 관련 교육기관에서 동성애는 죄라는 교리를 가르치거나, 동성애자를 채용하지 않으면 차별금지법 위반으로 처벌받는 것 아닌가. 정말 그렇다면 이는 분명한 역차별에 해당할 것입니다. 우리 헌법은 양심의 자유, 종교의 자유를 보장합니다. 따라서 동성애를 허용하는 것과 똑같이 동성애를 죄로 보는 생각이나 교리도 보장해야 합니다. 그런데 순수한 종교활동은 차별금지법의 적용대상에 들어있지 않으므로 교회에서 교리를 가르치는 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차별금지법은 교육 관련법에 따라 설립되고 규율과 지원을 받는 어린이집, 초·중·고·대학들에만 적용됩니다.
교회나 교회내 교육기관들은 교리교육의 자유가 보장됩니다. 교단이 세운 사립학교들의 경우는 교육법에 따라 학력인가나 예산지원등 국가 혜택을 받으며, 교인들만이 아닌 일반 학생들을 상대로 교육을 하므로 특정 교리를 교육해서는 안되는 건 당연합니다. 고용 부분에서도 신앙생활을 목적으로 하는 교회의 기관들의 경우에는 차별금지법이 적용되지 않습니다. 이 법 제3조는‘특정 직무나 사업수행의 성질상’ 필요한 경우, 신자만 고용하는 걸 차별로 보지 않습니다. 요컨대 차별금지법은 교회가 동성애는 죄라는 교리를 가르치는 것에 간여하지 않고, 동성애자 고용을 강제하지도 않습니다.
동성애는 대개 자신이 선택한 게 아니라 그런 성향을 타고 난 겁니다. 50억년전 시작된 생명체는 오랜 세월 단성생식을 하여 오다가 양성생식이 생존에 더 유리해서 그렇게 진화를 했다는 거지요. 독신, 이성애, 동성애는 그런 성향으로 타고나는 건데, 동성애 지향은 아주 소수이기 때문에 이들이 압도적 다수인 우리들로부터 받는 고통은 상상 이상일 겁니다. 가톨릭교리서도 제2357항에 ‘동성애는 죄’라고 규정하였음에도 제2358항에서 이렇게 가르칩니다. “상당수의 남녀가 깊이 뿌리박힌 동성애 성향을 보이고 있다. 그들의 경우는 스스로 동성연애자의 처지를 선택한 것이 아니다. 객관적으로 무질서인 이 성향은 그들 대부분에게는 시련이 되고 있다. 그러므로 그들을 존중하고 동정하며 친절하게 대하여 받아들여야 한다. 그들에게 어떤 부당한 차별의 기미라도 보여서는 안 된다.”
사실 교리란 것도 그렇습니다. 교리란 ‘하느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 구체적 지침을 만든 것일 뿐입니다. 유대인들이 처음에 수백개의 율법을 세운 것도 그렇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율법 그 자체가 목적이 되자 예수님은 율법학자들을 탓하셨고,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생긴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생긴 게 아니라 하셨습니다. 또한 이 세상에는 상대방을 그저 욕망의 수단으로만 여기는 이성애자들이 수두룩한 반면에 상대를 진심으로 배려하는 동성애자들도 있습니다. 교리가 사랑의 가르침을 넘어설 수는 없습니다.
나는 성서의 이 대목을 볼 때마다 예수님께 깊이 머리숙입니다.
“그 분께서는 악인에게나 선인에게나 당신의 해가 떠오르게 하시고, 의로운 이에게나 불의한 이에나 비를 내려 주신다.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처럼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되어라.”(마태 5, 45-48)
그렇습니다. 이 세상 신비한 이치를 단 한마디로 요약할 수 있다면 그건 “사랑”이겠지요.
글 김형태(변호사, 공동선 발행인)
***이 시리즈는 <공동선>과 함께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