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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뜨거운 열정보다 묵묵한 걸음이 좋다

등록 2021-04-29 07:06수정 2021-04-29 14:58

나는 이런 사람이 좋다

전북 남원 실상사 농장에서 법인 스님.  사진 실상사 제공
전북 남원 실상사 농장에서 법인 스님. 사진 실상사 제공
조용한 시간이 내게 깃들면 생각한다. “내 곁에 좋은 사람이 있는가?” 답하자면 참 많다. 일상의 수행을 중시하는 원불교에서 많이 강조하는 말씀 중에 ‘처처불상 사사불공’이라는 가르침이 있다. 만나는 모든 존재가 부처님이요, 사사건건에 진심을 담아 정성을 다하면 불공이요 기도라는 뜻이다. 그러니 매사에 진심과 정성을 담아 살아가는 사람들이 바로 내 곁의 부처요 살아있는 부처가 아닐 수 없다. “내 이름을 듣는 이는 모든 괴로움 여의고, 내 모습을 보는 이는 해탈하게 하소서” 절집에서 아침 예불 때 올리는 나옹 선사의 발원문도 처처불상 사사불공과 맥락이 닿아있다.

‘당신이 존경하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이런 질문을 종종 받는다. 그러나 존경보다는 ’닮고 싶은 사람‘이 누구인가를 생각한다. 그리고 먼 과거의 사람이 아니라 지금 내 곁에 있는 사람을 생각한다. 닮고 싶은 사람, 그는 곧 나의 길벗이고 스승이다. 그리고 그런 사람은 내가 부러워하는 사람이며 나를 부끄럽게 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닮고 싶은 사람이 내 곁에 있다면, 그를 유심히 보고 배운다면, 나는 보다 좋은 사람이 되고 내 삶은 아름답고 풍성해질 것이다. 요새 사람들은 ‘롤 모델’을 말하면서 그에게 열광한다. 그러나 이건 내가 ‘닮고 싶은 사람’과 다르다. 내가 닮고 싶은 사람은 흔히 하는 말로 성공한 사람이나 출세한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밤하늘의 스타가 아니라 들판의 작은 풀꽃과 같은 사람이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 닮고 싶은 사람은 무엇보다도 자기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다.

그 사람은 헛된 가치에 눈을 돌리지 않는다. 그리고 세상이 좋다고 하는 일에 맹목적으로 동의하거나 동요하지 않는다. 오직 자신의 옷에 맞는 길을 선택하여 묵묵하게 살아간다. 오랫 동안 좋은 사이로 지내고 있는 분이 있다. 지방 소읍에 살고 있다. 그는 학식도 넓고 인품도 훌륭하다. 재력도 넉넉하다. 그는 사람들과 어울려 공부하기를 즐겨하고 잘 놀기도 한다. 주변에 어려운 일이 있으면 몰래 돕는다. 사회적으로 발언하고 참여할 일이 있으면 기꺼이 참여한다. 일에 참여하되 결코 자신을 앞세우지 않는다. 또한 무엇보다도 겸손하고 너그럽고 따뜻하기 때문에 주위의 사람들이 좋아하고 존경한다. 때문에 선거 때는 선출직 출마를 제의 받는다. 충분히 당선이 가능한 사람이다. 그러나 그는 그럴 때마다 다음과 같은 이유로 분명하게 거절한다. 그 옷은 나에게 맞는 옷이 아니며, 나는 내게 맞는 방식으로 좋은 세상을 만들어 갈 것이며, 무엇보다도 내 소소한 행복을 가꾸어 갈 것이라고 한다. 이렇게 선을 넘지 않는 사람, 담장 너머를 넘보지 않는 사람, 주위의 칭찬과 권유에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 부럽다. 그런 사람을 닮고 싶다.

실상사 농장. 사진 실상사 제공
실상사 농장. 사진 실상사 제공
내가 닮고 싶은 사람은 ‘한결 같은 사람’이다.

절집에서는 여여(如如)하다고 한다. 나는 어떤 변화와 유혹에도 감정이 흔들리지 않고 성실한 사람이 좋다. 이건 아마도 내가 감정의 기복이 심하고 조건과 상황에 따라 부침이 심하기 때문일 것이다. 한결 같은 사람의 특징은 남의 시선과 평가에 신경 쓰지 않고 그저 자기 일을 한다. 그런 사람의 표상을 말하라고 한다면 ‘묵묵’(默默)이다. 묵묵하게 한결 같이 성실하게 살아가는 사람은 대개 무욕과 자족으로 살아간다. 우리 실상사 공동체에는 그런 분들이 많다. 농장에서 늘 소리 없이 많은 농사를 가꾸는 스님과 농부들이 그런 분들이다. 자족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은 행복의 밀도가 높을 수밖에 없다.

나는 규칙적으로 살아가는 사람을 보면 경이롭다.

많이 부끄럽지만 고백해야 겠다. 이런 사람을 좋아하고 닮고 싶은 것 또한 순전히 내가 그러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명색이 수행자인데 무슨 소리냐고 할 것이다. 나는 공동체가 정해 놓은 규율을 잘 따르는 편이다. 그러나 문제는 ‘나와 나’의 대면에 있다. 이른바 혼자 있을 때도 삼가고 정직하고 성실해야 한다는 신독(愼獨)이 잘 되지 않는다. 그러니 어떤 일을 몰아치기로 하다가 열정이 쉽게 식는다. 많이 부끄러운 내 모습이다. 그래서 내 별명을 ‘칸트 법사’라고 지어볼 생각도 잠깐 했다. 그가 오후 3시 30분 산책을 시작하면 동네 사람들이 시계를 맞추었을 정도로 규칙적인 하루 일과는 유명하다. 칸트는 일생에 단 두 번 일과표에서 벗어났다고 한다. 한 번은 루소의 <에밀>을 읽다가, 또 한 번은 프랑스 혁명 소식이 실린 신문 기사를 읽다 일과표를 어겼다고 한다. 문득 <무소유>의 법정 스님이 떠오른다. 산중 깊은 암자에서 홀로 살아갈 때도, 극심한 몸살 때문에 두 번 정도 아침 예불을 거르지 않았다고 한다. 내게 불경을 보는 눈을 열어 준 성암당 종범 스님도 매우 규칙적으로 하루 일과를 보낸다. 스님은 개인 방에서도 법당에서와 같이 가사와 장삼을 입고 경을 읽는다. 이렇듯 자기 자신과의 약속을 한결 같이 일상에서 실천하는 사람을 보면 경이롭다. “전쟁에서 수천만의 적을 이기기보다 자신을 다스리는 사람이 진정한 승리자다”라는 말씀을 떠오르게 하는 분들이다. 규칙적 반복은 곧 습관이 된다. 그래서 좋은 습관이 오래 가면 ‘몸이 된 마음’이 되고 ‘마음이 된 몸’이 될 것이다.

실상사작은학교.  사진 실상사 제공
실상사작은학교. 사진 실상사 제공
나는 삶으로 말하는 사람을 닮고 싶다.

사람 사는 세상은 늘 말이 넘친다. 거짓과 모함과 폭력의 말이 넘친다. 허세와 비난과 험담의 말이 넘친다. 똑똑하고 지식이 넘치는 말도 넘친다. 세련되고 유려한 말이 넘친다. 말만을 놓고 보자면 매우 그럴듯한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이 넘쳐나고 있다. 그런데 그런 말들을 하는 사람들에게서 그윽한 인품의 향기가 드물다. 말이 앞서가기보다 몸으로 보여주는 말을 하는 사람이 드물다. 날카로운 분석과 조리있는 주장보다 언행일치로 말하는 사람이 드물다.

지인들 중에서 남의 말을 하지 않는 사람들을 보면 새삼 그의 얼굴과 일상의 처신을 유심히 보게 된다. 사실 험담과 뒷 담화는 사람들이 제어하기 힘든 인간의 속성이다. 그럼에도 남의 말을 하는 분위기에 휩쓸리지않는 사람은 속이 깊은 사람이다. 아울러 그런 사람은 절제와 침묵의 의미를 알고 있는 사람일 것이다.

나는 자기 나름의 확고한 행복의 법칙을 정하고 실천하는 사람이 좋다.

항상 무난하고 원만하게 인간관계를 유지하며 묵묵하고 여여하게 살아가는 지인이 있다. 그는 실패하지 않는 세 가지 신조를 내게 들려주었다. 첫째, 타인의 눈을 의식하지 않고도 평생 자기 스스로가 기쁨과 의미를 누릴 수 있는 ‘꺼리’을 가지고 실행하는 것. 둘째, 누구에게도 줄을 서지 않는 것. 셋째, 나의 생각과 방식을 가지고 남에게 영향력을 미치려는 생각을 하지 않는 것. 그는 그 중에서 첫 번째가 중요한 것 같다고 말한다. 사람은 대개 자족할 만한 무엇이 없으면 타인의 반응에 기대어 삶의 기쁨과 존재의미를 학인하려 하기 때문에 갈등과 충돌이 생기는 것 같다고 진단한다. 백번 맞는 말이다.

실상사작은학교.  사진 실상사 제공
실상사작은학교. 사진 실상사 제공
올해, 귀가 순해져야 한다는 이순(耳順)을 맞으면서 이런저런 생각을 많이 한다. 삶의 여정에서 방향과 바탕이 바뀌지는 않았다. 대신 수행의 길, 삶의 길에서 ‘결’이 달라지고 있다. 분석과 비평보다는 침착하고 정직한 자기 성찰, 주장과 설득보다는 침묵과 경청, 조언과 권고보다는 묵묵한 실천, 말로 말하기보다 몸으로 말하기, 다름을 발견하기보다는 같음을 보기, 앞에서 주장하기 보다는 옆과 뒤에서 소리 없이 돕기, 나는 그런 삶을 살고자 한다.

이제는 똑똑한 사람보다 어눌한 듯한 사람이 믿음이 간다. 뜨거운 열정이 넘치는 사람보다 묵묵한 걸음을 걷는 사람이 좋다. 책을 통해 가르침이 넘치는 사람보다 일상의 사사건건에서 배움을 주는 사람이 좋다. 이제는 그렇게 ‘큰 바위 얼굴’이 되어야 할 때다. 이런 생각이 절실한 것을 보니 이제야 철이 드는 시절인연이 오나 보다.

글 법인스님/실상사 한자 &실상사작은학교 철학선생님 &전 조계종 교육부장 &전 참여연대 공동대표

***이 시리즈는 대우재단 대우꿈동산과 함께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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