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낮에 뜨는 별을 보신 적이 있는가. 내가 사는 집 뒤란으로 돌아가면 하얀 별들이 대낮에도 반짝인다. 밤새 하늘에 흐르던 은하의 강물이 쏟아진 걸까. 그 별들의 정체는 몸을 한껏 낮추고 자세히 보아야 비로소 보인다. 땅에 뿌리를 박고 촘촘히 무리쳐 피어 있는 별꽃들! 학명은 ‘스텔라나’(stellana). 스텔레나는 ‘별에서 유래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학명을 지은 이의 눈 밝은 시선이 놀랍다. 호화찬란한 꽃들이 수없이 많은 데도 소박한 모습의 이 작디작은 꽃에 옛 사람들은 별이라고 이름을 붙인 것이다.
우리 집 뒤란의 텃밭에는 하얀 별꽃도 무리져 있고, 별꽃과 모양이 비슷한 쇠별꽃도 흩어져 있다. 쇠별꽃은 별꽃보다 잎도 크고 꽃도 커서 눈에 잘 띄지만, 별꽃은 주의 깊게 보지 않으면 눈에 띄지 않을 만큼 작은 꽃이다.
난 조반을 먹고 텃밭에 깔린 별꽃과 쇠별꽃들이 너무 많이 번져 좀 솎아주려고 호미를 들고 뒤란으로 돌아갔다. 우리 집 셰프도 일을 거들겠다고 따라나섰다. 고추밭과 오이밭 고랑에 있는 별꽃과 쇠별꽃 덩굴을 뜯어서 셰프에게 건네주며 말했다.
“자, 이 풀들을 닭장에 넣어주세요!”
“닭들이 이 풀들을 먹을까요?”
“내 어릴 적 경험으론 닭들이 이 풀을 아주 좋아한다오.”
셰프가 별꽃 덩굴을 한 아름 들고 가 닭장 문을 열고 넣어주자 닭들이 꼬꼬, 꼬꼬거리며 맛있게 쪼아먹었다. 오죽하면 별꽃을 영어로 치킨 위드(Chick weed)라 부르겠는가. 닭들이 즐겨 먹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 병이 들어 비실거리는 닭들도 별꽃을 뜯어먹고 나면 건강해져서 알을 잘 낳는다. 토끼도 별꽃을 잘 먹기 때문에 래빗 위드(Rabbit weed)라고 부르고, 거위가 좋아한다고 하여 구스 위드(Goose weed)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처럼 동물들은 병이 나면 약초를 뜯어먹고 스스로를 치유할 줄 안다. 동물들은 약초를 사람보다 더 잘 안다. 별꽃은 사람뿐만 아니라 동물들한테도 좋은 약초인 것. 별꽃을 닭장에 넣어주고 온 셰프가 말했다.
“정말 맛있게 먹는 걸 보니, 별꽃은 닭들의 진수성찬이네요.”
“그렇다니까요.”
난 별꽃과 쇠별꽃을 조금 더 솎아서 닭장에 넣어준 뒤 남은 것을 셰프에게 건네주었다. 오늘 아니라도 좋으니 별꽃으로 샐러드를 해달라는 말을 덧붙여!
별꽃은 석죽과에 딸린 두해살이풀로 우리나라와 중국, 일본, 만주, 유럽 등 세계 곳곳에 넓게 퍼져 자란다. 전 세계적으로 분포역이 가장 넓은 식물 중 하나가 별꽃이다. 물기가 많은 밭둑이나 길가에 덩굴로 뻗으면서 자란다. 봄부터 초여름까지 줄기 끝에서 꽃줄기가 자라 나와서 아주 조그맣고 하얀 꽃을 피운다. 어떤 시인의 말처럼 별꽃은 자세히 보아야 더 예쁘다.
줄기는 밑에서 가지가 많이 갈라지며, 길이 10〜20cm로 밑부분이 땅에 누워서 자란다. 잎은 마주나며 달걀 모양이다. 꽃은 5〜6월에 가지 끝 취산꽃차례로 핀다. 취산꽃차례란 꽃대 끝에 꽃이 피고, 그 아래 가지와 곁가지에 차례로 꽃이 피는 걸 뜻하는 말. 꽃자루는 꽃이 진 후 밑으로 굽었다가 열매가 익으면 다시 곧추선다. 꽃받침잎은 5장이다. 꽃잎은 5장으로 깊게 두 갈래로 갈라지며, 꽃받침잎보다 조금 짧다. 흔히 볼 수 있는 쇠별꽃과 비슷하나 별꽃은 쇠별꽃보다 크기가 작으며 암술대가 3개로, 암술대가 5개인 쇠별꽃과 뚜렷이 구분된다. 별꽃은 씨앗으로 번식하는데, 씨앗은 8~9월에 익는다.
그런데 별꽃은 그 꽃에 놀라운 비밀을 품고 있다. 별꽃의 꽃잎을 헤아려 보며 10장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 절반인 다섯 장밖에 안 된다. 이것은 한 장의 꽃잎이 아래에서 토끼의 귀처럼 둘로 갈라져서 꼭 두 장처럼 보이는 것. 보통 꽃이 피는 것은 벌레를 불러들여 가루받이를 하기 위함이다. 그러자면 벌레의 눈길을 끌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하다. 별꽃이 꽃잎 수를 두 배로 보이도록 하고 있는 것은 바로 가루받이 때문이라는 것. 식물이 가진 생존의 지혜가 정말 놀랍다.
하지만 별꽃은 우리나라 농부들에겐 그저 뽑아버려야 할 잡초로 여겨질 뿐이다. 이 식물은 뿌리가 수없이 갈라지면서 자라는 특성이 있어서 뿌리가 다른 식물을 덮어버리는 까닭에 농부들이 아주 싫어하는 풀. 별꽃의 경우는 뿌리까지 단번에 뽑아버리지 않으면 곧 새로운 뿌리가 또 다른 세력을 키우기 때문에 농부들은 호미로 전초를 캐 버리거나 제초제를 뿌려 제거하곤 한다.
별꽃은 그 생긴 모양도 볼품없고 꽃도 너무 작아 사람들의 주목을 받지 못하는 풀이지만 만병통치약이라 부를 만큼 약성이 뛰어나다. 별꽃은 우리나라나 중국보다는 오히려 서양에서 귀한 대접을 받는 풀. 서양 사람들은 별꽃의 맛이 시금치와 비슷해서 주로 샐러드를 만들어 먹는다. 어린 줄기와 잎을 뜨거운 물로 살짝 데쳐서 양념을 넣고 무쳐 먹으면 맛이 새콤하고 담백하다. 우리 집 셰프도 별꽃 샐러드 만드는 걸 매우 좋아하고, 요리하기 쉬운 별꽃 죽도 끓여 식탁에 올리곤 한다. 별꽃 죽은 디포리 달인 물에 별꽃 잎과 쌀을 넣어 끓여 소금으로 간을 맞춰 먹으면 된다. 봄철이면 우리 집 식탁엔 별꽃으로 만든 요리가 심심치 않게 올라오는 편이다.
이처럼 나물로 먹어도 좋은 별꽃은 영양물질과 약효 성분이 아주 많이 들어 있다. 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별꽃에는 비타민 C, 베타카로틴, 칼슘, 항응혈제인 쿠마린, 항암 효과가 높은 제니스틴(Genistein), 감마 리놀렌산, 심장을 튼튼하게 하고 암을 예방하는 플라보노이드, 비타민 B3, 칼륨, 비타민 B2, 모세혈관을 튼튼하게 하고 타박상과 치질에 좋은 루틴, 면역력을 늘리고 심장을 튼튼하게 하는 규소, 철분, 망간, 비타민 B1, 아연 등이 들어 있다. 또 별꽃에는 항바이러스 물질과 항균 물질이 들어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별꽃은 이처럼 우리 몸의 여러 질병에 효험이 있지만, 내 경험으론 특히 잇몸병에 잘 듣는다. 잇몸이 본래 튼튼하지 못한 나는 별꽃을 솥에 넣고 볶아 가루를 내어 같은 양의 천일염과 섞어서 양치질을 하곤 한다. 별꽃 농축 가루를 잇몸에 바르든지 물에 타서 자주 마셔도 된다. 별꽃은 잇몸을 튼튼하게 하고 피를 멎게 하는 작용이 있다. 또 치통이 심할 때 별꽃 잎을 뜯어 조그맣게 뭉쳐 물고 있으면 통증이 금세 가라앉는다.
임산부가 젖이 잘 안 나올 때 써도 큰 효험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별꽃으로 샐러드를 만들어 먹어도 되고, 된장국을 끓일 때 별꽃을 넣어 먹으면 젖이 잘 나올 뿐만 아니라 산후 회복이 빠르고 피도 맑아진다고 한다.
서양에서는 별꽃을 몸속에 있는 여러 질병뿐만 아니라 온갖 피부병을 치료하는 데도 많이 쓴다고 한다. 습진이나 발진(發疹), 피부가 튼 데, 벌레한테 물리거나 벌에 쏘인 데, 기저귀를 오래 차서 생기는 피부가 헌 데, 모든 피부의 상처에 별꽃을 짓찧어 붙이거나 즙을 내어 바르면 잘 듣는다.
일본인들도 별꽃을 중요한 약초로 여긴다고 하는데, 그들은 봄을 대표하는 일곱 가지 풀, 즉 ‘봄의 칠초’(七草)를 정해 두고 그 일곱 가지 풀로 죽을 쑤어 먹으면 몸속의 사기를 몰아내고 질병을 예방할 수 있다고 믿는 풍습이 있다. 그 일곱 가지 풀들 속엔 별꽃도 포함된다. 미나리, 냉이, 별꽃, 풀솜나물, 광대나물, 순무, 무가 곧 일곱 가지 풀. 이 풀들로 쌀을 넣고 죽을 끓여 먹으면 겨울철에 부족해지기 쉬운 영양소를 보충하고 면역력을 키우는 데 큰 효과가 있다고 한다.
별꽃을 솎아내고 나서 며칠이 지난 어느 날이었다. 마침 남녘 땅에 사는 아들이 하루 휴가차 집에 오자, 우리 집 셰프는 요리 솜씨를 발휘했다. 뒤란의 텃밭에서 뜯어 냉장실에 넣어 두었던 별꽃 나물로 샐러드를 만들어 식탁에 올린 것. 샐러드를 먹던 아들이 맛이 좋다며 셰프에게 물었다.
“이 샐러드는 뭘로 만들었죠?”
“뒤란에서 네 아버지가 채취한 별꽃으로 만들었단다.”
“별꽃요? 땅 위의 별, 별꽃이란 말이죠?”
아들은 이렇게 물으며 신기하다는 듯 눈이 휘둥그레졌다. 일본에서 오래 머물며 유학을 한 아들은 별꽃과 관련된 노래를 들은 적이 있다고. 그러면서 카리스마 넘치는 노래 한 곡을 들려주었다. 일본의 인기가수 나카시마 미유키의 히트곡 ‘땅 위의 별’이란 노래였는데, 그 노래 가사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땅 위의 별을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네
사람들은 하늘만 쳐다보고 있어
제비야 높은 하늘에서 가르쳐 줘
땅 위의 별을
제비야 땅 위의 별은
지금 어디에 있는 것일까
이 노랫말처럼 별꽃이야말로 땅 위의 별이라 부르기에 손색이 없는 풀꽃이다. 흔하디흔해서 더욱 귀한 풀꽃이다. 사람이나 잡초나 진정으로 위대한 스타는 홀로 우뚝 솟아 있지 않고 멀리 있지도 않고 우리와 가까운 곳에 살고 있는 것이 아닐까.(이나가키 히데히로, <풀들의 전략> 참조)
글 고진하 목사 시인
***이 시리즈는 대우재단 대우꿈동산과 함께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