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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심정 좋은글

길희성 교수가 말하는 최고 행복

등록 2013-07-22 14:17



*영화 <남쪽으로 튀어> 중에서

내가 머물고 있는 강화도에 아주 멋진 사람이 살고 있다. 그에게 무슨 재미로 사냐고 물으면 "빈둥빈둥하는 재미로 삽니다, 고상한 말로는 '유유자적'이라고도 하지요"라고 말해 사람들의 웃음을 자아낸다.

"무슨 재미로?"라는 물음은 따지고 보면 무엇에 마음을 두고, 무슨 가치에 의미를 두고 사느냐는 말이다. '빈둥빈둥하는 재미'란 어떤 특별한 재미나 의미 같은 것을 추구하지 않고 그저 평범하게 일상적 삶을 즐기며 산다는 말로 이해된다. 약간 확대하면 "인생이 뭐 별 것 있겠는가, 삶이 꼭 특별한 재미나 큰 의미 같은 것이 있어야만 하는가?"라는 일종의 체념 내지 달관이 담긴 말처럼 들리기도 한다.

하지만 그렇게 사는 것이 쉬워 보이지만 결코 쉽지 않다. 그야말로 도인의 경지에 들어야 가능한 일이다. 마음을 비우고 무욕의 삶을 사는 지혜, 무위자연의 경지를 터득해야 비로소 유유자적할 수 있기 때문이다.

"누가 나에게 '왜 사느냐' 묻거든 '그냥 살기 위해 산다'고 대답하겠다."중세 신학자이자 영성가 마이스터 에크하르트의 말이다. 신학자의 입에서 나온 말치고는 실로 파격적이다. 하느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산다든지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 산다는 말이 나올 법도 한데, 허를 찌르는 듯한 대답이 할 말을 잃게 만든다. 일체의 욕망-악한 욕망은 물론이고 선을 이루려는 욕망-으로부터 해방되어 무욕으로 사는 사람은 그야말로 아무런 이유 없이, 아무것도 구하는 바 없이 그저 산다. 정말 고차원적 삶이다. 일체의 성취욕이나 가치의 추구, 의미의 추구에서 해방된 최고의 삶이다. 의미의 포기가 최고의 의미이며 무위가 최고의 행위라는 도가적 역설의 지혜와도 일치한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이렇게 자족적인 무위자연의 삶도 하나의 선택이자 목적이라는 사실이다. ... 인위적 목적 추구를 거부하고 자연과 하나 되어 사는 삶이 저절로 이루어진다면 모르지만, 그것 역시 또 하나의 목적이며 가치가 되는 것을 피할 수 없다. 사실 아무런 의미도 추구하지 않고 그냥 살면 된다는 식의 생각은 치열하게 어떤 가치나 의미를 추구하는 삶을 살아 본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마지막 결론과도 같다. 인생의 쓴맛 단맛 다 본 사람, 그러다 보니 인생이 별것 아니고 무언가를 성취하려는 노력이 다 부질없고 오히려 불행만 더 키운다는 생각을 반영하는 냉소적 인생관이 깔려 있다. 목적과 가치, 의미 등을 내려놓고 사는 것이 오히려 최고로 행복하고 의미 있는 삶이라는 것이다.

<길은 달라도 같은 산을 오른다>(길희성 지음, 휴)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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