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5월14일부터 16일까지 전남 광주의 도청 앞 광장에는 시민과 학생이 참가한 ‘민족 민주화 성회’가 열렸다. 집회 참가자는 마지막날 5만여명에 이르렀다. 5월17일 밤 김대중과 동교동 사람들이 중앙정보부로 끌려간 시각에 광주에는 특전사 7공수여단과 11공수여단이 배치됐다. 전두환 신군부는 김대중을 체포할 ...
김대중의 서울대병원 병실 감금이 계속되자 이희호는 1978년 9월1일 법무부 장관과 서울구치소 소장에게 이감신청서를 보냈다. “동일 사건의 다른 분들은 다 석방시키면서 법의 형평 원칙을 깨고 수형자를 8개월 이상이나 밀폐 상태인 병실에 수감하여 운동도, 집필도, 서신의 수발도 금함으로써 육체적·정신적 고통을 ...
박정희 정권은 3·1 민주구국선언 사건 구속자들의 면회를 막다가 1976년 3월29일에야 변호사 접견을 허락했다. 그러나 가족 면회는 계속 금지했다. 남편을 감옥에 빼앗긴 부인들이 부활절 전야인 4월17일 목사 김상근이 시무하던 수도교회에 모여 밤샘기도를 했다. 구속자 가족들은 새벽에 사직터널과 독립문을 지나 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