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끄네 농장을 오픈하게 되어 할 일이 많을 때라 건강검진이 부담스러웠지만 막상 하고 나니깐 올해 제일 잘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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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끄는 매년 한두 번 동물병원에 가서 건강검진을 한다. 그 모습을 본 친구가 “히끄 건강은 그렇게 신경 쓰면서 너는 왜 건강검진을 하지 않아? 너도 이제 30대 후반이고 한 번도 건강검진을 하지 않았으니깐 올해는 꼭 하자”며 재작년부터 나를 설득했다. “나는 사람이라 아파도 의사를 표현할 수 있고 기대수명이 높지만, 동물은 그게 아니니깐 히끄랑 같을 순 없지”라고 이야기했지만 친구가 2년 넘게 지켜보다가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었는지 나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건강검진 예약을 해버렸다.
직장인이라면 회사에서 해주는 건강검진이라도 받았을 텐데 나는 시간을 일부러 내야 하는 자영업자인데다 스스로 건강하다고 생각해서 별생각이 없었다. 나의 고집을 아는 친구라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평생 안 할 것이라고 판단을 한 것이다.
생애 첫 건강검진이라 위·대장내시경과 MRI까지 포함해서 100만원 상당의 검진을 ‘친구 찬스’로 하게 됐다. 히끄 때는 동물병원에서 200만원을 결제해도 아무렇지 않았는데 나한테 이런 돈을 쓰는 게 사치스럽게 느껴졌다. 비용도 비용이지만 얼마 전 ‘히끄네 농장’을 오픈해서 한창 천혜향 판매로 주문이 밀려오고 바쁠 때 시간을 내어 서울에 다녀오려니 고마움보다 부담감이 커졌다.
히끄는 1년에 두 번은 반드시 건강검진을 위해 동물병원에 간다. 이제 흔들리는 히끄의 동공을 더욱 이해하게 됐다.
‘어떻게 하면 최소한의 시간으로 건강검진을 받을 수 있을까? 대장내시경만 아니면 당일치기로 다녀오면 되는데..’ 이런 생각을 하다가 대장내시경 검진을 위해 5일 전부터 식이조절을 할 때쯤엔 검진을 피할 방법은 친구와 절교하는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하지만 건강검진이 예정된 의료재단에서 대장내시경 준비 약을 택배로 보내주고, 사전 안내 전화를 2~3번 해서 신경을 쓰는데 취소하는 건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에 결국 비행기에 올랐다.
드디어 3일5일, 생애 첫 건강검진이기도 하지만 생애 첫 수면 마취 예정이라 히끄를 꼬옥 안아주고 건강한 모습으로 잘 다녀오겠다고 말해줬다. 히끄가 있는 우리 집이 세상에서 제일 편하지만, 대장내시경 때문에 검진센터 근처에 호텔을 예약했다.
검진 전날 저녁부터 이온 음료 맛의 약을 물 3리터에 타서 3시간 동안 마셨다. 새벽까지 내 안의 모든 걸 쏟아내는 경험을 했다. 사람들 후기를 보면 약 먹는 거부터 힘들다고 하는데 평소에 물을 많이 마시고 약 맛이 좋아서 괜찮았다. 대장내시경은 문제가 없으면 5년 동안은 다시 안 해도 된다니까 이왕 하는 김에 제대로 하자 싶었다. 새벽까지 모든 거사(?)를 치르고 검진센터로 향했다.
아침 일찍부터 꽤 많은 사람이 건강검진을 받고 있었지만, 직원들의 전문적인 일 처리 덕분에 공장 시스템처럼 일사불란하게 끝났다. 부인과 검진에 대해 여러 괴담이 있어 걱정했지만, 많이 배려해주어서 아무렇지 않았다.
친구와 절교까지 생각할 만큼 건강검진을 안 하고 싶었지만, 막상 해보니 오랜 숙제를 마친 기분이 들었다. ‘한 집안의 가장이자 한 고양이의 반려인으로서 책임감을 가져야 하는데 제일 중요한 건강 상태를 모르고 있었구나.’ 반성까지 했다. 그리고 사람도 이렇게 건강검진을 하려면 피곤한데 그동안 히끄도 반려인이 극성이라서 힘들었겠다 싶어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동물 건강검진은 사람보다 중요한 만큼, 아부지 역시 그것만은 포기 못 한다.
내가 히끄를 위하는 것처럼 나를 위해 건강검진을 예약한 친구의 마음을 알게 됐다. 고맙다고 말했다. 작은 병 방치하면 큰 병 된다는 말은 동물이나 사람이나 생명을 가진 존재에게 모두 해당하는 말이다. 반려인이 건강을 잃으면 반려동물을 온전히 책임질 수 없는 상황이 오기 때문에 예방이 중요하다는 걸 깨닫고 반성하는 경험이었다.
글·사진 이신아 히끄 아부지·<히끄네 집>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