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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멀피플 반려동물

히끄와 미래냐, 집사의 도리냐…둘 다 놓치지 않을테야

등록 2022-12-20 13:30수정 2022-12-20 14:02

[애니멀피플] 히끄 아부지의 제주 통신
⑧ 히끄와의 미래 위해 ‘히끄네 농장’ 연 아부지
히끄네 농장을 위해 홍보해주는 효자 아들.
히끄네 농장을 위해 홍보해주는 효자 아들.

평소에 친구들과 어울리는 시간보다는 집안일을 하면서 히끄와 함께 있는 걸 더 좋아한다. 그래서 시간이 많은 여유로운 생활을 하는 편이었는데 올해는 ‘히끄네 농장’을 시작하게 되면서 집 밖에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제주의 농산물을 중개해 인터넷으로 판매하는 히끄네 농장은 우연한 기회로 시작됐다. 올해 2월 농업기술센터에서 농사를 함께 배웠던 언니가 천혜향이 맛있는 하우스를 통째로 사고 싶은데 본인은 판로가 많지 않으니 수확부터 판매까지 함께 해보자고 제안했다. 그때만 해도 히끄네 농장을 이렇게 꾸준하게 지속적으로 하게 될 줄은 몰랐다.

5일간 수확과 선별을 끝내고 농장 컨테이너에 빼곡히 쌓아진 천혜향을 보며 처음엔 부담감을 느꼈다. ‘다 안 팔리면 어떡하지?’ 추운 농장에서 5톤 분량의 천혜향을 밤새 하나하나 선별하느라 손가락 마디가 아프고 손끝이 갈라졌다. 지금은 알바를 고용하지만, 이땐 포장 상자를 테이프로 붙이는 물류 작업까지 모두 직접 했다.

농산물을 선별하느라 고생하는 손가락(오른쪽)과 히끄에게 충전중인 아부지. 일이 힘들어도 버틸 수 있는 것은 히끄 덕이다.
농산물을 선별하느라 고생하는 손가락(오른쪽)과 히끄에게 충전중인 아부지. 일이 힘들어도 버틸 수 있는 것은 히끄 덕이다.

이렇게 꼼꼼히 선별된 맛 좋은 천혜향을 받은 고객의 반응은 엄청났다. 판매 열흘 만에 완판! 리뷰를 모두 읽어보고 알았다. 고객들은 저렴한 가격보다 제대로 된 상품을 원한다는 걸 말이다. 내가 좋은 농산물을 구하기만 한다면 구매할 고객은 많다는 걸 입증한 계기였다. 블루베리부터 초당 옥수수, 단호박, 레드키위, 귤까지 완판이 이어졌다.

물론 좋은 일만 있는 건 아니다. 얼마전 황금향 판매를 위해 새로운 거래처를 소개받았는데 자꾸 말이 바뀌었다. 일주일에 1톤 분량은 못 준다고 하더니 준비 상황을 물으니 1톤 넘게 수확을 해서 바로 줄 수 있다고 하고, 비상품(덜 익거나 유통규격에 미달한 상품)은 선별해서 준다고 하더니 막상 거래할 때는 상태가 안 좋고 신선도가 떨어지는 황금향이 많이 보였다.

이렇게 복잡한 상황을 설명할 여유가 없어 고객들한테는 당도 문제 때문에 계속 판매할 수 없다고 했다. 하지만 꼭 그 문제만은 아니었다. 다행히 다른 농장의 황금향을 사와서 부족한 물량은 맞출 수 있었다. 황금향 판매중지는 이 농장과 더 이상 거래하고 싶지 않아서 내린 결정이었다.

농장물 택배 송장 검사를 맡은 아들내미 히끄.
농장물 택배 송장 검사를 맡은 아들내미 히끄.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는 뭘까? 사실 히끄네 농장의 이름을 지을 때 히끄에게 피해를 줄까 봐 다른 이름으로 하려고 했었다. 그런데 민박부터 그래왔듯이 ‘히끄의 이름에 폐가 되지 않게 잘 해내면 되잖아?’라는 생각이 들었다.

히끄네 농장은 흔히 에스엔에스(SNS) 인플루언서들이 하는 주문만 받는 공구 형식이 아니다. 1년 동안 농산물이 잘 자랐는지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농부와 수확과 선별을 함께 하면서 소통한다. 돈을 받고 농산물을 판매하는 사람이라면 이 정도의 노력은 당연한 거라고 생각한다.

히끄네 농장 운영 10개월. 히끄와의 일상에도 변화가 생겼다. 농산물 판매가 시작되면 새벽에 5시쯤 일어나 편도 2시간 버스를 타고 농장에 출근한다. 다른 반려 가족에게는 반려인이 출근하는 것이 흔한 일상이지만 우리에겐 처음있는 일이다. 항상 아부지와 함께 있다가 혼자 있는 시간이 늘어난 히끄는 장난감 통에서 스스로 장난감을 꺼내 놀기도 하고, 마당 고양이들과 창문을 가운데 두고 대화를 하기도 한다.

항상 아부지와 함께 있다가 혼자 있는 시간이 늘어난 히끄는 장난감 통에서 스스로 장난감을 꺼내 놀기도 하고, 마당 고양이들과 창문을 가운데 두고 대화를 하기도 한다.
항상 아부지와 함께 있다가 혼자 있는 시간이 늘어난 히끄는 장난감 통에서 스스로 장난감을 꺼내 놀기도 하고, 마당 고양이들과 창문을 가운데 두고 대화를 하기도 한다.

잘 있을 건 알지만 그래도 일하는 틈틈이 시시티브이(CCTV)로 히끄의 안부를 확인하게 된다. 자식을 독립시키는 마음이 이런 기분일까. 그럴수록 히끄와 함께 하는 일상이 소중하다는 걸 깨닫고 농장에 출근하지 않는 날에는 히끄를 보살피는 시간에 집중하게 된다. 택배 주문이 밀려 있어도 야근을 하지 않는 이유도, 새벽부터 농장에 가는 이유도 모두 ‘집사의 도리’를 다하기 위해서다.

때론 혼자 있는 히끄가 짠하기도 하지만 우리의 안정된 미래를 위해 서로가 조금씩 양보하는 시간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20대 시절 나는 무엇을 할지 몰라 방황했다. 이제는 그 방황을 보상 받을 시간이다. 그 방법은 기회가 왔을 때 열심히 하는 것뿐이다. 무엇보다 나에겐 히끄라는 충전기가 있기에 그 어떤 ‘방전’도 두렵지 않다.

글·사진 이신아 히끄 아부지·<히끄네 집>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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