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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멀피플 반려동물

맘구맘구야, 어디서 왔니

등록 2018-03-26 11:00수정 2018-03-27 15:12

[애니멀피플] 히끄의 탐라생활기
유기동물 안락사 비율 높은 제주
혐오 대상이 된 길개·길고양이
이들 생의 악순환 누가 만들었나
히끄가 맘구맘구의 강아지들이 사료를 먹는 모습을 보고 ‘하악’거리고 있다.
히끄가 맘구맘구의 강아지들이 사료를 먹는 모습을 보고 ‘하악’거리고 있다.
흰 개는 우리 집 대문이 열려 있으면 들어와서 길고양이 사료를 훔쳐 먹었다. 며칠 후면 다른 개들처럼 안 오겠지 싶어서 그냥 두었는데 매일 와서 고양이를 쫓고 사료를 뺏어 먹었다. 거실에서 놀던 히끄가 이유 없이 ‘하악’거리면 십중팔구 흰 개가 마당으로 들어왔다는 뜻이다. 히끄는 길고양이 시절에 개한테 쫓긴 적이 있었는지 개를 무척 싫어한다. 흰 개는 사람을 무서워해서 다가가면 뒷걸음쳤지만, 싫지는 않은지 꼬리를 흔들었다.

젖이 불어 있는 거로 보아 출산한 지 얼마 안 된 것 같았는데, 우연히 흰 개의 사연을 알게 됐다. 떠돌이 흰 개는 우리 집 옆 신축빌라 공사장에서 강아지 7마리를 홀로 낳았다고 했다. 마을 주민이 마을에 떠도는 길개들을 신고해서 모두 잡아갔는데, 데려가 봐야 안락사나 당하지 싶어서 흰 개와 강아지들을 못 잡아가게 했다고 공사장 관계자가 말했다.

사연을 듣고 나니 흰 개가 마음이 쓰였다. 엄마 백구라는 의미로 ‘맘구맘구’라는 이름을 지어줬다. 공사장에서 사료를 챙겨주긴 했지만, 황태를 넣은 미역국을 따로 챙겨줬다.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은 그것뿐이었다. 다행히 공사장 관계자의 노력으로 강아지 8마리 중 7마리는 입양이 됐다. 맘구맘구와 강아지 한 마리가 오조리에 남았으나, 또 임신과 출산을 해서 강아지가 7마리로 늘었다.

제주도 여행을 와서 일부러 개를 버리고 가는 사람들이 있다고 하지만 내가 5년 동안 지켜본 바로는 원정 유기와는 다른 문제가 있었다. 문제는 바로 시골 지역에서 어르신들이 키우는 개였다. 길개가 생기는 과정은 이렇다. 똥개라고 불리는 강아지를 시장에서 사온다. 철물점 목줄을 사서 개 목에 채우고 1m 정도 되는 짧은 줄에 묶어놓는다. 사료가 아닌 음식물 쓰레기를 먹이면서 키운다. 개가 짖거나 똥을 싸면 귀찮아져서 목줄을 풀어놓는다. 그럼 길개가 되는 것이다. 길개가 안 되는 경우도 있다. 이렇게 키운 개를 개장수에게 판다. 그리고 또 강아지를 데려온다.

맘구맘구가 마당에서 밥 먹는 모습을 히끄가 경계하듯 보고 있다.
맘구맘구가 마당에서 밥 먹는 모습을 히끄가 경계하듯 보고 있다.
제주도 길개 중에 목줄이 살을 파고들어서 구조된 개들이 많다. 이유가 무엇일까? 몸이 다 크기도 전에 버려졌기 때문이다. 대부분 이런 개들은 믹스(혼혈) 대형견이라서 아파트 생활을 하는 우리나라에서 입양이 힘들다. 구조자가 임시보호를 하면서 많은 시간과 비용을 들여 수술을 시키고, 외국으로 입양을 보낸다.

이것 또한 운이 좋은 길개의 이야기이고, 대부분의 길개들은 중성화가 되지 않았기 때문에 반복된 임신과 출산을 하게 된다. 그렇게 되면 개체 수의 증가로 악순환이 반복된다. 개의 습성상 무리를 지어 다니면 “들개를 잡아가라”는 민원에 유기견보호센터에 보내져서 안락사된다. 참고로 2017년 유기동물 안락사 비율 전국 1위가 제주도였다.

히끄는 창밖의 길개들을 보며 무슨 생각을 할까. 사람들처럼 불편함과 공포를 느낄까. 자신의 처지가 그랬듯 갈 곳 없이 방황하는 길개들의 처연함에 하악질하며 몸서리를 치는걸까. 사람들이 이것만 알았으면 좋겠다. 길고양이나 길개를 불편해하고 무서워하고 혐오하기 전에, ‘이 고양이와 개들이 어디서 왔을까?’ 생각해보기를 말이다.

이신아 히끄아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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