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끄가 캣타워 꼭대기에 누워 잠을 자고 있다.
제주도에 이주한 지 얼마 안 됐을 때 전자제품 매장에 갔는데 그때 제습기를 처음 보았다. 매장 직원에게 물어보니 제주도 사람들 필수 혼수품 중 하나가 제습기라고 했다. 제주도에서 살아보니 정말 사계절 내내 필요한 게 제습기였다. 특히 우리 집은 오래전에 지어진 농가 주택이라서 습기에 취약하다. 이사하기 전에 청소하러 왔는데 방마다 벽지에 곰팡이가 심하게 피어 있었다. 가구가 있던 자리에는 축축한 벽지에서 퀴퀴한 냄새까지 났다.
히끄는 길고양이 시절에 곰팡이성 피부염에 걸린 적이 있어서 이런 환경에 다시 노출하고 싶지 않았다. 곰팡이성 피부염은 모든 고양이가 한번쯤은 걸린다고 할 정도로 흔하고 재발이 잦다. 생명에 지장은 없지만, 치료 기간이 오래 걸리므로 예방이 중요하다. 높은 습도와 비위생적인 환경은 곰팡이가 살기 좋다. 곰팡이 핀 젖은 벽지를 모두 떼어내고 곰팡이 제거제를 뿌리고 닦아냈다. 벽지 도배를 하려다 항균 페인트를 바르는 게 곰팡이를 예방하고 관리하기 쉬울 거라 판단했다. 다행히 곰팡이는 그때 이후로 자취를 감췄다.
요즘 제주 날씨가 이상해서 곰팡이와 싸우던 그때가 생각난다. 청량하고 햇빛 쨍쨍한 날이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습하고 흐린 날의 연속이기 때문이다. 우리 집에는 해마다 제비가 와서 처마 밑에 집을 짓는데, 올해는 얼마나 습한지 제비집이 부서졌다. 제비들은 아무렇지 않게 그 자리에 다시 집을 지었다. 마당에서 반나절이면 바짝 마르던 빨래는 흐물흐물 꿉꿉하다.
히끄의 체취와 습기를 머금어 묘한 냄새를 내뿜던 캣타워를 손보기 위해 마당에 내놓았다.
그리고 며칠 전부터 내 방에서 알 수 없는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히끄를 시작으로 가구마다 냄새를 맡으면서 범인 색출 작업을 했는데, 범인은 히끄의 ‘캣타워’였다. 계속되는 습한 날씨 때문에 원목으로 만들어진 캣타워가 히끄의 채취와 함께 습기를 흡수해서 퀴퀴한 냄새를 뿜어내고 있었다. 이 캣타워는 친구의 남편이 길고양이 히끄가 3주 동안 행방불명됐다 다시 돌아왔을 때, 귀환을 축하하는 의미로 직접 만들어준 것이다.
캣타워에서 냄새가 나기도 하고, 내가 물컵을 올려두어 만든 얼룩도 있어서 리폼을 해주기로 했다. 원형 샌더기(표면을 부드럽게 다듬는 기계)를 가진 친구가 캣타워 표면을 매끈하게 벗겨내 줬다. 나는 바니시(나무 재료를 코팅하는 재료)를 5번에 걸쳐 코팅했다. 히끄가 잠을 자는 곳이기 때문에 친환경 제품을 사용했다. 친환경이라는 말을 맹신하진 않지만, 대안이 없으므로 그나마 믿을 수 있는 회사 제품으로 골랐다.
마음에 드는 물건을 찾기가 힘들 뿐이지, 찾으면 애정을 가지고 잘 사용하는 편이다. 이 캣타워도 그렇다. 크기가 부담스럽지 않아 공간을 적게 차지해서 좋고, 침대와 세트처럼 잘 어울려서 좋다. 그리고 다락방에서 히끄를 ‘임시 보호’하던 시절, 퇴근하고 방에 들어가면 캣타워에 앉아 있던 히끄가 껑충 내려와서 나를 반겨주던 모습이 이 캣타워에 담겨 있다. 그래서 나는 이 캣타워가 좋다.
글·사진 이신아 히끄아부지·‘히끄네집’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