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라 입맛이 좋은 탓에 히끄가 냉장고에 있는 간식을 탐내고 있다.
폭염의 여파로 한파가 빨리 온다고 해서 11월이 되자마자 보일러 기름통에 등유를 가득 채우고 난방용품을 추가로 주문했다. 흔히 제주도 겨울이 따뜻하다고 생각하는데, 영하로 떨어지는 날은 별로 없지만 바람이 많이 불어서 체감 온도는 낮은 편이다.
우리집은 농가 주택 특성상 외풍이 심해서 더욱 걱정이었다. 그런데 예상과 다르게 바람 한 점 없는 포근한 가을 날씨를 만끽하고 있다.
추수의 계절, 부모님이 집 마당에서 딴 단감과 농사지은 햅쌀을 보내주셔서 이웃들과 나눠 먹었다. 햅쌀 덕분에 갓 지은 밥과 김치만 있어도 한 그릇 뚝딱 비울 수 있는데 입맛이 나만 좋은 게 아니었다.
한 달 전, 치아흡수병변 때문에 발치한 히끄를 위해서 사료를 먹기 편하게 반 토막 내줬다. 그랬더니 히끄는 밥을 더 잘 먹고 잇몸이 아무는 동안 먹지 못한 트릿과 간식의 개수를 세고 있었다는 듯 간식통을 뒤적거렸다.
히끄와 함께 배를 두드리면서 청명한 하늘을 바라보며 천고마비의 계절을 느끼고 있는데 미세먼지의 급습에 평화가 깨졌다. 청정지역으로 알려진 제주 또한 미세먼지에서 벗어날 수 없다. 마당 산책하기 좋은 가을 날씨지만 미세먼지가 심해서 야외 활동을 자제하는 중이다.
히끄에게 희생당한 인형들. 미세먼지가 심하면 피해가 속출한다.
아무것도 모르는 히끄는 밖에 나가자고 “야옹야옹” 우는데 산책을 대신할 방법이 있다. 히끄가 제일 좋아하는 고양이 장난감으로 집 안에서 신나게 놀아주는 것이다.이 마성의 장난감을 서랍에서 꺼내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사냥 자세를 취한다. 히끄의 송곳니와 손톱 때문에 너덜너덜해진 인형의 상태를 보면 얼마나 애정하는지 말하지 않아도 느껴진다. 여러 가지 장난감을 돌려가며 고양이와 놀아주는 게 정석이지만 히끄는 이 인형만 좋아해서 다른 것으로 놀아주면 반응이 뜨뜻미지근하다.
그리고 장난감을 대충 흔들면 안 된다. 사람이 장난감에 빙의해서 쫓기는 사냥감이 돼야 한다. 어릴 때 동물의 왕국을 본 경험치가 발휘되는 순간이다. 히끄의 사냥하는 모습이 너무 진지해서 표정만 보면 여기가 아프리카 초원인 듯한 착각이 든다.
고양이는 혼자서도 잘 논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개는 산책을 통해 보호자와 유대감을 형성한다면 고양이는 집사와 함께 하는 놀이가 그런 역할을 해주기 때문에 중요하다. 개와 다르게 야외 활동을 안 하는 고양이는 움직임이 적어서 비만이 되기 쉽기 때문에 건강 관리 차원에서도 놀이는 중요하다.
길고양이 시절 앞다리를 다쳐 한동안 제대로 엎드려 있지 못했던 히끄.
사람과 마찬가지로 고양이도 살이 찌면 관절에 안 좋고 질병의 원인이 되므로 체중 관리가 필요하다. 고양이는 높은 곳에 잘 올라가고 유연해서 관절이 튼튼할 것이라 생각하지만 의외로 관절염에 걸리는 고양이가 많다.
히끄도 길고양이 시절에 무엇에 쫓기다가 높은 곳에서 떨어졌는지 앞다리를 다친 적이 있었다. 발이 퉁퉁 부어서 절룩거리며 집에 찾아왔는데 다음날 바로 치료를 했지만 그때의 후유증으로 경추가 손상됐다. 그래서 관절 보조제를 꾸준히 챙겨주고 적정 체중을 유지하는 중이다. 이제, 나만 다이어트하면 된다.
이신아 히끄아부지·<히끄네집>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