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당 산책 하다가 집에 들어가자고 하면 자전거 뒤에 숨는다.
나에게는 낡은 자전거 두 대가 있다. 게스트하우스 스태프 시절에 여행자 상대로 유상 대여를 해보려고 마련한, 염소 두 마리 같은 존재다. 그러나 제주도 날씨 특성상 비가 자주 오고, 바람이 많이 불어서 자전거 타기 좋은 날이 예상 외로 적어 본전 뽑는 것만으로 만족해야만 했다.
스태프 생활을 마무리하고 독립하면서 자전거도 함께 염소 두 마리처럼 끌고 왔다. 한 대는 대문 밖에 세워놓고 도서관 갈 때 타고, 나머지 한 대는 마당 안에 세워놓고 대문 밖 자전거가 펑크 나면 교대하는 역할을 했다.
체인에 기름칠과 부품 교체를 하곤 했지만 실외 보관을 해서 부식이 심하다. 5년 넘게 타다 보니 타이어와 튜브가 많이 닳아서 펑크도 자주 난다. 덕분에 펑크 수리는 혼자서 할 수 있게 됐다.
우리집에는 이 자전거와 나이가 같은 존재가 또 있는데 바로 반려묘 ‘히끄’다. 지난 1월27일은 히끄의 다섯번째 생일이었다. 길고양이였기 때문에 태어난 날을 정확히 몰라서 히끄에게는 다섯번째 생일이 아닐 수 있지만 임시 보호와 동시에 함께 살기 시작한 그 날을 생일로 정했다.
나이도 알 수 없었다. 동물병원 몇 군데에 물어봤는데 병원마다 말해주는 추정 나이가 제각각이었다. 성장발육이 눈에 띄는 1살 미만의 자묘거나 노화가 나타나는 10살 이상의 노령묘가 아니라면 더욱 나이를 가늠하기 어렵다. 이럴 때는 이빨 상태로 나이를 예상할 수 있는데 같은 나이라도 치아 관리를 잘 받은 고양이와 치주질환이 있는 고양이라면 다른 나이로 추정된다.
이렇게 태어난 해도 날도 정확히 알 수 없다면 히끄를 처음 만난 2014년 기준으로 나이를 세기로 했다. 힘들었던 상처가 있으면 모두 잊고 다시 시작하자는 의미였다. 히끄는 생일 케이크를 보고도 자기 생일인지 모르겠지만 매년 생일 파티를 하고 있다.
지금의 나는 충분히 좋은 날이 많아서 생일을 조용히 맞이하고 싶지만 어릴 때는 생일이 일년 중 제일 행복한 날이었다. 슬프게도 내 생일은 여름방학 기간이라서 친구들에게 축하를 못 받았다. 맞벌이였던 부모님은 바빴다. 케이크를 앞에 두고 생일 파티를 해본 적이 없다. 내가 그랬기 때문에 아들의 생일만큼은 많이 축하해주고 싶다.
함께 산 지 5년이 되니 히끄가 조금씩 달라지는 걸 느낀다. 굶은 기억 때문에 식탐이 심해서 사료를 주는 대로 다 먹고 사람 음식까지 탐냈지만 이젠 그러지 않아도 밥과 간식을 언제든지 먹을 수 있다는 걸 알아서 자율 급식이 가능해졌다. 성격도 변했는데, 길고양이 시절은 먹을 걸 줄 것 같은 사람을 공략하는 생계형 재롱이었다면 지금은 선택된 사람한테만 도도한 애교를 부린다.
곳곳이 녹슬어버린 낡은 자전거를 보면 ‘히끄도 이렇게 늙어가겠지’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히끄에게 약속했다. 아부지의 자전거처럼 다 고쳐주고 보살펴 줄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언제나 네 옆에는 내가 있겠다고 말이다.
이신아 히끄 아부지 <히끄네집>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