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글 쓸 때 산만하고 집중을 못 한다. 그런 문제를 파악하고 조련하는 다정한 고양이.
많은 사람에게 직장은 생계 수단이다. 자아실현은 직장 생활이 아닌 주로 취미나 부업으로 이룬다고들 한다. 그런데 나는 상황이 다르다. 내 본업은 민박을 운영하는 것이고 부업은 ‘어쩌다 보니’ 글 쓰는 사람이 됐다. ‘어쩌다 보니’를 붙인 이유는 민박이 주 수입원이지만 인세와 원고료가 기대 이상이어서 의도치 않게 부업이 됐기 때문이다.
고백하자면, 민박은 천직이라고 생각할 만큼 적성에 맞는데 글 쓰는 작업 과정은 사실 즐겁지 않다. 물론 손님이 머무르고 간 객실을 깨끗이 청소하고 난 후의 보람만큼 지면에 실린 내 글을 보는 것 또한 뿌듯하고 가치 있는 일이다.
신문에 글을 기고하는 건 정말 새로운 경험이었다. 책을 내긴 했지만 전업 작가는 아니다. 긴 글을 쓰면서 자신의 한계를 깨닫고, 더 나아가는 계기가 됐다. 아부지 직업을 따라 반려묘 히끄도 자연스럽게 민박집 아들이자 마감요정 역할을 성실히 하고 있다.
히끄는 민박 손님이 체크인할 때까지, 먼저 자지 않고 거실에서 함께 기다려주는 은근히 의리 있는 타입이다. 호텔리어처럼 단정한 흰색 정장을 입은 히끄가 현지인만 아는 맛집과 여행지를 알려줄 것 같지만, 미안하다. 우리도 에스엔에스로 핫플레이스 정보를 얻는다.
인심이 넉넉해 보이는 얼굴 크기와 서글서글한 성격마저 타고났다. 시도 때도 없는 ‘털뿜’만 개선된다면 가업을 잇기에 완벽한 조건을 가졌다. 그리고 내가 글을 쓰고 있을 때 수정이 필요한 문장을 발견하면 키보드를 밟고 다니며 체크해준다. 대놓고 지적하면 내가 민망할까 봐 배려하는 몸짓이다.
문장이 막히거나 휴식이 필요해 보이면 쉬었다 하라고 전원을 누른다. 이런 행동이 반복되니깐 ‘일부러 저러나’하고 잠시 오해했는데 절대 아니다. ‘바쁠수록 돌아가라’는 깊은 뜻이었다. 참으로 세심하고 다정한 고양이다. 일거양득으로 저장을 습관화해야 한다는 교훈까지 얻었으니 말이다.
내가 원고 작업할 때 쓰는 방석에 관심 있어 하길래 잠깐 빌려줬는데
노트북 화면을 가리는 악역도 자처한다. 어떤 상황에서도 좋은 글을 쓰려면 평소에 집중 훈련이 중요하다는 가르침을 전하는 듯하다. 이런 내조 덕분에 마감을 어기지 않고 <히끄의 탐라 생활기>를 기고한 지 딱 1년이 됐다. 언젠가 상을 받는다면 “히끄가 차려놓은 밥상에서 나는 그저 맛있게 먹기만 했다”고 소감을 말할 것이다.
<애니멀피플>에서 원고 제의를 받았을 때는 이미 책 <히끄네 집>이 나온 후여서 내용이 중복되고 새로운 소재가 없을 것 같아 잠시 망설였지만, 좋은 기회로 받아들였다. 길고양이였던 히끄를 만나고 3년 동안 일어났던 이야기를 한 권에 담은 <히끄네 집>이 기본편이라면, 제주에서 함께 살아가는 생활기를 격주로 담은 <히끄의 탐라 생활기>는 심화편이다.
그래서 자세하고 친절하게 글을 쓰려고 했고 사람들과 소통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1년을 맞이해서 영감을 주는 존재, 나의 뮤즈 히끄와 열혈 독자들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이신아 히끄 아부지 <히끄네집>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