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솜바지’를 입고 편한 자세로 누워 있다. 이 모습은 보는 사람까지 눕고 싶게 만든다.
꽃샘추위가 온 걸 보니
겨울이 완전히 간 것 같아 마음이 놓인다. 이번 겨울은 상대적으로 덜 추워서 진짜 한파가 언제 올지 내내 긴장했다. 몸이 한파를 기억해서, 더 추워질 거라고 매일 의심하는 사이에 겨울이 비교적 얌전하게 지나갔다.
그런데
한파의 존재감을 대신 갚아주려는 듯 꽃샘추위가 심상치 않다. 제주에는 태풍급 바람으로 비행기와 배가 결항하고 회항하는 일이 생겼다. 강풍 때문에 기온이 뚝 떨어져서 보일러를 계속 돌리는데 그 수혜를 히끄가 누리고 있다.
히끄는 충분히 따뜻한 털옷을 입었는데도 보일러 배관이 지나가는 위치를 찾아서 네 발을 위로 뻗고 야무지게 등을 지진다. 히끄의 발바닥 젤리에는 ‘아랫목 감지기’가 있는 게 분명하다. 날씨가 안 좋아서 마당 산책은 포기했지만 뜨끈뜨끈한 생활도 만족스러워 보인다.
밥 먹으러 오는 길고양이를 보면서 히끄는 무슨 생각을 할까?
잠자는 모습이 북극곰같이 귀여워서 궁둥이를 팡팡하고 두드려주면 좌우로 몸을 흔들며 기지개를 켠다. 집에서 편하게 있는 히끄를 볼 때면 이렇게 따뜻한 걸 좋아하는데
‘추운 겨울을 길에서 보내게 했구나’ 미안한 마음이 들어서 자주 울컥했다.
히끄에게는 사라진 친구들이 있다. 그들을 생각하면 길고양이의 삶이 얼마나 짧은지 실감하고, 우리의 ‘묘연’이 당연한 게 아닌 것 같아서 더 소중하게 느껴진다.
나도 처음부터 길고양이가 눈에 보였던 건 아니다. 히끄를 처음 길에서 발견했을 때, 동거인이었던 ‘한카피’님이 나서지 않았다면 사료를 챙겨줄 생각도 못 했을 정도로 무지했다. 반년 넘게 길 위의 히끄를 지켜보면서 보냈던 시간만큼 나도 변하고 있었다. 히끄를 보면서 길고양이의 삶을 알게 되고, 밥을 챙겨주고, 입양까지 했다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언제 들어도 감동적이다.
히끄와 함께 지냈던 길고양이들은 모두 어디로 사라졌을까? 개체 수 조절을 위해 티앤아르(TNR, 포획-중성화-방사)를 하지 않아도 길고양이 수가 늘지 않는다. ‘영역을 바꿨겠지’라고 마음 편할 대로 생각해보지만
그 이유가 아닌 건 알고 있다.
우리 집 현관문 앞에 길고양이 식당을 마련해했다. 길고양이들이 꾸준히 올 줄 알았지만, 그렇지 않은 걸 보면 추위와 배고픔 말고도 길고양이를 위협하는 게 많은 듯하다. 세상에 태어난 것만으로 축복받은 삶이 있는 반면 이름도 없이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는 것 같은 삶도 있다.
우리 집에서 머무르던 민박 손님이 마을을 나가던 중에 길고양이가 길가에 쓰러진 걸 발견하고 다급하게 연락을 했다. 가까운 곳이어서 사체를 수습할 상자와 장갑을 들고 걸어가는데 아는 고양이일까 봐 두려웠다.
밥을 챙겨주는 고양이든
아니든 죽음의 슬픔이 달라지진 않겠지만, 모르는 고양이였으면 했고, 처음 보는 삼색 고양이였다. 먼저 고양이 별로 떠난 길고양이 친구들이 있는 텃밭에 묻어주었다. 그곳에서는 따뜻한 봄, 우리 집 마당에서 뒹굴뒹굴하며 장난쳤던 것처럼 행복만 있기를 바랐다.
이신아 ‘히끄 아부지’ <히끄네집>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