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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멀피플 반려동물

고양이를 이해할 수 있을까, 감히

등록 2019-04-17 17:23수정 2019-04-17 17:49

[애니멀피플] 우석영의 동물+지구 미술관
8. 마네, 스탱랑, 히로시게, 릴리예포쉬, 제라르, 고양이
<올랭피아>(1863), 에두아르 마네(Edouard Manet, 1832~1883)
<올랭피아>(1863), 에두아르 마네(Edouard Manet, 1832~1883)
만사에 무사태평한 탈속자(脫俗者)의 이미지는 인류가 고양이에 관해 가졌던 하나의 이미지일 뿐이다. 고양이를 일종의 명상가로 상징화한 화가도 찾아보면 의외로 많지만, 실은 다른 식으로 고양이를 묘사한 화가가 훨씬 더 많다.

이를테면, <올랭피아>(1863)라는 작품에 옷 벗은 여인 외에 검은 고양이를 그려넣었던 에두아르 마네(Edouard Manet, 1832~1883)도 그러한 축에 속한다.

흔히 이 그림은 시선과 권력에 관한 그림으로 해석되곤 한다. 이 해석에 따르면 누드화 속에 등장하는 여성은 이 작품이 나오기 이전까지는 결코 시선의 주체가 되지 못했는데, 그건 다른 이유가 아니라 그들이 결코 하나의 주체여서는 안 되었기 때문이다. 그 여성들은 어디까지나 감상 대상, 피동적 대상체, 권력 없는 인간에 머물러야만 했다. 마네의 이 그림은 바로 이러한 금기를 깸으로써 역사에 길이 남게 될 작품이다.

하지만 그림 속 여성은 그렇다 치고, 그 옆에 있는 검은 고양이는 대체 무얼까? 마네는 왜 검은 고양이를 이 그림에 삽입했던 걸까? 그림에 가득한 어떤 도발성을, 권위에 아랑곳하지 않는 과감함을, 뉘 앞에서나 무람없이 성적 자기표현을 하는 솔직함을 이 동물도 함께 은유하고 있다고 해석해야 하는 걸까?

아니면 이 그림은 고혹적인 여성과 고양이를 함께 그려넣었던 회화사의 한 전통을, 그러니까 샤를 부티본(Charles Edouard Boutibonne, 1816~1897), 루시우스 로씨(Lucius Rossi, 1846~1913), 세실리아 보(Cecilia Beaux, 1855~1942) 같은 이들의 작품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는 그 전통을 단순히 따르고 있을 뿐일까?

이 기묘한 동물은 억제되지 않는 성욕, 야행성 기질, 간교함, 완전히 길들일 수 없고 그 꿍꿍이속을 도무지 알 수 없음의 알레고리이기도 해서, 10세기 이후 오래도록 (심지어 근대의 여명이 시작되던 무렵까지도) 유럽에서는 악녀, 마녀, 악마, 이교도를 상징했다. 중세 유럽에서는 축제 기간 동안 죄 없는 고양이들이 거리로 내몰려 괴롭힘을 당했고, 또 살해되기도 했다는데, 물론 이는 ‘고양이의 악마화’라는 작업이 선행되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행태였을 것이다.

<의자 위의 고양이>(1900~1902), 테오필 스탱랑(Theophile-Alexandre Steinlen, 1859~1923)
<의자 위의 고양이>(1900~1902), 테오필 스탱랑(Theophile-Alexandre Steinlen, 1859~1923)
테오필 스탱랑(Theophile-Alexandre Steinlen, 1859~1923)의 작품 <의자 위의 고양이>(1900~1902)에서 우리는 바로 이러한 충동, 즉 고양이를 악마화하려는 마음의 충동과 조우하는 듯하다.

간교(奸巧)함과 영묘(靈妙)함은 종이 한 장 차이가 아닐까? 고양이의 영묘한 면모를 가장 잘 화폭에 잡아낸 화가로는 조선 후기 화가 화재(和齋) 변상벽(卞相璧, 1730~1775)을 꼽아야 마땅하다. 변상벽은 고양이를 너무나도 잘 그려 ‘변묘(卞猫)’라는 별칭을 얻었던 화가였고, 지능이 번득이는 고양이의 눈빛을 그이만큼 지면에 확실히 옮겨놓은 화가가 인류 회화사에 또 등장했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한편, 고양이는 사회의 가장자리에서 사회를 향해 이러쿵저러쿵 말하기 좋아하는 작가, 예술가, 평론가, 학자 같은 아웃사이더의 상징이기도 했다. 우키요예 예술가 우타가와 히로시게(Utagawa Hiroshige, 1797~1858)의 작품 <에도의 100가지 유명한 풍경-창가의 고양이>(1857)에서 우리는 그저 한 마리 고양이가 아니라, 어느 아웃사이더를, ‘창가의 존재’를 보는 것이 아닐까?

<에도의 100가지 유명한 풍경-창가의 고양이>(1857), 우타가와 히로시게(Utagawa Hiroshige, 1797~1858)
<에도의 100가지 유명한 풍경-창가의 고양이>(1857), 우타가와 히로시게(Utagawa Hiroshige, 1797~1858)
마지막으로, 고양이에 관해서 우리는 이 녀석들이 고양이과 동물에 속하는 능숙한 포식자들이라는 사실을 꼭 짚고 넘어가야만 한다. 고양이과 동물은 하나 같이 몸이 요기(yogi)처럼 유연하고 날렵한데, 몸만큼이나 총기도 뛰어나서 사냥에 능수능란하지만, 우리는 곧잘 이 사실을 새카맣게 잊고 살아간다.

스웨덴의 걸출한 자연화가 브루노 릴리예포쉬(Bruno Andreas Liljefors, 1860~1939)는 <고양이와 유럽 녹색 딱따구리>(1890) 같은 작품들에서 우리의 망각을 후려치며 고양이의 포식성으로 우리의 생각을 여투게 해준다. 하지만, 고양이는 새보다는 다른 동물의 살을 선호하는 동물이라는 점도 더불어 기억하기로 하자.

<고양이와 유럽 녹색 딱따구리>(1890), 브루노 릴리예포쉬(Bruno Andreas Liljefors, 1860~1939)
<고양이와 유럽 녹색 딱따구리>(1890), 브루노 릴리예포쉬(Bruno Andreas Liljefors, 1860~1939)
그런데 문제는 단순히 고양이가 육식을 하는 포식자라는 사실이 아니다. 반려묘를 키우는 인구가 늘면서, 고양이 앞으로 헌납되는 동물의 살점이 급격히 증대했다는 것이 문제다. 마거리트 제라르(Marguerite Gerard, 1761~1837)의 <고양이의 점심 식사>(1800년 전후 추정)에서처럼, 반려묘가 있는 가정에서는 이들을 깍듯이 모시며 여러 동물의 살점을 이들에게 진상(進上)하고 있는 것이다.

<고양이의 점심 식사>(1800년 전후 추정), 마거리트 제라르(Marguerite Gerard, 1761~1837)
<고양이의 점심 식사>(1800년 전후 추정), 마거리트 제라르(Marguerite Gerard, 1761~1837)
미국의 심리학자 할 헤르조그(Hal Herzog)가 자신의 책 <우리가 사랑하고, 미워하고, 먹는 것>(2010)에서 보고한 사태의 진상은, 작금의 사태가 얼마나 심각한지 깨우쳐준다. 헤르조그가 조사한 바로는 조사 당시 미국 내 고양이는 약 9,400만 마리로, 고양이 한 마리가 하루에 2온스(56.7g)의 고기를 먹는 경우, 매일 300만 마리의 닭이 미국 내에서 고양이에 의해 사라지는 셈이 될 정도로, 고양이들이 집어삼키는 육류의 총량이 대단했다. 물론, 이런 문제는 비단 미국만의 문제만은 아닐 것이다.

종합해 보건대, 고양이는 종잡을 수 없는 동물이자 총천연색의 개성을 한 몸에 두르고 있는 동물이어서 이들의 진면목을 화폭에 다 옮기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아이작 뉴턴(Isaac Newton)은 무지개 색깔을 처음에는 5개로, 나중에는 7개로 명시했고 그래서 우리는 어릴 적 무지개가 일곱 색깔로 되어 있다고 배웠지만, 7은 기껏해야 임의적 숫자일 뿐이다. 자외선, 적외선 영역의 색깔들이 무지개에 엄연히 존재하지만 우리 인간의 육안으로는 이것들을 볼 도리가 없기 때문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고양이를 의인화하여 이해하려는 모든 예술의 시도는, 사물을 의인화하여 보려는 성향을 지닌 호모 사피엔스로서는 뿌리치기 어려운 치명적 유혹이겠지만, 고양이의 실상(實相)에 관한 온전한 앎으로 우리를 인도하기에는 불완전한 시도임이 자명하다.

그렇담, 우리는 이렇게 말해야 하는 걸까? 여보게, 모든 그림은 회색이며, 영원한 것은 오직 고양이의 저 푸른 눈빛이라네.

우석영 <동물 미술관>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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