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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멀피플 인간과동물

사라진 밤섬을 품고, 한강은 갇혀버렸다

등록 2020-10-23 09:39수정 2020-10-23 10:09

[애니멀피플] 우석영의 동물+지구 미술관
38. 정선, 김홍도, 한강
금강산에서 기운차게 내려온 한강의 물줄기는 두물머리, 팔당, 미사를 지나면서 감금틀 속에서 들어서 찍 소리도 내지 못한 채 숨을 죽이고 흐른다. 게티이미지뱅크
금강산에서 기운차게 내려온 한강의 물줄기는 두물머리, 팔당, 미사를 지나면서 감금틀 속에서 들어서 찍 소리도 내지 못한 채 숨을 죽이고 흐른다. 게티이미지뱅크

강은 위에서 태어나서 아래에서 죽는다. 강은 산속 어딘가, 소(沼)라 불리는 곳이나 그 언저리에서 태어나 산기슭을 타고 아래로, 아래로 흐르다가 하구(河口), 만(灣)이라는 곳에 가서 죽는다.

이를테면, 여의도와 밤섬을 돌아 서쪽으로 흐르다 강화만에서 죽는 한강(한가람)도 실은 여러 산에서 태어난 것이다. 첫째 어미는 속리산(문장대)인데, 이곳에서 솟은 물줄기는 괴산, 충주, 여주, 양평을 지나 밤섬으로 달려온다.

두번째 어미인 오대산(서대 장령 부근)에서 나온 물줄기는 가리왕산과 상원산 사이의 협곡을 지나 정선으로 빠져나가, 태백의 금대산(세번째 어미, 검룡소)에서 나와 달려온 물줄기와 합류한다. 이 물줄기는 (이모 산 격인) 치악산에서 태어난 또 다른 물줄기를 곁줄기로 거느리고는, 영월, 단양, 충주, 여주를 거쳐 밤섬으로 내달려 간다. 이것이 바로 남한강의 여정이다.

이들 속리산, 오대산, 금대산은 대한민국 영토 내의 산들이지만, 한 어미 산은 영토 밖에 있으면서도 오늘도 버젓이 서울의 밤섬 쪽으로 물줄기를 내보내고 있다. 서울에서 속초 가는 시간만 투자하면 갈 수 있는 그닥 멀지 않은 거리에 있지만, 갈 수는 없는 산인 금강산이 바로 그 어미 산이다.

만폭동, 겸재 정선
만폭동, 겸재 정선

만폭동(*여기서 잠시, 겸재 정선의 그림 ‘만폭동’을 보자) 또는 금강천에서 태어난 금강산 발 물줄기는 양구, 화천을 지나 설악산 발 물줄기와 춘천의 다운타운 인근에서 합수하여, 가평과 청평을 지나 줄기차게 내려오다가, 저 속리, 오대, 금대의 딸들과 두물머리에서 만나 한바탕 뜨겁게 몸을 섞는다. 그러고는 마치 아무 일도 치르지 않은 것처럼 안색에 조금도 변함이 없이, 미사 선사유적지를 끼고 돌아서 강동, 송파, 강남을 지나, 밤섬으로 달려온다.

그러니까 밤섬 주위를 흐르는 강물에서 우리는 어떤 은밀한 이야기를, 울림이 있는 어떤 서사시를 만난다. 그것은 평평하고 굴곡이 있고 솟은 데가 있으며 초목을 안고 사는 땅이, 그러나 동시에 지구의 품 안에 있기에 강을 낳고 품게 되는 땅이, 그 땅의 품 안에서 태어나 자라며 습지와 숱한 생물을 품고 살아가는 강이 우리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다.

강을 바라본다는 것은 이 이야기에 시선을 던진다는 것이다. 우리가 가지 못하는 북쪽의 산과 산골, 산기슭, 그곳의 바위, 초목, 여러 동물들의 이야기를 어쩌면 우리는 북한강을 바라보며, 몇 가닥이나마 읽어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마하연, 단원 김홍도
마하연, 단원 김홍도

그런데 다행히도 우리에게는 단원 김홍도라는 걸출한 인물이 있어서, 그가 남긴 금강산 그림을 들춰보며 북한강이라는 퍼즐판의 빈 부분을 상상으로나마 채울 수가 있다.

필자가 소개하는 이 금강산 그림들은 정조의 명을 받고 단원이 관동지방을 여행하며 그곳의 풍경을 사생한 그림들로, ‘금강전도’(金剛全圖)라는 이름의 화첩에 들어 있는 것들이다. 본디 이 화첩에는 70편이 들어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60편만 전해지고 있다.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은, 유실된 10편 가운데 ‘만폭동’이라는 작품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우리는 북녘에서 밤섬까지 달려온 물줄기의 한 발원지의 모습을 김홍도의 그림으로는 볼 수가 없다. 다만 ‘마하연’ ‘은선대십이폭’ 같은 작품으로 그것을 상상해볼 수 있을 따름이다.

은선십이대폭, 단원 김홍도
은선십이대폭, 단원 김홍도

어디선가 솟아난, 작고 여린 아기 같은 물은 ‘마하연’의 우측에 보이는 것과 같은 가느다란 계곡수가 되어서는 흘러간다. 일단 솟구친 물은 ‘발연’ ‘선담’ ‘분설담’에서 보이는 물의 꼴을 이뤄서는 지류(tributary)를 만들어가며 제 존재를 세계만방에 선언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런 물길들이 어떻게, 어디로 이어져 양구의 북한강까지 도달하는지, ‘금강전도’로는 확인할 방도가 없다.

그렇기는 해도, 저 그림들 속의 물은 분명 현실의 물이어서, 지금 이 순간에도 DMZ를 지나 양구, 화천, 춘천을 넘어 남쪽으로 쉼 없이 내려오고 있다. 김일성과 팽덕회와 마크 클라크가 서명한 정전협정문은 김홍도가 금강산에서 목격했던 물줄기의 남하까지 막지는 못했다.

금강산과 설악산에서, 속리산과 금대산에서 달려온 물줄기들은 밤섬을 돌며 잠시 슬픔에 젖었다가, 양화대교와 선유도 쪽으로 길을 잡는다. 밤섬에서 이들이 잠시 숨을 고르는 것은, 이 섬이 비극의 섬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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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를 위한 제물, 밤섬

밤섬은 왜 비극의 섬인가? 한마디로 말해, 밤섬은 개발주의의 희생양이었다. 1968년 2월10일, 이 작은 섬은 당시 서울시장 김현옥(金玄玉)의 주도 하에 폭파된다. 여의도 북쪽 기슭으로 밀려드는 거친 강의 물살을 부드럽게 한다는 것이 폭파의 한 가지 명분이었다. 밤섬을 헐어내고 얻은 골재는 여의도의 제방을 쌓는 데 썼다. 이 ‘작전’은 5개월 만에 신속히 완료되었는데, 섬의 원주민 4백여 명은 마포구 창전동으로 삶터를 옮겨야 했다. 밤섬은 ‘새로운 여의도’를 위한 제물이 되었던 셈이다.

하늘에서 본 서울 한강 서강대교와 밤섬. 연합뉴스
하늘에서 본 서울 한강 서강대교와 밤섬. 연합뉴스

여의도에 비행장이 건설된 것은 1916년이었다. 그리고 그 후 1971년까지 여의도는 공군기지로 줄곧 사용되었다. 1972년부터 1990년까지 ‘국군의날’ 행사는 바로 이 옛 공군기지에서 개최되었다. 여의도는 잠재적 군사기지로서 유지되면서도 미래 서울의 모델로서도 개발되었는데, 그래서 지금도 이곳에는 개인 주택이 없고 고층 건물들만 빼곡히 들어서 있다.

육사 4기 출신이며 한국전쟁에도 참전했던 전직 군인 김현옥은 여의도 개발사업을 ‘한강정복사업’이라고 불렀다. 밤섬이 폭파된 건 1960년대 후반이지만, 1980년대 들어서도 비슷한 식의 ‘정복사업’은 지속되었다.

사실 지금 우리가 만나고 있는, 느린 유속과 고른 유량을 보이는 ‘점잖은’ 한강의 모습은 1980년대 전두환 군사정권 시절 ‘2차 한강종합계획’이라는 사업명 하에 추진된 ‘한강 대수술’의 결과물이다. 집도의들은 우선 한강의 바닥을 (수심 2.5m 목표로) 파냈다. 그리고 바닥에서 퍼낸 모래를 팔아 수술비 일부를 충당했다.

한편, 이들은 잠실대교, 김포대교 인근에 잠실수중보와 신곡수중보를 설치하여 유량을 조절했다. 이 두 차례의 대수술 결과, 한강의 강폭은 기이할 정도로 늘어났다. (현재 600~1200미터로, 서울과 유사한 수변 도시를 지구 안에서 찾아보기는 어렵다.) 집도의들은 이처럼 먼저 강의 몸집을 부풀리며 그 거친 성질머리를 거세하고 난 뒤, 그 주변을 정비하고, 고속화도로를 깔았다.

아파트숲 사이를 흐르는 한강. 게티이미지뱅크
아파트숲 사이를 흐르는 한강. 게티이미지뱅크

그러니까 저 김홍도의 금강산에서 기운차게 내려와 DMZ마저 뚫고 거침없이 달려온 야생의 물줄기는 두물머리, 팔당, 미사를 지나면서는 (개 사육농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과 같은 유형의) 감금틀 속에 들어가 ‘찍’ 소리도 내지 못한 채 숨을 죽이고 흐르다가 강화만으로 간신히 빠져나가 죽음을 맞이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필자가 지금 저 한강정복사업들을 막연히 비판하고자 이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알아주셨으면 한다. 필자의 관심은, 개발 비판보다는 강을 이해하는 근본 방식의 전환에 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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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에게도 권리가 있다

강이란 무엇인가? 강은 그저 수자원일 뿐인가? 강은 유속과 유량을 보이는 수류(水流)의 집합물일 뿐인가? 동물원 우리 안의 야생동물처럼 강도 ‘날뛰지 못하도록’ 틀에 가두기만 하면, 만사 오케이인 것인가? 다르게 강을 인지하고 이해할 수는 없는가? 유기체와는 다른 방식이긴 하지만, 강도 분명히 자신의 고유한 삶을 살아가는 삶의 실체(entity)는 아닌가?

적어도 무수한 미생물, 수초, 수변 식물, 어류를 비롯해 강을 삶터로 살아가는 숱한 생물들의 삶과 강의 삶은 분리될 수 없는 것이 아닌가?

다르게 강을 인지하고 이해할 수는 없을까? 강도 분명히 자신의 고유한 삶을 살아가는 삶의 실체 아닐까? 게티이미지뱅크
다르게 강을 인지하고 이해할 수는 없을까? 강도 분명히 자신의 고유한 삶을 살아가는 삶의 실체 아닐까? 게티이미지뱅크

섣부른 답을 내놓지는 않겠다. 그보다는 강의 권리를 옹호하는 세계 시민운동(International Rivers, Earth Law Center, Save the Mekong, 세 단체가 주도)을 소개하고자 한다.

우리는 인권이라는 말에는 신물이 나고, 동물의 권리라는 말에도 이제는 너무나 친숙하게 되었다. 그러나 지구촌에 사는 어떤 이들은 영장류의 권리, 고래류의 권리를 넘어 강의 권리를 주장하고 있고, 이미 인도, 방글라데시, 에콰도르, 콜롬비아 같은 국가에서는 강을 법적 권리(특정인에 의해 대변이 가능한 권리)의 주체로 인정하고 있다.

동물의 권리, 자연의 권리 운동에서도 해외 사례를 벤치마킹해야 한다고 말하고자 함은 아니다. 다만, 보고 싶은 대로만 보고,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살아서는 세상의 실상(강의 실상을 포함하여)이 잘 보이지 않는다는 점을, 그렇게 살아서는 위선적인 삶으로 기울어지기 쉽다는 점을 지적하고자 할 뿐이다. 김홍도는 너무 멀리 있고 김현옥은 너무 가까이 있는 이 답답한 현실을 조금이라도 의미 있게 바꾸려면, 시야를 국경선 너머로 넓혀야만 한다는 점을 말하고자 할 뿐이다.

우석영 환경철학 연구자·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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