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 묻지 않는 흰 털옷의 유지 비결은 그루밍을 열심히 하는 것이다.
제주로 이주하기 전에 좋아하는 계절을 묻는다면 여름이라고 답했다. 봄, 가을의 날씨는 좋지만 기간이 너무 짧아 존재감이 없고, 방학이 끝난 후 학기가 시작되는 계절이라서 싫었다. 여름이 정말 좋아서라기보다 추운 것보다 더운 게 조금 더 참을만해서이기도 했다. 식빵 굽는 고양이처럼 전기장판 위에서 웅크리는 겨울보다 샤워와 선풍기로 버티는 여름이 그나마 나았다.
그런데 이제 좋아하는 계절이 바뀌었다. 겨울이 좋다. 해수욕장 물놀이를 하고 울창한 숲을 보고 싶다면 여름에 제주 여행을 오는 게 좋지만, 생활하는 입장에서는 덥고 습해서 힘든 계절이다.
엉덩이와 뒷다리에서 솜바지를 입은듯한 풍성함이 느껴진다.
그리고 무엇보다 겨울이 좋은 이유는 털모자를 쓸 수 있어서다. 육지에 살 때는 털모자를 사본 적이 없었는데 제주의 거센 바람에 머리가 휘날려서 쓰기 시작했다. 보온에도 도움이 되니 양말처럼 잠잘 때만 빼고 항상 함께한다. 이제 날이 더워져서 털모자와 잠시 이별이다. 털모자 덕분에 헤어 스타일을 신경 쓰지 않아서 편했는데, 다음 육지행의 첫 목적지는 미용실이 되겠다. 미용실에 갈 때 원하는 헤어스타일의 연예인 사진을 저장해서 수줍게 보여주면 ‘손님 이건 얼굴이에요’라고 생각할까 봐 눈치 보인다.
히끄는 미용실에 가지 않아도 털 길이가 그대로 유지되는 게 부럽다. 고양이 털처럼 윤기가 나고, 스타일리시하면 얼마나 좋을까? ‘손님 이건 고양이에요’라는 유행어가 곧 나오지 않을까.
히끄의 털을 보면 잠자고 일어나도 기름지지 않아 항상 볼륨감과 뽀송뽀송함이 있다. 털이 빵실빵실해서 얼굴이 커 보이고 ‘뚱냥이’(뚱뚱한 고양이)라는 오해도 많다. 허위사실이다. 내가 통뼈라 골격이 넓은 것처럼 히끄는 털이 빼곡해서 후덕해 보이는 것뿐이다. “우리 애가 흰털 옷을 입어서 부해 보인다”고 말하고 싶다.
걸을 때는 몸을 실룩거려서 엉덩이와 뒷다리는 솜바지를 입은 것 같은 모습인데 사람들은 이마저 귀엽고, 특별하다고 말한다. 히끄를 보면 가끔 인기에 편승해서 과대평가 되는 경향이 있다. 언젠가 거품이 빠지겠지만, 히끄의 자기관리와 부지런함은 인정한다.
히끄의 ‘털빨’은 그루밍 덕분이다. 까끌까끌한 혀에 침을 묻혀 구석구석 핥는다. 고양이 혀는 고급 빗과 헤어 에센스 역할을 한다. 대충 털만 정리하는 게 아니라 털 사이사이 피부까지 씻는다. 혀가 닿는 모든 곳을 닦기 위해서 짧은 다리를 들거나, 몸을 반으로 접는 자세가 된다. 헬스장에서 개인 트레이닝을 받는 나를 보는 것 같지만, 나와 반대로 히끄의 표정은 평온하다.
그루밍을 방해하면 내가 만진 곳을 불결하다는 듯이 쳐다보고는 다시 핥는다. 단순히 청결을 위한 그루밍이 아니라 정신수련처럼 보인다. 희끄무레해서 이름을 히끄로 지어줬더니 이름값 하려는지 그루밍을 열심히 한다. 가수는 노래 제목 따라간다는 말이 있는데, 고양이도 이름을 따라가는 모양이다. 둘째 고양이를 들인다면 ‘건물주’나 ‘로또’로 지어야겠다.
이신아 히끄아부지 <히끄네집>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