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랍인형 논란이 있지만, 이 사진을 얻기 위해 커튼이 희생당했다.
제주에도 드디어 반려동물의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사진관이 생겼다고 해서 히끄와 함께 다녀왔다. 옷은 많지만 매일 뭘 입어야 할지 옷장을 한참 들여다보는 것처럼, 사진은 많지만 느낌이 다 비슷해 보여서 식상하던 참이었다.
에스엔에스(SNS)에 올리는 히끄의 사진은 대부분 집에서 찍고, 매체 인터뷰를 할 때는 스트레스 받지 않는 선에서 편한 모습을 담았다. 그것에 비하면 스튜디오 사진은 작위적일 수 있지만, 전문가가 찍는 고퀄리티 사진에 대한 갈증이 있었던 터라 반가운 소식이었다. 핸드메이드보다 공산품이 끌리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일상은 이미 휴대폰 카메라에 많이 담아봐서 스튜디오 사진을 찍고 싶었는데 시기가 적절했다.
실물과 사진의 괴리감이 히끄의 표정에서 느껴진다.
사진 촬영을 예약한 날, 히끄를 안전하게 이동장에 넣고 츄르도 챙겼다. 히끄는 고양이치고 낯선 공간에 적응을 잘하는 편이지만 자식 일은 장담하는 거 아니랬다. 사진관에 도착해서 히끄가 적응할 시간을 가진 후 촬영을 시작했다. ‘날름날름’ 핥아먹느라고 혀가 나온 사진이 많았지만 적응하는 데는 츄르만한 게 없다. 카메라를 보게 하려고 집에서 챙겨간 장난감으로 관심을 끌어봤지만 공간이 넓어서 분산됐다.
외외로 묘생 사진의 일등 공신은 커튼이었다. 히끄가 커튼 젖히는 소리에 관심이 있다는 걸 우연히 발견해서 열심히 젖혔다. 우리 집에는 커튼이 없어서 커튼의 존재가 궁금했던 것 같다. 100일과 돌 사진을 찍기 위해 딸랑이를 흔드는 부모의 마음이 이럴까? 원래 술을 즐기지 않지만 촬영한 날 저녁에는 맥주를 마셨다. 제대로 된 단 한 컷을 위해서 하얗게 불태웠기 때문이다.
히끄의 프로필 사진과 함께 가족사진까지 찍었다. 우리 집도 그렇고, 친구네 집에 놀러 가면 거실 벽 또는 장식장 근처에 가족사진이 항상 걸려있거나 놓여있었다. 불화가 있는 가족도 가족사진만큼은 활짝 웃고, 세상에서 제일 화목한 가족으로 보였다. 아침드라마에서 어떤 비극이 생기면 가족사진이 깨지는 클리셰처럼, 행복을 전시하는 느낌이 들어서 불편한 마음이 있었다. 태어나서부터 가족이 아닌, 내가 선택한 첫번째 가족인 히끄와 함께 해서 좋았다. 지금은 가족사진에 히끄와 나 단둘이지만, 나중에는 두번째 가족, 세번째 가족이 생겼을 때가 기다려진다.
행원리 시골 마을 사진관에 걸려있는 히끄의 사진. 길고양이나 반려동물에 대한 어르신들의 인식 변화에 도움이 되길 바란다.
일주일 뒤에 사진 촬영 결과물인 액자를 받았다. 미안하지만, 냉정하게 판단하면 현실 히끄보다 사진 속 히끄가 예뻤다. 현실은 ‘박찢남’(박스 찢는 남자)인데 사진 속에는 ‘만찢남’(만화를 찢고 나온 듯한 남자)이 있었다. 역시 포토샵 보정 만세다. 사진 밖 고양이가 자꾸 말 걸어서 매치가 잘 안 됐지만, 당당한 눈빛과 정자세는 면접 프리패스 상의 정석이었다. 당장이라도 비행기를 타고 아이비리그에 입학할 것 같다.
사진관 대표님은 많은 동물을 찍어봤는데, 히끄의 표정이 제일 풍부해서 작업하는 재미가 있었다고 후일담을 전해줬다. 덕분에 잘 생기고 예쁜 사람만 걸린다는 사진관 메인을 히끄가 차지했다. 고양이의 지구 정복이 정말 얼마 남지 않았다.
글 이신아 히끄아부지 <히끄네집> 저자, 사진 기록사진관in제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