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날부터 시작된 동거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시작은 네 마음대로지만 끝은 아니란다.”
지인의 고양이가 아파서 함께 동물병원에 다녀왔다. 지난번에 주사를 맞다가 1미터 위로 점프한 이력이 있어서 혼자 데려가기 무섭다는 이유였다. 지인의 집에 놀러 갈 때마다 만났던 그 고양이는 히끄만큼 수더분한 고양이다. 과장이 섞인 것 같았지만, 많이 불안해해서 동행했다.
접수하고 기다리는데, 대기하고 있던 다른 보호자가 다가오더니 말을 걸었다. “제가 오늘 갑작스럽게 길고양이를 데려왔는데요. 화장실 모래는 어디에서 사야 할까요?” “여기 동물병원에서 구매할 수 있어요. 그런데, 화장실 모래 말고도 여러 물품이 필요할 거라서 대형마트 가면 반려동물용품 판매대에 다양하게 있으니깐 그쪽으로 가는 게 좋을 거 같아요”라고 알려줬다.
‘냥줍’ 보호자는 긴장한 표정이 역력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4년 전,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히끄와 갑자기 동거하게 된 과거의 내가 오버랩 됐다. 히끄는 마당에 밥 먹으러 오던 길고양이였지만, 다쳐서 오는 바람에 치료를 위해 집 안으로 들어왔다. 다른 건 몰라도 화장실은 꼭 필요해서 당장 구해야 했다. ‘구해야 했다’는 표현을 쓴 건 그 당시에는 반경 50Km 이내에 고양이 화장실과 모래를 판매하는 곳이 없었기 때문이다. 아이스박스와 종이박스를 개조해서 임시로 화장실을 만들고, 모래는 고양이 키우는 사람을 찾아 나눔 받았다. 히끄는 다행히 인터넷으로 주문한, 제대로 된 화장실이 오기 전까지 임시 화장실을 잘 사용했다.
4년이 지난 지금도 히끄 그리고, 고양이에 대해 알아가는 중이다. 히끄와 함께 살기 시작했을 때 가입한 온라인 고양이 커뮤니티인 ‘고양이라서 다행이야’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최근, 카페 운영자가 쓴 ‘우리 모두는 고양이 초보자였다’라는 제목의 글이 참 인상적이다. 모르는 것을 물어보는 급박함으로 쓴 글을 ‘핑거 프린스’라고 치부하지 말고, 이해해주자는 글이었다. 짧은 글이지만, 따뜻함이 느껴졌다.
히끄가 처음 집에 들어왔을 때, 고양이 화장실을 구할 수 없어서 만든 간이 화장실이 누가 봐도 초보자가 만든 느낌이다.
동물병원에서 만난 냥줍 보호자처럼 모르는 건 죄가 아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도 계속 초보자에 멈춰있는 건 직무유기이다. 정보의 홍수 속에서 살고 있는데도 중급자가 안 된다면, 반려인 자격이 없는 것이다.
물건 하나 사려고 인터넷 검색을 한 시간 이상하면서 반려동물에게는 그러지 않는 반려인이 많다. 스스로 내가 반려동물에게 조용한 학대를 하는 게 아닌지 되돌아보자. 반려동물에 대해서 반려인이 가진 그림이 백지의 도화지 상태가 아니라, 꽃, 나무, 해가 그려있는 그림이었으면 좋겠다. 반려동물을 지켜줄 사람은 반려인 뿐이다. 어떤 문제가 생기기 전까지 그게 문제였는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 나 또한 ‘문제 발생-인지-반성(죄책감)-개선’의 과정을 통해 고급 집사로 성장 중이다. 어쩌면 히끄는 문제를 통해서 나에게 기회를 주고 있는지 모른다. 아직 모르는 게 많고, 완벽하지 않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백지였던 도화지가 하나둘씩 채워지는 건 분명하다.
이신아 히끄아부지·<히끄네집> 저자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은 건 사랑이 가진 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