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스타그램 7만9천 팔로워의 사랑을 받는 고양이 삼형제 순구, 살구, 탱구를 아시나요? <고양이 순살탱>의 출간 전 연재를 시작합니다. 작가는 책을 통해 단순히 고양이의 귀여움을 전하는 게 아닌, 성묘, 그리고 장애묘 입양의 가치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한쪽 눈이 없는 살구, 선천적으로 두 눈이 안 보이는 탱구도 반려인의 배려와 사랑으로 평범하고 행복하게 살고 있거든요. 이들에게 마음을 빼앗겨 스스로 ‘호구 집사’라 불리는 걸 마다치 않는 작가와 세 고양이의 일상을 <애니멀피플>에서 단독 연재합니다.
(왼쪽부터) 탱구, 순구, 살구가 한자리에 모인 모습을 어렵게 찍어 보았다.
가끔 몸이 아파서 삶의 의욕이 사라질 때면 섭이가 말한다. 순살이는 어떡하느냐고. 이 말만큼 나를 정신 차리게 하는 말이 없다. 순구, 살구, 탱구는 어느덧 내 삶의 이유가 되어 있었다.
말로 교감할 수 없어도, 조용히 다가와 내 다리를 베고 무심히 올려놓는 녀석들의 앞발이 내게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내가 어떤 사람이어도 늘 한결같이 믿고 사랑하겠노라고. 이런 게 가족이라면 평생 함께하고 싶다. 내 마음과 상관없이 태어날 때부터 주어진 원가족보다, 내 의지로 일궈 낸 이 가족이 더 소중하게 느껴진다.
순살탱, 그리고 섭이의 행복한 시간. 내 의지로 처음 선택한 가족의 모습이다.
큰형 순구는 막내 탱구와 부쩍 가까워져서 철없이 들이대는 막내를 곧잘 받아준다. 아쉽게도 탱구의 애정 표현은 그루밍이 아닌 깨물기로 밝혀져서, 서로 그루밍을 하는 장면은 볼 수 없지만 둘이 붙어 있는 모습은 우리를 웃게 한다.
요즘 가장 많이 보는 건 살구와 탱구가 함께 우다다하는 모습이다. 살구가 1, 2층을 오르락내리락 뛰어다니면 탱구가 그 뒤를 쫓는다. 그럼 우리 집엔 5~6kg에 달하는 ‘한때 수컷’들이 계단에서 쿵쿵 내는 발소리가 크게 울린다. 이 추격전에 종종 순구까지 합세해 세 마리가 온 집을 돌아다니며 털 날리는 모습은 꽤 뿌듯하다. 언젠가 섭이와 같이 살 생각으로 빌려놓고 혼자서만 쓰던 큰 집을 이렇게 알차게 활용할 줄이야.
힘들 때마다 곁에 있어 주었던 남자친구 섭이는 2018년 여름 ‘가족 4호’가 되었다. 가족이 된 순서대로 서열을 따지자면 1호 순구, 2호 살구, 3호 탱구에 이어 막내인 셈이다. 가족이 있지만 늘 혼자라고 느꼈던 내게, 어느새 다섯이나 되는 대가족이 생기다니 놀라운 일이다.
결혼 전 섭이에게 물었다. 결혼할 배우자의 가정환경이 중요하다는데, 이런 아내라도 괜찮겠냐고. 나의 불안과 우울함이 무섭지 않으냐고. 섭이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넌 이만큼 살아냈다”고, 오히려 힘든 시간을 다 이겨낸 모습이 더 멋있다고 말해 주며 나를 울렸다.
결혼하면서 혼수, 예단, 결혼식은 모두 생략했다. 그렇게 절약한 돈에 대출을 더해 제주에서 민박을 시작했다. 제주는 아픈 몸과 마음을 치유해준 땅이었다. 이곳에서 민박을 시작하는 건 단순히 새로운 직업을 갖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 그건 순구, 살구, 탱구와 남편 섭이, 그리고 내가 진정한 가족을 이룬 이곳에 단단히 뿌리 내리겠다는 의지의 표현이기도 했다.
집에 찾아오는 길고양이들. 내 고양이에 대한 사랑을 길고양이와도 나누고 싶어 집 앞 데크에 급식소를 열었다.
이처럼 장기적인 미래를 생각하게 된 것 자체가 나에게는 큰 변화다. 난치병인 섬유근통증후군 진단을 받은 뒤로 ‘어차피 가는 데는 순서 없어. 살아봐야 얼마나 더 살겠어’라는 생각을 늘 했다. 그렇게 비관적인 쪽으로만 치닫던 마음이 새로운 가족의 힘으로 바뀌었다. 30년에 걸쳐 갚아야 할 큰 빚이 생긴 탓에 더는 하루살이처럼 살 순 없지만, 덕분에 우리 가족의 앞날을 좀 더 멀리 볼 수 있게 되었다.
그건 오늘 하루를 살아가는 데 생각보다 큰 힘이 된다. 꿈이 없던 나에게 꿈 비슷한 게 생긴 기분이랄까. 늘 혼자인 모습으로 그리곤 했던 인생에 조금씩 스며든 가족, 우리가 함께 만들어낼 하루하루는 아직도 어색한 ‘가족’이라는 단어를 좀 더 친근하게 만들어주겠지.
지금까지 살면서 고양이에게서 무엇보다 큰 위로를 받았다. 그건 피를 나눈 가족도 해 주지 못한 일이었다. 강압적인 아버지와 살며 얻은 우울감, 난치병으로 지친 마음은 한때 어둠으로 가득했다. 그 시절의 기억으로 생긴 성격과 습성은 쉽게 바뀌지 않고, 지금도 때때로 과거의 트라우마가 나를 흔든다. 하지만 고양이들이 있기에 하루를 살아갈 힘을 얻었다.
순구와의 행복한 기억 덕분에 살구와 탱구를 가족으로 맞이할 용기도 생겼고, 제주에서 마주치는 길고양이나 유기견을 위해 내가 뭘 할 수 있을지 고민하게 되었다. 아프기 전보다 내가 조금이나마 나은 사람이 되었다면 그건 모두 순구, 살구, 탱구 덕분이다.
사실 순구를 데려오기 전까지는 한 생명을 돌보는 데 얼마나 큰 책임감과 돈과 시간이 필요한지 몰랐다. 그저 고양이가 주는 위안만 막연하게 부러워했을 뿐이다.
나를 무조건 믿고 의지하는 고양이를 보면 애틋한 마음으로 가득 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이 부족한 집사의 경험담을 털어놓는 건, 누구에게나 미숙했던 ‘처음’이 있기 때문이다. 내 이야기를 읽은 누군가가 입양을 준비하면서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으면 좋겠고, 특히 살구나 탱구처럼 장애가 있거나 다 컸다는 이유로 입양 가기 힘든 성묘들이 가족을 만나는 데 내 경험담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바란다. 다 커서 만났지만 여전히 아기 같고 사랑스러운 살구와 탱구를 통해, 꼭 어린 고양이를 입양해야만 행복할 거라는 선입견이 줄어든다면 더할 나위 없으리라.
이제 우리는 ‘순살탱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다 함께 살아간다. 앞으로 제주에서 이어질 우리의 나날이 정말 기대된다. 나와 섭이의 관계보다도 더 떨리는 순살탱과 섭이의 관계, 네 남자의 ‘케미’가 얼마나 사랑스러울지 말이다.
글·사진 김주란, 인스타그램 @soongu_salg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