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일치기 검진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서 꿀잠을 자는 히끄.
히끄가 겨울이 들어서자 길고양이 때부터 관찰됐던 노란 콧물이 나오는 빈도가 잦아졌다. 지난 3월 히끄와 함께 비행기를 타고 서울 동물병원에 가서 검사한 뒤, 한 달 동안 약을 먹였는데 투약을 중단하니 다시 노란 콧물이 나오기 시작했다.
코로나19로 이동이 예민한 시기이지만 더 정확한 검사를 받기 위해 다시 서울에 가기로 했다. 제주에는 콧속을 볼 수 있는 비강 내시경과 시티(CT·컴퓨터단층촬영)가 함께 있는 동물병원이 없기 때문이다. 마스크와 휴대용 소독제를 챙겨서 서울행에 비행기에 올랐다. ‘맹모삼천지교’라고 아들의 교육을 위해 이사를 세 번이나 했다는 맹자 어머니도 있는데 ‘그깟 서울행이 뭐가 어려울까’ 싶다.
전에는 히끄의 컨디션과 적응을 위해 집이나 호텔에 며칠 머무르면서 동물병원에 갔는데 이번에는 동선을 최소화하기 위해서 당일치기로 계획했다. 마취 전에는 금식 상태여야 하므로 아침 일찍 서둘렀다. 그것만이 한 끼만 늦어도 현기증을 호소하는 히끄를 위한 길이었다. 비강 내시경과 시티를 찍으려면 마취가 필수라서 걱정이 됐지만, 마취 사고나 부작용을 예방하기 위해서 마취 전 혈액검사를 하고 결과에 이상이 없어 진행했다.
서울에 도착해서 병원 가는 길. 자동차 구경하는 걸 좋아하는 히끄가 창밖을 보고 있다.
치석을 제거하는 이빨 스케일링을 안 한 지 2년이 가까워져서 마취하는 김에 스케일링도 추가했다. 후에 히끄의 반짝이는 하얀 이빨을 보고 잘한 선택이라고 생각했다. 안 그러면 스케일링만 하려고 마취를 해야 하는 일이 생기기 때문에 반려동물을 마취할 일이 생긴다면 다른 치료까지 하는 게 효율적이다.
히끄의 비강 삼출물로 세균배양을 하고 항생제 감수성 재검사 등 치료에 필요한 모든 검사를 했다. 비강 내시경과 시티, 조직검사 결과 히끄는 ‘만성의 림프 형질세포성 비염’으로 진단됐다. 비염의 원인으로는 길고양이 이전에 알 수 없는 외상 병력 또는 면역 매개 질병의 가능성이라고 했다.
과거에 히끄에게 어떤 일이 있었는지 모르지만, 이제 아부지가 있으니 괜찮아질 거라 말해줬다. 생명을 위협하는 질병이 아니고, 상태가 심각한 건 아니라서 증상의 빈도와 콧물 양상 변화를 관찰하고 담당 수의사와 상의하면서 치료를 시작하기로 했다.
사람도 건강검진을 하면 두렵고 아픈 데 오랜 시간 동물병원에서 검사를 받느라 고생하는 히끄의 모습을 보고 있으니 책임감이 더욱 커졌다. 큰 집으로 이사를 하거나 마음의 여유가 생기면 히끄의 동생 고양이도 입양하는 가능성을 열어뒀었지만 이 일을 계기로 이제는 온전히 히끄에게만 집중하고 싶어서 외동으로 키우기로 마음을 굳혔다.
반려동물은 아이와 다르게 시간이 지나도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행복한 시간만큼 아플 일도 많다. 그럴수록 반려인은 스스로 단단해져야 한다. 내 가슴을 철렁거리게 만드는 유일한 존재 히끄가 다른 사람이 아니라 나에게 와줘서 정말 고맙다. 히끄가 오랫동안 건강하게 지낼 수 있도록 옆에서 지켜줄 거라고 약속한다.
이신아 히끄아부지·<히끄네 집>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