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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멀피플 반려동물

“설악이가 직접 개들을 살리는 광고 하는 거죠”

등록 2020-10-08 17:20수정 2020-10-12 17:42

[애니멀피플] ‘설악이와 함께하는 사람들’ 인터뷰
도살장 구조견 설악이 통해 개식용 알리는 펀딩 진행
“식용견과 반려견 따로 있지 않다는 메시지 전할 것”
지난해 충남 천안시 개도살장에서 구조된 개 ‘설악이’와 동물해방물결이 개도살 식용 문제를 알리기 위한 펀딩을 진행한다. 크라우드 펀딩에 사용될 사진을 촬용중인 설악이. 동물해방물결 제공
지난해 충남 천안시 개도살장에서 구조된 개 ‘설악이’와 동물해방물결이 개도살 식용 문제를 알리기 위한 펀딩을 진행한다. 크라우드 펀딩에 사용될 사진을 촬용중인 설악이. 동물해방물결 제공

“다르지 않아요.”(Not Different)

인사하듯 한쪽 귀가 쫑긋 선 강아지의 얼굴 옆에 적힌 문구다. 스누피처럼 귀여운 캐릭터의 주인공은 바로 지난해 충남 천안시 개도살장에서 구조된 개 ‘설악이’다. 불과 얼마전까지 뜬장 안에서 죽을 운명이었지만 올해는 설악이에게 특별한 한 해가 될 것 같다.

지난 7월 중복을 앞두고 서울 광화문에서 열린 ‘개도살 식용금지’ 집회에 참가해 청와대까지 행진한 데 이어, 설악이의 이야기를 알리는 크라우드 펀딩이 진행되기 때문이다. 설악이는 구조 당시 귀 반쪽이 잘리고, 다리 뼈가 보일 정도로 아픈 상태로 발견됐다. 달리기를 좋아하고, 원반놀이를 즐기는 여느 반려견과 다르지 않은 설악이는 어째서 뜬장 안에서 죽어가고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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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 뒤 뭉친 ‘설악이의 친구들’

수많은 ‘설악이들’의 현실을 알리기 위해 자원활동가 5명이 뭉쳤다. 인터뷰는 월요일 오후 7시에 시작됐다. 참가자들이 회사일을 마치고 한 자리에 모여야 했기 때문이다. 5일 저녁 서울시 명륜동 두루미출판사에 ‘설악이의 친구들’이 하나 둘씩 도착했다.

친구들의 직업은 다양했다. 출판사 편집장, IT회사 직원, 공간 디자이너, 공기업 직원까지. 자원활동가들이 서로를 처음 알게 된 동물해방물결 월간모임(이하 동월모)의 운영주최인 동물해방물결 이지연 공동대표까지 모두 5명의 활동가들이 모였다.

각기 다른 경로로 동월모에 참가하게 됐지만 공통적으로 반려동물과 함께 살고 있거나 살았었고, 개뿐 아니라 모든 축산동물의 식용에 회의를 느낀 비건지향인들이었다.

공간디자이너 허유경씨는 2년 전 15년간 반려했던 개를 떠나보내면서 동물권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됐다. 유경씨는 “개와 같이 살면서 개가 굉장히 섬세한 동물이란 걸 깨달았다. 매일 기분은 어떨까, 아프지는 않을까 걱정하는 제 모습을 보면서 개도 사람과 같은 생명이란 걸 깨달았고 자연히 동물권 활동과 채식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어머니가 캣맘인 직장인 이지현씨도 비슷했다. 지현씨는 대학 때 새끼 고양이가 먹을 게 없어 낙엽을 주워먹는 모습을 보고 길고양이 동아리를 만들었다. 그는 “길고양이를 돌보며 동물권 인식이 더 넓어져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여전히 캣맘, 캣대디들이 밥을 준다고 뭐라고 하시는 분들이 있다. 고양이를 방치만 해선 문제 해결이 안되는데, 이런 동물권 활동 자체를 이해 못받으니까 적극적으로 알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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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돌 생일광고처럼 개식용 알리자”

각기 다른 삶과 이력을 지닌 이들이 찾은 모임이 동물해방물결의 활동가 양성, 조직 모임인 동월모였다. 올해 초 시작한 동월모 모임은 코로나19 확산 탓에 한동안 쉬다가 복날 개식용 반대 집회를 앞두고 다시 열렸다. 이날 설악이를 처음 만났다. 설악이의 반려인 이예민씨와 설악이가 광화문 ‘개도살 식용금지’ 집회 전에 낯선 사람들을 만나보는 ‘예행 연습’을 나왔던 것이다.

광화문 집회는 설악이의 친구들을 모이게 한 도화선이 됐다. 국제 저명인사 37명의 연대 서명이 담긴 개도살 식용금지 촉구 서한을 들고 청와대로 행진했던 이날 집회 뒤 이들은 ‘설악이를 위해 무엇을 더 할 수 있을까’ 고민하게 됐다.

‘설악이 펀딩’은 동물해방물결 월간 모임을 통해 모인 자원활동가 5명의 재능기부로 완성됐다.
‘설악이 펀딩’은 동물해방물결 월간 모임을 통해 모인 자원활동가 5명의 재능기부로 완성됐다.

설악이는 2019년 8월 충남 천안시 개도살장에서 구조된 개다. 구조 당시 설악이의 모습(왼쪽)과 현재.
설악이는 2019년 8월 충남 천안시 개도살장에서 구조된 개다. 구조 당시 설악이의 모습(왼쪽)과 현재.

“설악이들에 대해 알리자.” 설악이뿐 아니라 지금도 식용개로 불리며 뜬장에서 사육되는 전국 개농장의 수백만 개들의 현실을 알리는 것이 목표가 됐다. 아이디어는 지하철 광고로 모아졌다.

“지하철 역을 지나다 보면 스타 아이돌의 생일을 축하는 광고가 있잖아요. 그 광고가 의미하는 게 뭘까요. 많은 사람들이 함께 하고 있다는 거잖아요. 우리도 그 개들과 함께한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유경씨는 설악이 펀딩이 최초의 ‘동물판 아이돌 광고’가 될 거라고 말했다.

광고를 위한 크라우드 펀딩이 기획됐다. 펀딩 기획과 굿즈 제작 등은 모두 친구들의 재능기부로 진행됐다. 출판사 편집장인 김은비씨가 펀딩 스토리를 쓰고, 공간 디자이너인 허유경씨가 포스터 디자인을, 문화예술기관에 다니는 이소현씨가 티저영상을 제작했다. 대학 때부터 길고양이 활동을 해온 직장인 이지현씨가 온·오프라인 홍보를, 굿즈 디자인과 제작은 윤혜원씨가 맡았다.

김은비씨는 “우리가 왜 설악이를 알리고자 하는지에 중점을 둬서 기획했다. 사실 설악이의 구조 스토리, 열악한 환경 등을 이야기 하기보다, 설악이라는 강아지를 내세움으로써 한쪽에서는 엄청 사랑 받고, 다른 한쪽에서는 다른 방식으로 소비되는 개들의 모순적 상황을 알리고 싶었다”고 전했다.

흔히 개식용 금지 운동이 ‘고인 물’ 취급을 받는 것도 한 이유다. 이지연 동물해방물결(동해물) 공동대표는 “설악이를 통해 개 식용 문제를 환기시키고 싶었다. 개 식용 반대라고 하면 노년층의 운동이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있다. 지금 개도살 식용 반대는 브리짓 바르도 시절, 개 애호인들의 운동이 아니다. 단순히 개를 먹지 말자는 차원이 아니라 공장식 축산이 부르는 수많은 부작용들 중 가장 먼저 해결이 가능한 개 식용부터 시작하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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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적 공간에서 ‘설악이들’ 만나길

개 식용의 피해당사자이기도 한 설악이의 매력을 보여주기로 마음 먹었다. “사람들이 지하철 광고를 보면 놀랄 것 같아요. 설악이는 시각장애인 안내견으로 활약하는 래브라도 리트리버 혼종이잖아요.” 지현씨는 지하철이라는 일상적 공간에 설악이의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식용견이나 반려견이 따로 있지 않다는 걸 직관적으로 알리고 싶다고 했다.

마스크, 휴대폰 그립 등의 굿즈를 디자인한 윤혜원씨도 설악이의 마스코트인 귀를 제품에 살렸다. 혜원씨는 “아픈 과거가 있지만 지금은 손으로 인사를 하는 듯한 특별한 한쪽 귀를 포인트로 삼았다. 자수 마스크에는 다른 반려견들과 다르지 않다는 문구(Not different)도 넣어 그 점을 강조했다”고 전했다.

설악이를 주인공으로 한 ‘개들을 살리는 지하철 광고’ 크라우드 펀딩은 8일부터 10월30일까지 텀블벅에서 진행된다. “스쿨존 사고의 위험성을 알렸던 ‘민식이법’이 제정됐듯 식용 목적 개 도살을 금지하는 ‘설악이법’이 제정될 때까지 설악이와 함께 할 거예요.”

김지숙 기자 suoop@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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