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밖으로 몸을 솟구치는 혹등고래. 호주 동부 집단은 개체수가 늘어나자 노래하는 수컷이 크게 줄었다. 퀸즐랜드대 고래 생태학 그룹 제공.
고래 가운데 혹등고래는 때로 30분 이상 이어지는 길고 복잡한 멜로디의 노래로 유명하다. 아직도 왜 노래하는지를 두고 논란이 계속되고 있지만, 신기하게도 남극에서 호주 동해안 사이를 이동하는 무리는 점차 노래하지 않는 것으로 밝혀졌다.
호주 동부의 혹등고래 무리는 1960년대 200마리 미만으로 절멸 위기에 놓였지만 이후 빠르게 늘어나 현재 2만7000마리로 상업포경 이전 상태로 회복했다. 이 무리를 장기 연구한 호주 퀸즐랜드대 연구자들은 “개체수 증가가 수컷의 짝짓기 전략의 변화를 낳았고 그 결과 노래하는 수컷이 현저하게 줄어들었다”고 과학저널 ‘커뮤니케이션즈 바이올로지’ 최근호에 실린 논문에서 밝혔다.
혹등고래의 짝짓기 전략은 암컷을 따라다니며 에스코트하는 것과 노래하는 것이다. 경쟁자가 늘어나면서 암컷의 존재를 알리는 노래는 삼가게 됐다. 퀸즐랜드대 고래 생태학 그룹 제공.
짝짓기 철인 겨울을 맞은 혹등고래 수컷의 전략은 두 가지다. 하나는 이동하는 암컷을 따라다니며 ‘에스코트’하면서 끼어드는 다른 수컷을 물리치는 것이다. 크고 성적으로 성숙한 수컷이 최종 짝짓기의 승자가 된다.
다른 하나는 노래다. 연구자들은 “수컷 혹등고래의 노래가 어떤 기능을 하는지 아직 논란거리이지만 암컷을 유인하고 수컷끼리 경쟁하는 수단일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노래는 성숙한 수컷만 한다. 노래하다 암컷이 찾아오면 에스코트하는데, 다른 수컷이 끼어들면 노래를 멈추고 들이받기, 부닥치기, 머리로 때리기 등으로 몸싸움을 벌인다.
그런데 혹등고래의 개체수가 불어나면서 노래하는 수컷이 현저히 줄었다. 주 저자인 레베카 던롭 교수는
이 대학 보도자료에서 “1997년 노래하는 수컷은 그렇지 않은 수컷보다 거의 곱절이나 많았다”며 “그러나 2015년에는 반대로 노래하지 않는 수컷이 5배나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그 사이 혹등고래의 개체수는 3700마리에서 2만7000마리로 늘었다. 던롭 교수는 “고래의 짝짓기 의식에 엄청난 변화가 일어난 셈”이라며 “사람만 큰 사회적 변화를 겪는 건 아니”라고 말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연구자들은 이전 연구에서 암컷을 에스코트하던 수컷의 노래가 경쟁자 수컷을 불러들인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개체수가 작았을 때는 경쟁자를 끌어들여 몸싸움을 벌이다가 다치는 손실보다 암컷을 유인하는 이득이 더 컸다”고 논문은 적었다.
그러나 개체수가 늘어나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던롭 교수는 “짝짓기 경쟁이 치열한 상황에서 수컷이 가장 피해야 할 일은 암컷이 여기 있다고 알리는 일”이라고 말했다. 크고 힘센 경쟁자를 불러들일 위험이 큰 노래가 점차 줄어든 이유이다.
던롭 교수는 “이런 변화가 1997년부터 불과 7년 사이에 갑자기 나타났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앞으로 혹등고래의 노래는 영영 사라질까.
1960년대 절멸 위험에 놓였던 혹등고래는 이제야 천수를 누릴 수 있게 됐다. 포경의 주 대상이던 큰 고래가 늘어난 것이 노래보다 몸싸움을 부추긴 원인이기도 하다. 퀸즐랜드대 고래 생태학 그룹 제공.
연구자들은 수명이 60년인 혹등고래가 상업용 포경 이후 이제야 처음으로 천수를 누리게 됐음에 주목했다. 포경선이 잡은 고래는 주로 큰 성체였다. 이제 크고 나이 많이 수컷이 늘었는데 이들은 노래보다는 몸싸움 전략을 즐겨 구사한다.
연구자들은 “공격적인 행동으로 인한 부상 등의 비용이 한계에 이르고 짝짓기 성공률이 떨어진다면 언젠가 수컷은 다시 수동적으로 노래하는 전략으로 돌아갈 수도 있다”며 “후속 연구가 필요하다”고 논문에 적었다.
인용 논문:
Communications Biology, https://doi.org/10.1038/s42003-023-04509-7
조홍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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