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거북이 플라스틱 쓰레기를 먹고 죽는 이유는 해파리처럼 보여서가 아니라 먹이에서 나는 냄새가 나기 때문이란 연구결과가 나왔다. 게티이미지뱅크
세계적으로 바다거북이 플라스틱 쓰레기를 먹고 죽어가는 이유가 비닐봉지를 해파리로 오인하기 때문일까. 문제는 플라스틱이 먹이처럼 보이는 게 아니라 버려진 뒤 1주일만 지나면 먹이와 똑같은 냄새를 풍기는 데 있다는 실험 결과가 나왔다.
조지프 팔러 플로리다대 박사 등 미국 연구자들은 10일 과학저널 ‘커런트 바이올로지’에 실린 논문에서 “바다거북이 먹이에서 나는 냄새와 똑같이 반응하는 것으로 드러났다”며 “거북이 플라스틱 쓰레기의 모양뿐 아니라 냄새에도 이끌린다”고 밝혔다. 버려진 플라스틱 표면에는 미생물, 조류, 식물, 갑각류 등 작은 동물이 들러붙어 디메틸설파이드 등의 휘발성 물질을 내는데, 이것이 다른 먹이와 같은 효과를 냈다.
연구자들은 바다에서 포획한(실험 후 돌려보낸) 5개월 된 붉은바다거북 15마리를 수조에 넣고 맹물, 새 플라스틱 조각, 바다에 담가 생물이 들러붙은 플라스틱 조각, 먹이 등 4가지에서 풍기는 냄새를 각각 불어넣는 실험을 했다. 거북은 맹물과 새 플라스틱에서 나는 냄새에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지만, 먹이와 생물이 붙은 플라스틱 냄새에는 3배나 자주 물 위로 코를 내밀고 벌름거리며 냄새를 맡는 반응을 보였다.
파이프로 여러 종류의 냄새를 흘려보내 바다거북의 반응을 알아 본 실험 모습. 조지프 팔러 제공.
팔러 박사는 “거북이 미생물로 뒤덮인 플라스틱에 대해 먹이와 같은 강한 반응을 보여 놀랐다”며 “거북은 사료에 5달 동안 길든 상태여서 생물로 덮인 플라스틱에 먹이만큼 강한 반응을 보일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라고 말했다. 실험에 쓰인 붉은거북은 2m 넘게 자라는 대형 바다거북으로 열대와 온대 바다에 서식하는데, 제주도 모슬포 해변 모래사장에서 산란해 새끼가 깨어나오는 것이 발견되기도 했다.
이 실험 결과는 바다거북이 먹이를 찾다 우연히 비슷하게 생긴 비닐봉지 등을 먹는 게 아니라 플라스틱 쓰레기를 먹이로 오인해 멀리서 찾아온다는 점에서 심각한 우려를 낳는다. 실제로 바다거북은 해파리와 전혀 닮지 않은 비닐 조각을 삼키고 먹이로 착각하기 힘든 커다란 플라스틱 매트에 걸리곤 한다.
팔러 박사는 “플라스틱이 바다에서 일으키는 문제는 해파리처럼 보이는 비닐봉지나 거북의 코를 뚫는 플라스틱 빨대보다 훨씬 복잡하다”며 “모든 플라스틱 쓰레기가 거북을 위험에 빠뜨린다”고 말했다.
연구자들은 태평양에서 플라스틱 쓰레기가 거대한 수프처럼 펼쳐진 ‘플라스틱 해역’(▶
태평양 한가운데 거대한 ‘플라스틱 수프’ 있다)을 형성하고 있는데, 이 지역이 거북 등 바다 생물을 맛있는 먹이 냄새로 유혹하는 ‘냄새 함정’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연구에 참여한 케네스 로만 미국 노스캐롤라이나대(채플 힐) 교수는 “플라스틱이 모인 이 해역은 거북뿐 아니라 바다 포유류, 물고기, 물새 등 다른 동물에게 훌륭한 먹이터 냄새를 풍겨 끌어들일 수 있다”며 “일단 바다로 간 플라스틱이 먹이처럼 냄새를 풍기지 않도록 할 방법은 없으며, 최선책은 플라스틱이 애초 바다로 가지 않도록 하는 것”이라고
이 대학 보도자료에서 말했다.
인용 저널:
Current Biology, DOI: 10.1016/j.cub.2020.01.071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