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인색으로 물든 납지리 수컷. 경쟁을 피해 가을에 산란하는 독특한 번식전략을 편다. 조홍섭 기자
납자루아과 물고기는 살아있는 조개껍데기 속에 알을 낳는 특이한 번식전략을 구사한다. 알에서 깬 새끼가 헤엄칠 만큼 충분히 자란 뒤 조개를 빠져나오기 때문에 적은 수의 알을 낳고도 번식 성공률이 높다.
납지리는 14종의 납자루 아과 가운데서도 특별하다. 다른 종이 자궁 구실을 할 민물조개를 차지하느라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봄철을 피해 해마다 이맘때쯤 번식에 나선다.
가을 번식에서 깨어난 새끼는 조개 속에서 휴면으로 겨울을 난 뒤 봄이 오면 다른 납자루 새끼가 아직 나오기 전 조개를 떠난다. 납지리의 가을 번식 실태가 밝혀졌다.
일반적으로 납자루 아과 물고기는 새끼의 먹이가 많은 봄에 산란한다. 떡납줄갱이 수컷의 혼인색 모습. 조홍섭 기자
김형수 국립수산과학원 박사 등이 만경강 지류인 전북 완주군 봉서천 일대에서 조사한 결과 납지리는 9∼11월 사이 특히 10월에 많이 산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하천에는 말조개가 서식하는데 4개 가운데 1개꼴로 납지리의 산란이 확인됐다.
알에서 깨어난 납지리 새끼는 추운 겨울 동안 휴면을 하다 이듬해 수온이 10도 이상으로 오르는 4월 깨어난다. 김 박사는 “납지리가 가을에 산란하게 된 것은 다른 납자루 아과 물고기나 조개 유생과 조개 안에서 경쟁하는 것을 피하기 위해 적응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납자루 아과 물고기는 안전한 조개 몸을 인큐베이터로 쓰기 때문에 품는 알의 개수가 수십∼수백개에 그친다. 산란기를 맞은 이들 물고기 수컷은 온몸을 화려한 혼인색으로 물들이고 입 주변을 우둘투둘한 돌기로 치장한 뒤 민물조개를 확보하고 암컷을 유인한다.
민물조개를 확보한 납지리 수컷이 암컷을 유인하고 있다. 암컷 배에 산란관이 보인다. 조홍섭 기자
수컷은 조개 주변을 얼씬거리는 다른 납자루 아과 물고기를 쫓아내랴 암컷을 불러들이랴 바쁘다. 이때가 되면 암컷은 배에 긴 산란관을 늘어뜨린다.
마음에 든 조개를 찾으면 조개가 물을 내뿜는 출수공 안으로 산란관을 넣어 알을 낳고 수컷은 방정한다. 조개가 알을 뱉어내지 못하도록 조개의 입이 아닌 항문을 통해 알을 집어넣는 셈이다. 조개는 입수공으로 빨아들인 물에서 산소를 흡수하고 먹이를 걸러낸 뒤 출수공으로 내보낸다.
작은말조개 안에 납자루 아과 물고기들이 낳아놓은 알. 남의 알이 많으면 자신의 생장과 번식에 지장을 받아 공생보다는 기생에 가깝다는 연구결과가 나온다. 최희규 제공
김 박사는 “과거에는 민물조개가 납자루 아과 물고기에 산란장을 제공하는 대신 접근하는 물고기에 자신의 새끼인 유생을 붙여 이동 거리를 늘리는 공생을 하는 것으로 생각했다”며 “그러나 최근 일련의 연구결과 조개가 다른 물고기보다 납자루 종류에 유생을 많이 붙이는 것도 아니고 물고기 알이 늘어나면 조개의 생장과 번식은 물론 죽을 수도 있는 것으로 드러나 기생 측면이 크다고 본다”고 말했다.
실제로 조개도 납자루 종류의 알이 몸속으로 들어오지 않도록 막거나 내뿜기도 한다. 김 박사는 “산란 직후 출수공을 쪼아 움츠러들어 알을 뱉어내지 못하게 하는 흥미로운 행동을 묵납자루에서 관찰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
하천에서 민물조개가 사라지면 산란장을 잃은 납줄개아과도 멸종할 수밖에 없다. 하천 바닥 치기가 성행해 민물조개는 급속히 줄고 있다. 조홍섭 기자
납자루 종류와 민물조개 사이의 관계가 공생이든 기생이든 둘 다 위기에 놓여 있다. 민물조개가 급속히 줄어들면서 알 낳을 곳이 없는 납자루 아과도 함께 감소 추세이다.
김 박사는 “조개는 서식지 교란에 민감한데 하천 개수 등으로 급속히 줄고 있고 조개에 의존하는 납자루 아과도 눈에 띄게 감소했다”고 말했다. 그는 “납자루 아과 물고기가 잔잔하고 수초가 많은 곳을 좋아하는데 외래종인 큰입우럭(배스)의 서식지와 겹쳐 개체수가 줄어드는 요인도 있다”고 덧붙였다.
인용 저널: 한국환경생태학회지, DOI: 10.13047/KJEE.2020.34.4.274
조홍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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