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양식장의 은연어. 물고기는 상대적으로 따뜻한 물로 이동해 체온을 높이는 방식으로 감염에 대항한다. 양식장에서 수온 구배를 주는 것은 항생제 등 약품 투입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이다. 게티이미지뱅크
바이러스나 세균에 감염되면 사람은 체온을 올려 면역반응을 강화하고 침입한 병원체를 억제하려 한다. 그러나 발열은 항온동물인 포유류뿐 아니라 변온동물에서도 발견된다.
파충류인 사막 이구아나가 세균에 감염되면 따뜻한 곳을 찾아 체온을 2도 올린다는 사실이 1970년대 처음 밝혀진 이후 파충류, 양서류, 어류는 물론 일부 무척추동물에서도 이런 ‘행동 발열’ 현상이 발견됐다. 변온동물은 스스로 열을 내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따뜻한 곳으로 이동해 생리적 발열과 마찬가지로 체온을 올린다.
수면에 몰려든 비단잉어. 변온동물인 물고기는 수온이 높을 곳을 찾아가 체온을 높이는 ‘행동 발열’ 능력이 있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최근 변온동물 가운데 물고기의 행동 발열에 관한 연구가 활발하다. 펠리시티 헌팅포드 영국 글래스고대 교수 등은 과학저널 ‘응용 동물행동학’ 최근호에 실린 논문에서 이런 연구동향을 소개하면서 물고기가 따뜻한 곳을 찾아가 자가 치료를 하는 행동이 동물복지와 양식업에 도움이 된다고 밝혔다.
물속 환경은 수심에 따라 온도가 다르고 같은 수심이라도 상당한 온도 차가 나기도 한다. 자연상태가 아닌 양식장에서도 마찬가지다. 호주의 한 연어 양식장에서는 표면에서 22도인 수온이 수심 12m에서 14도로 나타나기도 했다.
물고기들은 이런 온도 차이를 적극적으로 이용한다. 오스카 노르달 스웨덴 린네대 박사 등이 잉어의 몸에 체온과 수온, 수심을 잴 수 있는 소형 측정장치를 달고 실험한 결과 한낮 물 표면 가까이에서 해바라기를 한 잉어의 체온은 주변 수온보다 최고 4도 높았다. 햇볕을 오래 쬔 잉어일수록 성장 속도도 빨랐다.
모델 동물인 제브라피시. 행동 발열을 통해 바이러스 감염을 억제한다는 실험 결과가 나왔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바이러스에 감염된 물고기는 수온이 높은 곳으로 이동해 체온을 올리는 현상은 여러 종에서 발견됐다. 세바스찬 볼타냐 스페인 바르셀로나 주립대 연구자 등은 제브라피시 실험에서 이런 현상을 확인했고, 잉어와 나일틸라피아도 비슷한 행동을 한다는 보고가 이어졌다. 자연적인 온도 차이가 적은 사육환경에서는 히터 주변에 몰리는 식으로 체온을 높였다.
행동 발열의 효과도 확인됐다. 제브라피시 실험에서는 따뜻한 물로 옮겨간 물고기들이 모두 1주일 뒤 바이러스 감염에서 완치됐다.
잉어를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는 물고기가 24도, 28도, 32도 수온의 탱크를 선택해 이동할 수 있도록 했다. 헤르페스 바이러스에 감염된 잉어는 32도 수조로 몰렸고 죽은 물고기는 없었다. 애초에 감염된 물고기를 수온 32도 수조에 넣은 실험에서도 비슷한 효과가 나왔다.
세계적인 양식어종인 나일틸라피아. 물고기의 행동 발열을 이용해 항생제 사용을 줄일 수 있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헌팅포드 교수는 “물고기가 행동 발열을 하고 병에서 회복할 수 있다는 건 과학뿐 아니라 산업적으로도 중요하다”며 “물고기를 양식할 때 온도 차이를 주어 자가 치료를 할 수 있도록 한다면 항생제 투약을 줄이고 물고기의 복지를 향상하는 등의 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논문에 적었다.
그는 또 “경력이 오랜 물고기 양식 어민들 가운데 물고기의 이런 행동을 알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예를 들어, 이집트의 틸라피아 양식 어민은 전통적으로 양식장에 온실을 설치해 겨울에도 따뜻한 물이 있는 곳을 조성한다.
이들은 물고기가 식욕을 잃는 초기 신호나 스트레스나 병으로 헤엄치는 형태가 바뀌는 등 행동 변화를 일찌감치 알아채기도 한다. 연구자들은 “물고기 행동 연구자들은 전통지식의 중요성을 인식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인용 논문:
Applied Animal Behaviour Science, DOI: 10.1016/j.applanim.2020.105090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