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에 모인 수컷 아프리카코끼리 무리. 가뭄이 드는 등 환경이 나빠졌을 때 나이 든 수컷의 경험과 기억이 무리의 생존에 필수적이다. 코니 앨런 제공.
나이 든 아프리카코끼리 암컷의 생태적 지식과 경험이 무리의 생존에 필수적이라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늙은 수컷 또한 암컷 못지않게 코끼리 사회에서 중요한 존재라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코니 앨런 영국 엑시터대 동물행동학자 등은 아프리카 보츠와나의 코끼리 수컷 1250마리의 이동 행동을 연령대별로 조사해 이런 결론을 얻었다고 4일 과학저널 ‘사이언티픽 리포트’에 실린 논문에서 밝혔다.
앨런은 “이번 연구결과는 늙은 수컷 코끼리가 집단 안에서 쓸모없다는 통념을 깨는 것으로 나이 든 수컷을 합법적인 트로피사냥과 밀렵의 주요 표적으로 삼아 제거하는 현재의 행태에 우려를 제기한다”고 이 대학 보도자료에서 말했다.
나이 든 수컷 코끼리는 큰 상아와 덩치로 밀렵과 합법적 트로피사냥의 목표물이었다. 그러나 코끼리 사회 전체를 위해서는 나이 든 암컷과 마찬가지로 보호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코니 앨런 제공.
아프리카코끼리 수컷은 10∼20살이 되면 무리를 떠나 수컷끼리의 무리에 합류한다. 암컷이 혈연관계를 바탕으로 끈끈한 유대를 맺는 것과 달리 방대한 거리를 돌아다니는 수컷 집단은 상대적으로 사회적 관계가 약하고 느슨하다.
영국의 코끼리 보호단체인 ‘아프리카를 위한 코끼리’ 케이트 에번스 박사는 “나이 든 수컷 코끼리는 일단 무리를 떠나면 외톨이이자 독립적으로 행동할 것이란 가정 아래 수컷 코끼리 사회 내부의 미묘한 관계는 관리와 보전에서 무시돼 왔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연구자들이 조사한 결과는 그런 통념과 달랐다. 연구자들은 수컷이 주로 모이는 코끼리 서식지의 이동 통로를 조사했는데 무리의 선두에는 대부분 나이 든 수컷 코끼리가 섰고 젊은 수컷은 중간에 자리 잡는 경우가 많았다.
연구자들은 “나이 든 수컷은 수십 년 동안 쌓인 경험으로 물, 먹이 등 핵심 자원을 어디서 구할 수 있는지 안다”며 이 때문에 무리를 앞장서 이끈다”고 설명했다. 연구에 참여한 로렌 브렌트 교수는 “조사 결과 수컷 코끼리 집단에서 나이 든 수컷은 번식집단에서 늙은 암컷이 하는 구실과 유사하다는 사실이 드러났다”고 말했다.
수컷 코끼리는 25∼30살이 되면 해마다 발정기를 맞아 성격이 광포해진다. 그러나 이 시기에 이르지 못한 수컷과 지난 수컷끼리는 갈등이 적고 연대가 늘어 함께 여행하며 정보를 나누는 사회적 관계가 돈독하다고 연구자들은 논문에서 밝혔다.
연구 대상지인 보츠와나 마크가디크가디 판스 국립공원의 수컷 아프리카코끼리 무리. 코니 앨런 제공.
문제는 나이 든 수컷이 덩치도 크고 상아도 장대하지만 코끼리 집단 유지에는 불필요하다고 알려져 합법적인 트로피사냥과 밀렵, 마을 주민과의 갈등에서 주요한 표적이 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올해 보츠와나 정부가 허가한 코끼리 트로피사냥은 400마리인데 “늙은 수컷만 죽일 수 있다”는 조건이 달려 있다고 논문은 밝혔다.
연구자들은 “나이 든 수컷은 가장 친구가 많을뿐더러 위험한 환경에서 살아남는 데 필요한 지식과 경험을 갖추고 있다”며 “수컷 사회의 핵심 지도자인 이들을 죽인다면 코끼리 사회의 전반적인 붕괴를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야생 아프리카코끼리의 평균 수명은 사냥 등의 영향으로 암컷이 41살인데 견줘 수컷은 24살에 불과하다.
인용 저널:
Scientific Reports, DOI: 10.1038/s41598-020-70682-y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