꿀벌은 사람 눈에 보이지 않는 편광을 길잡이 삼아 정확히 벌통으로 돌아온다. 그러나 미세먼지는 편광을 흐트러뜨려 꿀벌을 헤매게 한다. 게티이미지뱅크
짙은 황사로 미세먼지 농도가 1000㎍/㎥를 넘긴 날 중국 베이징 근교에 설치한 벌통을 나선 꿀벌은 평소 45분 뒤에는 꿀과 꽃가루를 따 돌아왔지만 이날은 77분 뒤에야 벌통에 돌아왔다. 미세먼지가 꿀벌의 방향 찾는 능력을 떨어뜨린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이는 대기오염이 세계적 꿀벌 감소를 일으키는 새로운 위협 요인으로 떠올랐음을 가리켜 주목된다.
조유리 서울대 환경대학원 박사과정생 등 우리나라와 중국 연구진은 대기오염이 꿀벌 활동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알아보기 위해 꿀벌 가슴에 5㎎ 미만의 초소형 전파식별태그(RFID)를 붙여 마치 버스카드처럼 벌통을 드나들 때의 시각을 측정했다.
꿀벌은 태양을 나침반 삼아 비행한다. 목표물과 태양 사이의 각도를 유지하며 이동하는데 구름이 하늘을 가려도 구름 사이로 비치는 편광 형태를 통해 태양 위치를 추정해 정확히 방향을 잡는다.
사람 눈에 보이지 않는 편광이 꿀벌에게는 길을 찾는 내비게이터 구실을 한다. 그러나 공중에 미세 입자가 늘어나면 빛을 흐트러뜨려 편광의 세기가 약해지고 결과적으로 꿀벌이 집을 찾는 데 애를 먹는 것으로 밝혀졌다.
베이징 일대와 한반도 남부를 뒤덮은 2008년 3월 2일의 황사를 미 항공우주국(나사)이 위성에서 촬영했다. 나사 제공.
연구자들은 황사가 덮쳤을 때 꿀벌이 벌통에 돌아오기까지 시간이 71% 더 길어졌음을 실험으로 확인했다. 조 씨는 “보통 꿀벌은 벌통을 나간 지 45분 안에 돌아오는데 황사가 온 날 그 시간이 훨씬 길어졌다”며 “공중에 에어로졸이 많아질수록 꿀벌의 이동 길잡이인 편광도가 떨어져 길을 찾지 못하고 헤맨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벌통은 1㎞ 이내 거리에 산과 함께 다양한 식물을 보유한 북경식물원이 자리 잡아 더 멀리 먹이를 찾아갈 이유는 없었다.
이번 연구에서는 또 편광을 차단하는 효과는 도시 미세먼지가 황사보다 커 꿀벌의 집 찾기를 더 어렵게 하며 구름이 잔뜩 낀 날일수록 꿀벌이 귀환에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나타났다.
황사가 지나고 사흘 뒤 대기의 미세먼지 오염은 이전 상태로 돌아갔다. 그러나 꿀벌이 벌통으로 돌아오는 시간은 여전히 느려 원래대로 회복되지 않았다. 조 씨는 그 이유에 대해 “인도에서 대기오염이 심한 곳의 꿀벌이 날개가 찢어지는 등의 신체 손상과 생존율이 떨어진다는 연구 결과가 나온 것으로 보아 오염사태로 꿀벌의 건강상태가 나빠졌고 아울러 꽃 자체도 색깔 등이 손상돼 꿀벌이 찾아가기 힘들어졌을 가능성이 있다”고 추정했다.
미국과 유럽에서 주로 제기된 꿀벌 군집 붕괴의 원인은 살충제 등이다. 그에 더해 대기오염이 꿀벌의 감소를 재촉했을 가능성이 제기됐다. 루이스 조 씨는,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이번 연구는 세계적인 꿀벌과 야생벌 감소 사태에 대한 새로운 원인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이제까지 상대적으로 대기오염이 덜한 미국과 영국 연구자들을 중심으로 꿀벌 붕괴의 원인을 주로 살충제 사용 등에서 찾았다. 그러나 중국 인도 등 아시아의 대기오염이 심각해 이로 인한 꿀벌 감소가 주목되고 있다고 조 씨는 설명했다.
공동 연구자인 정수종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는 “미세먼지 농도가 높다는 건 화석연료를 많이 태워 온실가스 배출량이 많다는 뜻”이라며 “온실가스 배출을 억제해 탄소 중립을 이루는 것은 대기질 개선뿐 아니라 꿀벌과 그 생태적 기능을 지키는 데도 기여한다는 것을 이번 연구로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세계에서 상업적으로 중요한 작물 생산의 70% 이상을 꿀벌 등이 가루받이를 해 준다. 또 지구의 꽃 피우는 식물종의 87.5%가 곤충의 가루받이에 의존한다. 꿀벌의 세계적 붕괴가 심각한 이유이다.
꿀벌은 주요 작물의 결실과 생물다양성 유지에 큰 역할을 한다. 꿀벌이 사라지면 우리에게 익숙한 경관이 달라질 수도 있다. 무하마드 카림,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이도원 서울대 명예교수(생태학)는 “꿀벌과 야생벌 감소는 벌이 결실을 돕는 식물다양성 감소와 멸종뿐 아니라 결과적으로 풍경을 단조롭게 만든다”며 “피나무 등 꽃이 많은 종을 육종개량해 수종 갱신 때 도시조경수로 장려하고 토양수분을 유지하는 사업을 벌여 벌 활동과 함께 탄소 흡수를 높이는 방법을 채택할 만하다”고 말했다. 이 연구는 과학저널 ‘생태학과 진화’ 최근호에 실렸다.
인용 논문:
Ecology and Evolution, DOI: 10.1002/ece3.7145
조홍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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