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보호단체 ‘곰 보금자리 프로젝트’와 ‘동물권행동 카라’가 지난 2월 베트남의 곰 생크추어리 3곳을 답사했다. 탐다오 국립공원 안에 있는 ‘애니멀스 아시아 곰 생크추어리’에서 곰이 느긋한 하루를 보내고 있다.
편집자 주
사육곰은 평생을 철창 속에서 산다. 사육곰 산업은 기울었지만 여전히 전국에는 300여 마리의 곰이 길러지고 있다. 우리보다 먼저 곰들에게 더 넓고 자연에 가까운 환경을 만들어준 나라, 베트남은 어떻게 생크추어리를 만들었을까. 지난 2021년부터 강원 화천의 곰들을 구조해 생크추어리 건립을 추진하고 있는 ‘곰 보금자리 프로젝트’와 ‘동물권행동 카라’ 활동가들이 2월21일부터 8일간의 베트남 곰 생크추어리를 견학하고 방문기를 보내왔다.
지난 2월 질문과 고민을 한아름 안고 베트남으로 떠났다. 강원도 화천에서 곰을 돌보기 시작했을 때 우리는 마치 아이를 처음 키우는 초보 부모가 된 기분이었다. 곰들을 어떻게 해야 더 잘 돌볼 수 있을까 하는 지극히 기초적인 고민부터 건강관리와 먹이 급여 등 자잘한 의문들까지 궁금한 것은 많지만 명확한 답을 주는 이는 없었다. 여전히 300마리의 사육곰이 남아있는데 답을 찾을 수 없다는 것이 아이러니했다.
그동안 한국에선 야생과 농장의 경계에 걸친 사육곰을 ‘돌봄의 대상’으로 바라본 이가 적었기 때문이다. 야생에 살아 마땅한 곰들을 돌볼 때 우리는 그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까. 이들을 잘 보살피기 위해선 어떤 것들이 필요할까. 우리에겐 꿈만 같은 생크추어리에 직접 가서 곰들이 어떻게 지내는지 살피며 조언과 답을 구하기로 했다.
우리가 찾은 곳은 베트남 내 생크추어리 3곳이었다. 탐다오 국립공원(Tam Dao National Park) 내에 있는 홍콩 기반의 자선단체 ‘애니멀스 아시아’(Animals Asia Foundation)의 생크추어리, 오스트리아 동물보호단체 ‘포포즈’(Four Paws International)가 운영하는 닌빈 곰 생크추어리(BEAR SANCTUARY Ninh Binh), 캇티엔 국립공원(Cat Tien National Park)에서 호주의 야생동물 보호단체가 운영하는 ‘프리더베어스’(Free the Bears) 생크추어리가 우리의 방문지였다. 가는 곳마다 규모와 운영방식은 다르지만 곰들의 일과는 엇비슷했다.
홍콩 기반의 자선단체 ‘애니멀스 아시아’가 운영하는 생크추어리의 방사장. 방사장에 나온 곰들은 숨겨진 먹이를 찾고 장난감을 가지고 놀거나 같이 놀고 싶은 상대를 골라 투닥거리며 장난을 친다.
출근한 직원들이 방사장의 전기울타리를 확인하고 곰들이 가지고 놀 수 있는 커다란 장난감과 방사장 이곳저곳에 먹이를 숨기고 나면 사육장에 있던 곰들도 방사장으로 ‘출근’한다. 수천 평의 방사장에는 풀과 나무가 무성한데 곰들은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숨겨진 먹이를 찾고 장난감을 가지고 놀거나 같이 놀고 싶은 상대를 골라 투닥거리며 장난을 친다.
실컷 놀고 먹은 곰들은 평상이나 해먹, 잔디밭 등 자기가 원하는 곳에 발라당 드러누워 낮잠을 잔다. 우리가 속닥거리며 내는 소음이 거슬리는 듯 이따금 힐끗 쳐다보기도 했지만 딱히 일어날 생각은 없어보였다. 지극히 아늑하고 여유로운 일상이었다.
홍콩 기반의 자선단체 ‘애니멀스 아시아’가 운영하는 생크추어리의 방사장. 방사장에 나온 곰들은 숨겨진 먹이를 찾고 장난감을 가지고 놀거나 같이 놀고 싶은 상대를 골라 투닥거리며 장난을 친다.
우리가 돌보는 화천 곰들의 일상은 사뭇 다르다. 지난해 여름 곰
사육장 앞에 작은 ‘곰 숲’을 만들었다. 12마리의 곰들이 번갈아 방사장으로 나가는데 아직 합사 훈련이 부족한 탓에 한 번에 한 마리만 쓸 수 있다. 그나마도 100평 남짓한 ‘미니 방사장’이다. 한 마리가 방사장에 나가있는 동안 나머지 곰들은 3평 남짓한 사육장에서 하루를 보낸다.
먹이를 넣은 공이나 폐타이어를 이용한
풍부화물을 사육장 이것저것 넣어주지만 긴 하루를 버티기엔 역부족이다. 풍부화물을 가지고 놀다가 흥미가 떨어지면 고개를 빙빙 돌리거나 사육장 안을 반복해서 돈다. 너무 오랜 시간 갇힌 공간에서 살아온 탓에 생긴 스트레스로 인한 정형행동이다.
지난해 화천의 곰들에게도 ‘곰 숲’이라는 작은 방사장을 만들어줬다. 그러나 방사장이 수천 평에 이르는 베트남 생크추어리에 비하면 곰 숲은 100평 남짓한 ‘미니 방사장’이다.
우리는 최선의 최선을 다해 곰들을 돌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수풀이 우거진 방사장에서 늘어지게 낮잠을 자고 있는 베트남 생츄어리의 곰들을 보고 있자니 복잡한 감정이 뒤섞여 기분이 묘했다. 우리가 최선이라고 말하는 것들이 과연 우리가 돌보는 곰들에게도 최선으로 느껴질까. 주고 싶은 것은 많은데 줄 수가 없는 미안함과 낙담이 미묘하게 섞인 감정이었다.
생츄어리 직원들은 내부에 있는 곰사육장 청소가 끝나면 사육장 위층으로 올라가 방사장의 곰들을 관찰하며 시간을 보낸다. 그 시간이 가장 부럽고 간절했다. 지난 7월부터는 상근활동가가 되어 화천에서 매일 곰들을 돌보고 있다. 9개월 가까이 곰들을 돌보고 있지만, 그들이 기분 좋을 땐 어떤 모습을 보이는지 불편할 때는 어떤 자세를 취하는지 알아채는 일은 여전히 어렵기만 하다. 그저 곰들이 편안했으면 좋겠는데 무엇을 어떻게 해주길 바라는지 확신이 안 서는 날이 많다. 자칫 섣부른 확신으로 곰들의 의사를 오해할까 싶어 일부러 더 의문을 갖는 날도 있다.
화천의 곰들에게도 다양한 먹이나 공, 폐타이어를 이용한 풍부화물을 사육장에 넣어주지만 긴 하루를 버티기엔 역부족이다.
언어가 다른 존재의 심정을 알 길은 그저 오래 보고 자주 보고 공부하는 것 뿐이다. 먹이와 장난감마다 곰들의 반응이 다르고 아프거나 불편한 것이 생기면 행동에 변화가 생긴다. 하루 종일 곰들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순간순간 달라지는 곰들의 반응과 변화가 데이터로 쌓인다. 그 어떤 연구결과보다 값진 자료들이다.
곰들을 잘 돌보기 위해서는 그들을 더 많이, 오래, 자주 들여다보는 시간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사실을 다시금 실감했다. 돌봄활동가 세 명이서 청소, 먹이준비, 시설관리를 하는 중인 우리에게 여유로운 관찰이란 비교적 사치스러운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 아쉬운 마음이 컸다.
애니멀스 아시아의 생크추어리 활동가들이 방사 전 곰들이 가지고 놀 수 있는 커다란 장난감과 방사장 이곳저곳에 먹이를 숨기고 있다.
베트남은 어떻게 가능했을까. 세 곳의 생크추어리는 모두 베트남 정부가 무상으로 임대한 땅에서 운영하고 있다. 운영, 시설, 돌봄에 발생하는 비용은 모두 단체가 후원금으로 부담하지만 땅은 무상으로 사용한다. 몇 만평에 이르는 땅을 제공 받는 것은 큰 효용이 있다.
우리는 생크추어리를 지을 땅을 몇 년째 찾아 헤매고 있지만 마땅한 부지를 구하지 못해 난항을 겪고 있다. 운영·돌봄은 단체의 몫이지만 정부의 협업도 무시할 수 없다. 베트남에서는 정부가 곰 구조를 결정하면 단체가 시간과 인력을 내어 구조를 돕고, 생크추어리의 방향성에 대해서도 함께 논의한다. 정부의 능력만으로 사육곰 문제를 전부 해결 할 수 없다는 점, 그럼에도 정부에게 책임이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기에 가능한 운영방식이다.
곰 보금자리 프로젝트와 동물권행동 카라 활동가 9명은 지난 2월 8일간 베트남 생크추어리 3곳을 방문해 그곳의 환경, 운영, 돌봄방식 등을 답사했다.
국내 곰 탈출 사고가 주목 받을 때마다 아직도 한국에 웅담 산업이 남아있냐며 비난하는 목소리가 크다. 인간의 몸보신을 위해 살아있는 존재를 가두어 고통을 주는 것이 옳지 않다고 여기는 이들이 많아졌다. 그것이 비윤리적 행위임을 인식하는 사회가 된 것이다. 지난해 정부도 사육곰 사업을
2026년까지 종식하겠다고 했고, 사회적 인식도 변화하고 있다.
이제는 행동하고 문제를 해결할 일만 남았다. 그리고 제대로 잘 해결하는 방법이 무엇인가 고민할 차례다. 사육곰을 철창 밖으로 꺼내는 것은 물론 구조한 곰을 어떻게 돌볼 것인가, 무엇보다 인간이 동물을 착취한 부끄러운 역사를 어떻게 기록하고 성찰할 것인가 충분히 고민해야 한다.
우리는 이런 고민을 안고 6시간의 비행을 거쳐 베트남으로 향했다. 훗날 누군가 우리와 같은 고민을 안고 있다면 그때는 한국에서 우리가 직접 조언과 답을 전하는 역할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글 김민재 곰 보금자리 프로젝트 활동가, 사진 곰 보금자리 프로젝트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