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멀피플] 화천 사육곰 돌봄 1년 최태규 활동가 기고
죽음 앞둔 곰 15마리 구조…매주 주말 곰 만나러 화천으로
생크추어리 건립 미뤄졌지만 훈련·돌봄으로 곰들 건강해져
죽음 앞둔 곰 15마리 구조…매주 주말 곰 만나러 화천으로
생크추어리 건립 미뤄졌지만 훈련·돌봄으로 곰들 건강해져
죽음을 앞둔 화천 사육곰을 구조한지 1주년이 됐다. 애초 계획보다 생크추어리 건립은 미뤄졌지만 철창 속 곰들은 지난 1년 간 육체적, 정신적으로 훨씬 건강해졌다. 사진은 지난해 여름 더위를 피해 사육장 내 구조물에 들어간 U1.
곰 15마리가 우리에게 왔다 그해 6월 곰보금자리프로젝트와 동물권행동 카라가 화천 곰들을 돌보기로 결정했다. 국내 최초로 사육곰을 위한 생크추어리(야생동물 보호소)도 건립하기로 했다. 1년 뒤 생크추어리를 만드는 것이 목표였다. 그때까지 우리는 매주 주말을 반납하고 화천에 곰을 돌보러 가기로 했다. 말이 쉽지, 매주 곰을 보러 화천까지 가는 일은 우리 상황에 분명히 무리였다. 그러나 우리가 나서지 않으면 15마리 곰 모두 헐값에 팔려 열 다섯 개의 웅담이 될 운명이었다.
2021년 6월부터 곰보금자리프로젝트와 동물권행동 카라는 화천 사육곰농장에서 돌봄을 시작했다.
농장 시설이 열악해서 직접 철창을 자르고 이어 붙이는 일도 해야 했다.
이름도 붙이기 전에 죽은 곰 ‘L2’에게 ‘편안이’라는 이름을 붙여주고 무덤을 만들었다.
약 먹이기, 잠 재우기…돌봄은 ‘실전’ 동물원에서처럼 야생에서보다 수명이 길어지는 사육곰에게 허리디스크 탈출증이나 고관절 이상과 같은 근골격계 질환은 일반적이다. 현재도 근골격계 질환 탓에 매일 약을 먹어야 하는 곰이 셋이나 있다. 약 값만도 천만 원을 훌쩍 넘겼다.
곰에게 약을 먹이기 위해 마쉬멜로로 알약을 둘둘 말아서 주고 있다.(왼쪽) 겨울잠을 재우기 위해 내실에 푹신하게 짚을 깔아주고 직접 누워봤다. 동물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곰들은 졸음이 쏟아지는 것처럼 보이다가도 먹이를 주러 가면 눈을 말똥말똥하게 떴다. 결국 아무도 겨울잠은 자지 않았다.
1년 새 채혈도, 체중 측정도 알아서 척척 그 사이 곰들의 기본적인 건강관리에는 성과가 있었다. 동물의 체중 변화는 가장 기본적인 건강지표지만, 한국 대부분의 동물원에서도 체중 측정은 하지 않고 있다. 곰들을 체중계에 올리는 것 자체가 어렵기 때문이다. 고심 끝에 우리는 400㎏에 달하는 철제 이동장에 대형 저울을 설치해 맞춤 체중계를 만들었다. 마취를 하지 않아도 곰들이 스트레스 없이 체중을 잴 수 있도록 스스로 체중계 안으로 걸어들어가는 훈련을 꾸준히 했고 마침내 모든 곰들의 몸무게를 측정하는데 성공했다. 스스로 앞발을 철창 밖으로 내밀어 채혈(검진을 위해 피를 뽑는 일)하고 헐액검사를 하는 훈련도 열 세 마리 모두 해냈다.
400㎏에 달하는 철제 이동장에 대형 저울을 설치해 맞춤 체중계를 만들었다. 스스로 체중계 안으로 걸어들어가는 훈련을 꾸준히 했고 마침내 모든 곰들의 몸무게를 측정하는데 성공했다.
1년 전 기억을 돌아보면 곰들은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훨씬 건강해졌다. 사람을 좋아하게 되었고 서로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비언어적 형태로 물을 수 있게 되었다.
산책하는 곰, 우리 사회에 화두 던져주길 곧 지을 수 있을 줄 알았던 생츄어리는 다시 멀어진 느낌이다. 곰이 살 수 있는 땅을 구하고 곰을 돌볼 수 있는 건물을 지어야 하는데, 우리 사회는 여전히 사육곰의 존재조차 모르는 사람이 더 많다. 가까운 시일 안에 화천 곰농장에는 작은 방사장을 짓는다. 비록 생크추어리 건립이 늦춰지긴 했지만 당장 곰들의 복지를 개선하기 위해 사육장 앞에 울타리를 치고 산책길을 만든다. 곰들은 철창을 태연히 지나 곰을 위해 꾸며진 ‘곰 숲’으로 걸어 나올 것이다. 평생 지켜만 보던 앞마당을 흙 밟으며 산책하고 처음으로 나무에 올라볼 것이다. 웅덩이에서 첨벙이며 물장구도 칠 것이다. 사람들은 그 모습을 보며 야생동물을 가둔 시간에 대해 생각할 것이다. 이제 우리 사회는 곰을 도살해 웅담을 먹는 것보다는 살 만한 새 삶을 주는 것이 더 윤리적이라는 데에 동의하기 시작했다. 이제는 그 판단에 따르는 책임을 질 차례다. 제법 무거운 짐이지만 더 많은 사람이 그 짐을 나누어 질 만도 해 보인다. 웅담을 먹던 나라에서 곰을 보호하는 나라로, 생크추어리를 짓고 우리 과거를 되돌아 볼 수 있게 된다면 더 나은 인간-동물관계를 바라볼 수 있게 될 것이다. 꼭 그렇게 되면 좋겠다. 글·사진 최태규 곰보금자리프로젝트 대표·수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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