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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멀피플 농장동물

“건강한 닭도 죽이라고요? 기계적 살처분 말아주세요”

등록 2018-10-02 15:46수정 2018-10-02 17:14

[애니멀피플]
AI 발생 농가 반경 3km 내 위치한 이유로
예방적 살처분 대상 됐던 동물복지농장의 눈물
청와대 앞에서 1인 시위 시작한 유소윤씨 인터뷰
전북 익산 망성면 장선리 동물복지농장 참사랑농장에서 닭들이 횃대에 올라가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전북 익산 망성면 장선리 동물복지농장 참사랑농장에서 닭들이 횃대에 올라가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2일 낮 12시, 얼굴이 까맣게 그을린 여성이 뙤약볕 아래 섰다. 답답한 가슴을 부여잡고 이른 아침 전북 익산에서 서울로 가는 기차에 올랐다. 익산에서 동물복지 산란계 농장인 참사랑농장을 운영하는 유소윤(55)씨는 1년7개월째 익산시와 행정소송 중이다. 세계농장동물의 날인 오늘은 유씨가 청와대 앞에서 1위 시위를 시작하기로 한 날이기도 하다.

그가 익산시와 싸우고 청와대 앞에서 시위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아프지 않은 닭 5천 마리를 예방적 살처분하라는 행정명령이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2017년 3월 5일 참사랑농장에서 2.4km 떨어진 하림 직영 육계 농장에서 조류인플루엔자(AI) 감염 닭이 발견돼, AI 보호구역인 반경 3km 안에 있는 참사랑농장에도 예방적 살처분 명령이 내려왔다. 정부는 반경 3km 내에 있는 17개 농장 중 참사랑농장을 제외한 농가의 닭 85만 마리를 생매장했다. 유씨는 이해할 수 없었다. "우리 닭은 아프지 않은데, 왜 죽여야 하지?" 네 차례 검진을 통해 5천 마리 닭이 모두 안전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익산시는 3km라는 조건만 따졌다. 사실 3km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살처분 해야 하는 기준이 아니다. 농림축산식품부가 발행한 조류인플루엔자 긴급행동지침에 따르면 반경 500m부터 3km는 보호지역이다. 이 지역에서 생산된 식용란은 정밀검사 결과 이상이 없으면 가축방역관 지도 및 감독 아래에 훈증 소독을 하고 주 1회 반출이 허용된다. 닭(육계)의 경우에도 기본적으로 타지역 반·출입이 금지되지만 시·도 가축방역관의 위험도 평가 결과 이상이 없고 정밀검사 결과 음성 판정된 농가에 한하여 지정도축장으로 출하가 허용된다.

참사랑농장과 시의 싸움은 법정 소송으로 번졌다. 유씨는 익산시에 살처분 집행을 정지해달라는 가처분 신청을 내고 살처분의 위법성을 따지는 소송을 제기했고, 익산시는 유씨를 가축전염예방법을 위반했다며 형사 고발했다. 현재 상황은 살처분 위법성 여부가 가려질 때까지 살처분 집행이 정지된 상태다. 유예된 죽음인 셈이다. 세계농장동물의 날이기도 한 이 날, 청와대 앞에서 살처분 취소를 요구하며 1인 시위를 시작하기로 한 유씨를 만났다.

세계농장동물의 날인 2일 오전 청와대 앞 광장에서 조류인플루엔자 예방적 살처분의 문제를 지적한 참사랑농장주 유소윤씨가 발언을 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세계농장동물의 날인 2일 오전 청와대 앞 광장에서 조류인플루엔자 예방적 살처분의 문제를 지적한 참사랑농장주 유소윤씨가 발언을 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긴 싸움이 계속되고 있다. 현재 농장 상황은 어떤가.

“나는 이 싸움이 이렇게 길어질 줄 처음엔 상상도 못 했다. 그냥 상식적으로 생각한 대로 행동했을 뿐이다. 살아남은 5천 마리 닭들은 아직 건강하게 잘 산다. 이들과 작년 9월에 들여온 5천 마리까지 해서 총 1만 마리로 농장을 운영 중이다. 살처분 대상이었던 5천 마리는 이제 3살 된 아이들이다. AI도 버틴 아이들이니, 올여름 폭염에도 한 마리 죽지 않고 잘 이겨냈다. 같이 싸우던 애들은 하루 1800~2000개가량 달걀을 낳고, 지난 가을 데려온 아이들은 하루 3900개 정도 생산한다.”

-지난 봄, 살처분 명령을 받고 어떤 기분이었나.

“처음에는 단순하게 생각했다. 닭들이 병들지 않았다는 근거가 있다면, 살처분하지 않겠지, 이게 상식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3월9일에 와서 10일에 살처분하라고 하더라. 참담하다기보다는 어이가 없었다. 잠복 기간인 21일을 더 기다려 달라고 했다. 21일이 지나고도 아이들은 멀쩡했지만 인정되지 않았다. 살처분하려면 (땅이 필요한데) 결국 농장주가 그 땅을 마련해야한다. 그걸 어떻게 하나. 내 땅에 묻어야 하는데, 농장 안에 애들을 묻고 어떻게 일하나.”

-인근 다른 농장은 모두 살처분 실행을 했나.

“발생 농가 반경 3km 이내 모든 농가가 살처분을 했다. 우리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배터리 케이지 육계 농장이었다. 그런데 우리 같은 방식으로 기르는 닭들이 더 건강했다면, 이때 필요한 건 사육방식을 살피고 교훈을 얻는 것 아닐까. 그런데 오히려 살처분 안 한 우리 농장을 바이러스의 온상처럼 취급했다. 이미 다른 양계장 닭들은 싹 다 살처분 돼 죽고 없는데도.”

-동물복지농장을 시작한 것은 언제부터.

“2015년 익산에 귀농했다. 2년 동안 귀농을 준비하며 양계를 하기로 결심했다. 우리가 먹는 게 어디서 어떻게 오는지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육계는 마음이 어려울 거 같아 산란계를 키우는데, 귀농을 준비하던 과정에서 양계장에 견학 갈 일이 있었다. 배터리 케이지 안에 갇혀 있던 닭들을 보고 돌아와 마음이 너무 아파서 일주일 동안 제대로 잠을 못 잤다. 어떤 곳은 유정란을 생산하는 농장이라는데, 배터리 케이지에 암탉과 수탉을 분리해 넣어 놓고 인공 수정을 하더라. 결코 우리가 원하는 방식이 아니었다. 방목까지는 못하지만 평사에서 기준 면적보다 넓게 닭을 키웠다. 식물성 단백질로 이뤄진 사료에 강황을 섞어서 준다. 산란율이 떨어지면 도계하지 않고 500수 이하로 키우는 소규모 농가에 분양했다. 우리 닭들은 인기가 좋다. 가면 건강하게 잘 먹고 잘 놀고 알 잘 낳으니까.”

참사랑농장 닭이 낳은 달걀이 산란통에 들어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참사랑농장 닭이 낳은 달걀이 산란통에 들어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건강 상태는 어떤가.

“여기 보라, 지금 안쪽에 이가 하나도 없다. 1년 반 사이에 잇몸이 다 무너져 내렸다. 서울 노량진에서 학원 강사로 일하던 남동생도 같이 살자고 내려오라고 했는데, 당뇨병 합병증이 깊어졌다. 남편은 명예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었는데, 법원에서 한 번씩 통지서 같은 게 날아올 때는 심장이 쿵쿵한다. 그게 아닌데도 나가면 사람들이 범법자라고 손가락질하는 것 같다. 익산시는 아직 소송이 끝나지 않았는데도 가축전염병예방법 위반 농가라며 지원을 싹 끊었다.”

-1인 시위는 어떻게 이어나갈 계획인가.

“매일 익산에서 청와대 앞까지 기차를 타고 출퇴근할 예정이다. 날씨가 싸늘해지는 지금이 농장 방역에 가장 집중해야 할 때라 어쩔 수 없다. 남편은 닭 키우고, 밥 주고, 동생은 배송해야 하니 손이 부족하다. 정부가 말한 대로 예방을 하려면 지금부터 애를 써야 하는데, (양계장이 모인) 우리 동네에서조차 방역 초소 하나 세워진 게 보이지 않는다. 이러고 AI 발발하면 또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으로 닭 살처분할텐가.”

신소윤 기자 y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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