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멀피플]
과잉육식 시대에 발생한 아프리카돼지열병
‘화근’ 지목된 멧돼지, 비과학적이고 잔혹하게 도살돼
과잉육식 시대에 발생한 아프리카돼지열병
‘화근’ 지목된 멧돼지, 비과학적이고 잔혹하게 도살돼
아프리카돼지열병의 확산을 막겠다며 정부가 진행 중인 멧돼지 학살은, 이제 기업이 되어버린 축산 농가, 그들의 배를 불리는 고기 산업만을 살리는 정책이다. 게티이미지뱅크
우리 국민의 고기 소비량이 늘어나면서 하루에 2400여 마리의 소와 4만6000여 마리의 돼지들이 도살된다. 양치질을 하는 3분 동안 5마리의 소와 95마리의 돼지가 죽는다. 게티이미지뱅크
정부의 대책은 언제나 무차별 살처분 잔뜩 몸집을 불려 놓은 고기 산업에 바야흐로 전염병의 세상이 다가왔다. 아프리카돼지열병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지금은 구제역 및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 특별 방역기간(2019.10.01~2020.2.29)이기도 하다. 구제역은 관심, 조류 인플루엔자는 주의, 아프리카돼지열병은 심각 단계로, 가금이나 돼지를 키우는 농가는 평소보다 폐사율이 늘어나면 의심 신고를 해야 한다. 검사결과가 양성이면 발생 농장은 물론 방역대 내 인근 농장 모든 동물을 모조리 살처분하기 위해서다. 마치 우리나라를 포위하듯 중국 몽골 베트남 캄보디아 라오스 미얀마 그리고 북한 등에서 아프리카돼지열병이 발생했다. 정부는 아프리카돼지열병 바이러스 국내 유입을 막기 위해 지난 4월 정부 합동 담화문까지 발표하며 축산물 국내 반입을 금지했지만 소용없었다. 아프리카돼지열병이 발생한 이후로는 방역대를 10㎞까지 확대하는 것도 모자라 시 단위의 모든 돼지를 싹쓸이 살처분했다. 이동제한 조치가 아프리카돼지열병으로 제일 먼저 발동되었다.
동물권 단체 ‘케어’와 ‘한국동물보호연합’ 회원들이 지난 9월26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아프리카돼지열병’ 방역 및 처분 현장에서 생매장하고 있다고 주장하며 생매장 살처분 중단을 촉구하는 상징의식을 하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흩뿌리는 멧돼지 피로 확산 막을까? 아프리카돼지열병은 전염성이 매우 강하며 직접 접촉으로 감염된다. 감염된 돼지의 피 한 방울로 수백, 수천의 돼지들이 감염 가능하며 바이러스로 오염된 분변이나 사료, 살처분 장비나 인력에 의한 기계적인 확산에다 설치류나 조류 작은 진드기와의 접촉 등 무엇에 의해서도 전염할 수 있다. 이 많은 요소 중 야생 멧돼지로 인한 위험 측정과 이의 관리 방안이 정교하게 먼저 도출되어야 한다는 게 일반적 상식이라 할 것이다. 10월15일 환경부와 국방부는 군사분계선(남방한계선)과 민통선 구역 내 야생 멧돼지 출몰·서식지역을 대상으로 민간 엽사, 군 포획인력 등 민·군의 모든 가용자산을 동원해 멧돼지를 사냥한다고 밝혔다. 그런데 멧돼지 포획의 당위성만 강조될 뿐, 구체적인 방법과 계획은 제시되지 않았거나 제시된 방법도 실효성 면에서 의구심을 자아내는 것들이었다. 방법에 대한 논의나 검증 없이 대규모 ‘사냥’이 시작되었다. 어쩌다 보니 공식적으로 고기 산업 최대의 적이 된 멧돼지는 그다지 예쁘지도 않고 무리로 나타나 농사를 망치곤 해 평소 미웠던지 인도적 원칙도 작동하지 않았다. 언론에서는 즉각 멧돼지 소탕 작전의 결과를 알려왔다. 이틀 동안 민통선 내에서 122마리를 포획, 경기도 전역서 3일간 119마리를 잡았다. 살기 위해 전력 질주하던 멧돼지가 총을 맞고 고꾸라졌다 다시 달아나자 추가 발사로 절명시키는 장면도 보도되었다. _______
‘새끼들도 같이 죽여줬으면’ 상처를 입고 도망가 숨어 서서히 죽는 것보다 낫다고 위안했다. 엽사에게 겨우내 넉 달 품어 낳은 새끼들이 있다면 그들도 모두 찾아 어미와 같이 한방에 절명시켜 달라고 부탁하고 싶어졌다. 어미 없이 그들도 결국 서서히 죽어갈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냥개 예닐곱 마리가 얼굴에 피 칠갑을 한 채 흥분해 멧돼지를 물어뜯게 하고 선혈을 흩뿌리는 멧돼지를 걸레처럼 끌고 다니는 모습에서는 뭔가 가슴에서 뜨거운 게 치밀었다. 그것은 이 방법이 유효한지에 대한 의문이자 비과학적이고 성급한 동물박해 행정에 대한 분노, 그리고 자연에 저지르는 난잡하고 무례한 폭력 행위에 기인한 슬픔이었다. 멧돼지는 가족 단위의 정교한 집단생활을 하는 빠르고 강인한 동물이다. 순간 도약력도 최소 1.5m에서 2.5m에 이른다. 정부가 총기 포획으로 인한 멧돼지의 원거리 이동을 막기 위해 설치한다는 철책의 높이는 사람 키보다 작아 실효성이 극히 의심된다. 혼란의 와중에 정부가 주도하는 멧돼지 소탕 작전에 개인 엽사들도 가세해 멧돼지 사냥에 나서고 있고, 곳곳에서 총살된 멧돼지들이 피 흘리며 끌려다니거나 토치로 태워지고 있다. 질병 감염 예방을 위해 상황이 통제되고 있는 건지 여간 걱정이 아니다. 2년 만에 아프리카돼지열병을 극복해 가장 성공적인 방역 사례로 일컬어지는 체코의 멧돼지 방역도 철책을 이용한 이동제한과 단계적 개체 수 감소 그리고 무엇보다 사체의 엄격한 관리가 핵심이었다. 이런 사정에서 엽견에게 멧돼지를 물어뜯게 하고 피 흘리는 멧돼지 주둥이를 묶어 끌고 다녀 길에 혈액을 흩뿌리면서 혈액 채취는 대체 왜 하고 검사는 왜 하는 건지 알 도리가 없다. _______
살처분과 사냥으로, 지키려는 건 ‘산업’ 이 모든 고통과 소란은 고기로 키워지며 농장이라 불리는 집단 병실 속에서 키워져 곱게 도살돼 우리 식탁에 올라와야 할 돼지들을 위해 불가피하다는 게 정부의 설명이다. 국민 일부도 멧돼지를 진작 박멸했어야 하며 사체나 파먹는 까마귀, 길고양이까지 다 죽여야 한다고 화답하기도 한다. 또한 정부는 기업이 되어버린 축산 농가를 위해 이 와중에도 돼지고기 소비 촉진 운동을 벌이고 있다. 배터지게 먹고 일부가 동물을 이용해 많은 돈을 벌기 위한 고기 산업을 마냥 방어하는 건 이제 아니다. 사는 동안과 죽는 순간의 고통이 지나치게 참혹한 것이 아니었기를 바란다는 말은 차마 못 하겠다. 살처분으로 사냥으로 또한 매일 도살되어 죽어간 모든 돼지의 명복을 빈다. 전진경 동물권행동 카라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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