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 멧돼지 아프리카돼지열병 검출 현황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정부가 아프리카돼지열병(ASF) 바이러스에 감염된 야생 멧돼지의 남하를 막기 위해 경기 북부와 강원 북부 지역에 광역 울타리를 설치하고 멧돼지 포획과 방역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아프리카돼지열병 감염 폐사체가 끊임없이 발견돼 우려가 커지고 있다.
지난 13일 강원도 화천, 양구, 인제 등에서는 4건의 폐사체가 발견됐으며 점차 남동진하는 경향을 보였다. 방역당국은 초긴장 상태다. 특히 인제에서는 겹겹이 둘러쳐진 광역 울타리 바깥에서 멧돼지 폐사체가 발견돼 차단 대책이 시급한 실정이다. 야생 멧돼지에서 아프리카돼지열병 바이러스가 검출된 것은 경기 438건, 강원 446건 등 총 884건에 이른다.
정세균(가운데) 국무총리와 이재명(오른쪽) 경기지사 등이 지난 7월 경기도 포천에서 아프리카돼지열병 방역 현장을 점검하고 있다. 경기도 제공
■ ‘재입식 꿈 꺾일라’ 경기 북부 양돈농가 노심초사
“1년간 텅 빈 축사가 돼지들로 채워져 일단은 기분이 좋습니다. 하지만 바이러스에 감염된 멧돼지들이 계속 돌아다녀 불안하고, 이전 상태로 정상화할 때까지 돈 들어갈 생각을 하면 막막하기도 합니다.”
경기도 연천군 전곡읍에서 최근 중간 크기의 돼지(후보돈) 900마리를 들여와 사육을 재개한 오명준씨는 <한겨레>에 ‘기대 반 우려 반’의 심정을 밝혔다. 오씨는 후보돈들이 어미 돼지로 자라 새끼를 낳아 1년 전에 기르던 1만마리 규모가 돼 출하하려면 앞으로 1년2개월이 더 걸릴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재입식을 하더라도 약 2년2개월 동안 각 농가에서 운영자금을 포함한 비용을 모두 떠안아야 할 판”이라며 “재입식이 너무 오래 걸렸다. 코로나로 빗대면 감염이 우려된다고 커피숍이나 식당의 영업을 1년간 못 하게 한 것과 같다”고 아쉬워했다.
경기·강원 접경지역 주민들도 1년 넘도록 민통선 일대 출입이 통제돼 관광객의 발길이 끊기자 “코로나보다 돼지열병이 더 무섭다”며 정부에 신속한 봉쇄 해제를 요구해왔다. 이 지역 출입은 10월 중순에야 부분 재개됐다.
경기도는 지난해 10월9일 이후 아프리카돼지열병이 발생하지 않자 1년여 만인 지난달 24일부터 지난해 사육 돼지를 살처분한 경기 북부 양돈농가에 돼지 사육을 재개하도록 했다. 재입식은 방역 시설에 대해 농가 내·외부 소독과 세척, 자가 점검, 관할 시·군 점검, 합동 점검, 농장 평가 등 꼼꼼한 점검을 통과한 뒤 농림축산검역본부의 승인을 받은 농장부터 순차적으로 진행된다. 살처분이 이뤄진 김포, 파주, 연천의 207개 농가 중 지난 18일 현재 13개 농가에 돼지 4943마리가 먼저 들어왔다.
아프리카돼지열병은 지난해 9월16일 경기 파주를 시작으로 연천, 김포, 인천 강화 등 4개 시·군 14곳에서 발생한 뒤 사육 돼지에서는 발생하지 않다가 1년여 만인 지난 10월9~11일 강원도 화천군 상서면에서 2건이 발생했다.
야생 멧돼지가 접근하지 못하도록 경기 북부의 한 돼지농장 주변에 울타리가 설치돼 있다. 경기도 제공
■ 정부 ‘울타리 치고, 수렵장 만들고’ 멧돼지 남하저지 안간힘
주춤했던 아프리카돼지열병이 최근 다시 확산 조짐을 보이자 아프리카돼지열병 중앙사고수습본부는 지난 14일 관계부처 긴급회의를 열어 △멧돼지 감염 확산범위 파악 △기존 울타리 보강과 신속한 추가 울타리 설치 △광범위한 지역에서 멧돼지 수색·포획 △설악산 국립공원 내 열병 바이러스 유입 차단 등 방역대책을 강화하기로 했다.
중수본은 “아프리카돼지열병이 야생 멧돼지에서 계속 발생해 위중한 상황”이라며 “양돈농장에서는 울타리 설치, 퇴비사 차단 등 방역시설을 완비하고, 장화 갈아신기, 농장 주변 생석회 뿌리기 등 기본 방역수칙을 철저히 이행하고, 지역 주민은 멧돼지 폐사체를 발견하면 즉시 신고하고 울타리 출입을 최대한 자제해달라”고 당부했다.
경기도와 강원도 등 지방정부들도 다양한 재발 방지 대책을 내놓고 있다.
경기도는 경기연구원 용역을 통해 농장 내·외부에 울타리를 설치해 구역을 나누는 방식의 ‘방역강화 농장모델’을 내놨다. 경기도 관계자는 “아프리카돼지열병 재발 방지를 위해 농장 중심의 예방적 차단방역이 가장 효과적이고 원천적인 해결 방법”이라며 “이번 연구를 계기로 방역시설 개선 지원, 농장별 맞춤형 컨설팅 등을 강화해나가겠다”고 말했다.
강원도는 야생 멧돼지를 통한 바이러스 남하를 차단하기 위해 지난 14일부터 내년 3월31일까지 발생지역 이남 5개 시·군(강릉, 홍천, 횡성, 평창, 양양)에 3015㎢ 규모의 ‘강원도 광역수렵장’을 운영하고 있다. 약 4천명의 수렵 인원이 멧돼지를 사냥할 예정이지만 산세가 험준하고 수렵이 불가능한 지역이 많아 효과를 장담하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한편, 국내 최대 돼지사육지인 충남에서는 멧돼지 저지선이 뚫릴까 봐 살얼음판을 걷는 심정이다. 박종언 충남도 동물방역팀장은 “돼지사육 농가가 기본방역수칙을 잘 지키고 있고, 돼지열병 발생 지역과 교류를 신속하게 차단하는 등 방역대책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고 말했다. 충남의 한 농장주는 “충남이 뚫리면 호남까지 급속히 번져 한국의 양돈산업 자체가 붕괴될 수 있다. 열심히 방역을 하고 있지만 불안한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아프리카돼지열병이란
아프리카돼지열병(African Swine Fever, ASF)은 치명적인 바이러스성 출혈성 돼지 전염병으로, 감염되면 치사율이 거의 100%여서 양돈산업에 큰 피해를 주는 질병이다. 현재 세계적으로 사용 가능한 백신이나 치료제가 없어 국내에 유입되지 않도록 방어하는 것이 최선인 상태다.
이 질병이 발생하면 세계동물보건기구(OIE)에 즉시 보고해야 하며 돼지와 관련된 국제교역은 즉시 중단된다. 우리나라는 이 질병을 가축전염병예방법상 1종 법정전염병으로 지정해 관리하고 있다.
박경만 송인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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