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애니멀피플 농장동물

밸런타인데이, 광화문 한복판…그들은 왜 핏빛 가슴 드러냈을까?

등록 2020-02-17 10:15수정 2020-02-17 14:04

[애니멀피플] 디엑스이 ‘피로 물든 젖꼭지’ 퍼포먼스
강제 임신과 출산, 새끼와 생이별…생애 내내 착취되는 젖소
“피고름 쏟아 우유 생산, 생산력 떨어지면 폐기…고통에 연대해야”
디엑스이 코리아 활동가들이 2월14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계단에서 착유 당하는 동물을 위한 기자회견을 열고 농장에서 착유 당하는 소의 사진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이들은 “폭력에 반대한다면 동물을 향한 폭력도 반대해야 한다”며 착유 당하는 동물의 고통받는 몸을 이 사회에 드러내고자 기자회견을 열었다고 설명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디엑스이 코리아 활동가들이 2월14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계단에서 착유 당하는 동물을 위한 기자회견을 열고 농장에서 착유 당하는 소의 사진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이들은 “폭력에 반대한다면 동물을 향한 폭력도 반대해야 한다”며 착유 당하는 동물의 고통받는 몸을 이 사회에 드러내고자 기자회견을 열었다고 설명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밸런타인데이라는 2월14일 오후 2시. 거리엔 알록달록한 초콜릿 상자들이 진열됐다. 초콜릿 가게엔 줄을 선 손님들로 북적였다. 같은 시각 서울 광화문 광장 한쪽에는 ‘고통의 연대’라고 쓰인 피켓을 든 30며 명의 시민이 줄을 맞춰 서 있었다.

“오늘은 초콜릿을 선물하며 사랑을 표현하는 기념일, 밸런타인데이입니다. … 우리는 어떤 목적이든 누군가 고통받고 억압받는 일은 끔찍한 불평등이라는 것을 압니다. 하지만 우유가 들어간 초콜릿을 먹고 선물하는 일이 끔찍하다는 것을 모릅니다.” 퍼포먼스를 기획한 디엑스이코리아(DxE Korea, Direct Action Everywhere Korea)의 한 활동가가 맨 앞에 서서 외쳤다.

발언이 끝나자 10여 명의 활동가가 일제히 윗옷을 벗었다. 피가 흐르는 듯 붉게 물든 상체가 드러났다. 이들의 분장은 피고름까지 쥐어짜며 착취당하는 젖소들의 신체 일부를 상징한다. ‘피로 물든 젖꼭지’로 명명한 상의 탈의 시위는 착유 당하는 동물의 현실을 알리고, 이들의 고통에 연대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_______
우유는 어떻게 우리에게 오는가

붉은 몸을 드러낸 그들 곁에는 열댓 명의 활동가가 빨간 장미를 들고 양쪽에 섰다. 모든 동물이 원하는 삶을 살 수 있도록 보장받아야 한다는 내용의 ‘로즈법’ 제정을 촉구한다는 의미다.

디엑스이 코리아의 한 활동가가 2월14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계단에서 착유를 당해 서 있지 못하는 젖소의 사진을 들고 고통에 공감하고 연대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디엑스이 코리아의 한 활동가가 2월14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계단에서 착유를 당해 서 있지 못하는 젖소의 사진을 들고 고통에 공감하고 연대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지나가는 시민들은 이들의 외침에 심각한 표정으로 발길을 멈추거나, 일부는 유튜브로 생중계하기도 했다. 시위 15분 만에 출동한 경찰 10여 명은 수건과 담요 따위로 시위대의 몸을 가렸다. 공연 음란 등에 해당할 수 있다는 이유로 시위대를 가로 막고 선 경찰의 현장 지시 사항은 “어서 옷 좀 입으시라고 해”였다.

경찰의 포위에 맞서 활동가가 외쳤다. “여러분이 다 같이 이렇게 와서 보호해야 할 대상은 바로 이 사진 속의 동물입니다.” 사진 속에는 퉁퉁 불은 젖을 한 어미 소와 노끈을 엮어 입을 틀어막은 송아지가 나란히 있었다.

이들이 말하듯 사랑과 낭만으로 포장된 달콤한 세상 뒤에는 고통받는 동물의 몸이 가려져 있다. 젖소는 동화책에 나오는 것처럼 우리에게 늘 우유를 나눠주는 시혜적 존재가 아니다. 젖소도 여느 포유동물처럼, 임신하고 출산을 해야만 모유를 생산할 수 있다.

_______
강제 임신과 출산, 착유

젖소는 일반적으로 생후 14~15개월이면 인공 수정을 거쳐 임신과 출산을 한 뒤 우유를 생산하기 시작한다. 국립축산과학원이 ‘교과서적’이라고 권장하는 적정 착유일수는 305일이다. 착유를 쉬는 기간은 1년 중 60일에 불과하다. 낙농업자는 새끼를 낳은 지 60일이 지나면 암소를 다시 임신 시킨다. 일평생, 몸이 망가져 더는 우유를 생산할 수 없을 때까지 젖소는 1년 365일 우유를 짜내고 임신하고 출산하고 다시 착유 당하길 반복한다.

우유의 진짜 주인인 송아지는 어떻게 될까. 송아지는 태어나자마자 성별에 따라 고기가 될 것인지, 우유 생산 수단이 될 것인지 정해진다. 한국낙농육우협회는 누리집에서 “얼룩소(홀스타인)가 수송아지를 낳으면 한우와 같이 전문적인 사육방법으로 비육시켜 전문고기소 ‘육우’가 되고, 암송아지를 낳으면 키워서 우유를 생산하는 ‘젖소’가 된다”고 설명한다.

송아지는 태어난 직후에만 모유를 얻어먹을 수 있다. 국립축산과학원은 면역력이 충분하지 않은 갓 태어난 송아지에게 생후 30분 이내에 면역 글로불린이 풍부한 초유를 제공할 것을 권장한다. 면역력이 약한 송아지의 생존을 위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생후 5일째부터는 엄마 젖을 떼고 액상 사료를 먹일 것을 권한다.

_______
송아지 입을 틀어막는 이유

어린 소가 엄마 젖을 먹지 못하게 하기 위해 사람들은 송아지 입에 장치를 씌운다. 낙농∙축산업 농가에서 흔히 사용하는 모유 방지기는 뾰족한 가시가 돋친 코뚜레처럼 생겼다. 송아지가 우유를 먹으려고 어미 소에게 다가가면 뾰족한 가시가 먼저 어미 몸에 닿는다. 어미는 통증을 피하기 위해 송아지에게 수유를 거부하고, 이런 행위가 거듭되며 송아지는 젖을 떼게 된다.

모유 방지기를 착용한 소의 모습. 위키미디어 커먼스
모유 방지기를 착용한 소의 모습. 위키미디어 커먼스

농장의 소와 말을 돌본 경험이 있는 ㄱ 수의사는 “낙농업 농가는 우유를 얻기 위해, 송아지의 이유식 시기도 오기 전인 생후 하루~1주일 안에 젖을 뗀다”고 한다.

젖소의 평균 수명은 약 30년이지만 우유 생산에 동원되는 젖소들은 7~10년밖에 살지 못한다. 사람들은 이 기간 동안 젖소에게 최대한 많은 양의 우유를 생산해낼 것을 요구한다.

우리의 욕망을 확인할 수 있는 한 예로, 기록적인 산유량을 기록한 소들을 부르는 ‘슈퍼 젖소’라는 말이 있다. ‘일생 200mL 우유 85만개 생산한 슈퍼 젖소 화제’ ‘생애 총 산유량 17만kg, 기록 경신’ ‘다른 젖소보다 3배 많은 원유 생산한 슈퍼 젖소’…. 언론이 이들을 일컬은 말이다. 사람들은 소가 생산한 많은 양의 우유에는 주목했지만, 이들이 더 오래, 더 많이 착취됐다는 말은 어디에도 기록해두지 않았다. ‘일생’ 우유를 생산한 뒤 도축 당한 소의 마지막 순간에 대해서는 그 누구도 말하지 않는다.

대규모 낙농업의 자동화한 착유 시스템. 게티이미지뱅크
대규모 낙농업의 자동화한 착유 시스템. 게티이미지뱅크

이날 퍼포먼스에 참여한 은영 활동가는 “고통을 느끼는 존재가 황폐해진 현실”에 대해 사람들과 이야기 하고 싶었다고 말한다. 일주일에 한 번 도축장을 찾아가 동물의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하는 그는 ‘폐기처분’ 직전의 젖소들을 마주하곤 한다. 그는 “착유를 많이 당해 젖꼭지가 찢어진 소, 철분이 다 빠져나가 서 있을 수조차 없는 소, 너무 무서워 움츠린 채 울고 있는 소들. 그들 아래에는 너덜너덜해진 젖에서 흘러나온 핏물로 피바다가 돼 있다”고 현장을 묘사한다.

_______
송아지와 우유를 빼앗을 권리가 있는가

우리가 일상에서 가장 자주 만나는 소는 한 조각 고깃덩이 혹은 우유의 생산자에 불과하지만, 사실 소는 매우 사회적이며 감정을 표현할 줄 아는 동물로 알려져 있다. 심지어 최근 연구에는 소들이 각자의 개별성에 따라 다른 목소리를 표현할 수 있을 정도로 지능이 발달한 동물로 밝혀졌다.(▶▶‘다 같은 ‘음매’ 아냐, 젖소도 ‘제 목소리’ 있다’)

그런 감정적인 동물의 눈을 수백번 마주친 은영 활동가가 퍼포먼스 현장에서 목에 핏대를 세우며 말했다. “우리가 어떤 행복과 자유를 송두리째 빼앗아버린 건지 상상하고, 폭력에 반대하는 당신과 모두를 위한 동물의 권리를 위해 고통에 연대할 필요가 있다.”

이런 목소리에 지지를 보내듯 지난 9일(현지시각)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영화 <조커>로 남우주연상을 받은 호아킨 피닉스는 말했다. “엄마의 고통스러운 울음에도, 인간은 소를 인공수정시켜 그의 아기를 훔칠 자격이 있다고 느낍니다. 그리고 인간은 송아지를 위한 우유를 빼앗아 우리의 커피와 시리얼에 넣지요.”

신소윤 기자 yoon@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애니멀피플] 핫클릭

누워서 하늘로 오줌 쏘는 분홍돌고래…영역 표시일까 놀이일까 1.

누워서 하늘로 오줌 쏘는 분홍돌고래…영역 표시일까 놀이일까

온난화로 따뜻해진 도시, ‘서울쥐’에겐 천국 2.

온난화로 따뜻해진 도시, ‘서울쥐’에겐 천국

인도네시아 열대어, 통영 앞바다까지 올라왔다 3.

인도네시아 열대어, 통영 앞바다까지 올라왔다

우아한 겨울 손님 흑두루미, 전세계 절반이 순천만 찾는다 4.

우아한 겨울 손님 흑두루미, 전세계 절반이 순천만 찾는다

우리나라 천연기념물 수달, 일본 간다…“동물 상호 기증” 5.

우리나라 천연기념물 수달, 일본 간다…“동물 상호 기증”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