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28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리빙스턴에서 디엑스이활동가들이 가금류 사육·가공 기업인 ‘포스터팜’의 도살장 앞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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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과 이틀 사이에 스무 명의 활동가들이 연행됐다. 미국 캘리포니아의 가장 큰 닭 도살장 앞이었다. 9월28일 이른 아침, 우리는 보안 유지를 위해 다른 곳 두 군데를 들러서야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우리가 도착한 곳은 캘리포니아 머시드카운티 리빙스턴에 있는 최대 가금류 사육·가공 기업 ‘포스터팜’(Foster Farms)의 도살장이었다.
_______ 수갑 차는 연습을 하는 활동가들
그곳엔 이미 11명의 활동가들이 도살장 입구를 봉쇄하고 있었다. 그들은 트럭에 몸을 결박한 채 굳건히 버티고 있었다. 국내 유명 육가공업체 ‘하림’ 같은 축산 대기업인 포스터팜은 유명 패스트푸드 체인을 비롯해 미국 곳곳에 닭을 납품한다. 도살장은 기업의 규모에 걸맞게 엄청난 위용을 자랑하고 있었다.
도살장을 둘러싼 연노란 잔디밭에 위에는 닭을 빼곡히 실은 트럭에서 휘날려온 흰 깃털이 수북하게 쌓여있었다. 그 기괴한 평화가 이날만큼은 멈췄다. 활동가들은 트럭 위에 올라가고, 바퀴에 몸을 걸어 묶었다. 나머지 6명의 활동가들은 콘크리트로 가득 찬 드럼통에 몸을 결박했다. 자신의 몸을 이용해 가려진 동물의 현실을 미국 전역에 알리고자 한 것이다.
‘포스터팜’ 도살장 앞에서 락다운 지지시위를 벌이는 디엑스이 코리아 활동가들.
은영 활동가와 나는 지난 칼럼에서 소개한 것처럼 지난 9월23일부터 일주일 간 미국에서 열린 동물해방컨퍼런스(Animal Liberation Conference·ALC)에 참가하고 있었다. 동물해방컨퍼런스는 세계 각국의 풀뿌리 활동가들이 모여 동물권 운동에 대한 각종 강의와 대담, 친목, 트레이닝을 다지는 연례행사다. 컨퍼런스의 대미는 행사 5~6일차 대규모 시민불복종으로 마무리되는데, 올해의 시위는 포스터팜 락다운과 캘리포니아 주지사의 자택 앞 시위로 정해진 것이다.
시민불복종 시위는 전날부터 시작됐다. 활동가들은 전날 진행된 비폭력 트레이닝에서 수갑을 차고 구치소에 투옥되는 것을 실제처럼 시연했다. 경찰 역할을 맡은 활동가들이 실제 경찰 복장을 하고 락다운에 참가할 활동가들을 연행했고, 이들은 수갑을 차고 안전하게 이동하는 것을 연습했다. 대단하지도 특별할 것도 없는 정말 평범한 시민들이었다. 자신이 연행될 것을 각오하고 행동을 기획하는 이들의 모습에 나의 가슴은 쿵쾅쿵쾅 뛰었다.
_______ 도살장에서 주지사의 집으로…
나의 뇌리에 아름다운 장면으로 기억된 ‘연행 연습’이 다음 날 실제로 눈앞에서 펼쳐졌다. 그러나 경찰이 비폭력 시위를 벌인 이 활동가들을 연행하는 데에는 무려 8시간이 걸렸고 그 사이 활동가들은 무려 14명의 닭을 구조할 수 있었다. 구조는 동시다발적으로 곳곳에서 벌어졌다. 활동가들은 닭을 실은 트럭이 멈춘 찰나 순식간에 트럭의 철창을 열고 갇혀있는 두 명의 닭을 구조했고, 도살장 내부에서도 죽음 직전에 두 명의 닭이 구조됐다. 락다운 이후 새벽에도 활동가들은 기업의 농장에 잠입해 또 다른 닭 10명을 데리고 나올 수 있었다.
이날 비폭력시위를 통해 닭 14명가 구조됐다. 사진은 활동가들과 트럭 철창을 열고 닭을 구조 중인 영화배우 알렉산드라 폴. 그는 미드 ‘베이 워치’ 시리즈로 유명하다. 디엑스이 제공
11명의 활동가들은 각각 트럭 위와 바퀴, 콘크리트에 몸을 결박해 도살장 트럭의 진입을 막았다. 디엑스이 제공
온몸을 내던져 도살장을 가로막은 사람들은 어떻게 이런 비폭력 직접행동을 결심하게 됐을까. 이날 락다운 시위와 동시에 공개된 도살장 내부 실태를 담은 영상이 그 이유를 짐작케 했다. 디엑스이 활동가들은 미리 도살장 내부고발자들과 협력해 몰래 설치한 카메라를 통해 도살장 내부의 충격적인 실상을 기록했다. 어린 새들은 거꾸로 매달린 채 끊임없이 목이 잘렸고, 그들의 피로 온 바닥과 벽은 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우리가 마트에서 구매하는 ‘고기’의 포장지에서는 짐작도 할 수 없는 지옥과도 같은 풍경이었다.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농장에서 닭들을 공개구조한 새벽에서 불과 몇 시간 뒤인 9월29일 아침, 활동가들은 곧바로 캘리포니아 주지사 개빈 뉴섬의 자택으로 향했다. 그들은 기후위기로 인해 빈번해진 캘리포니아 산불 현장에서 가져온 재를 집 앞에 쏟아붓고, 방독면을 쓴 채 파이프로 서로의 팔을 결박하여 집 입구를 가로막았다.
주지사의 집 앞으로 행진해 기후위기와 공장식 축산에 항의하는 ‘장례식 퍼포먼스’를 벌였다. 디엑스이 제공
다시 한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도살장에서 바로 주지사의 집 앞으로 행진하다니. 가장 짓밟히다 살해당한 존재들과 캘리포니아 최고 권력자를 대비시킨 대담하고 극적인 연결 때문이었다. 자택 앞에서 활동가들은 ‘장례식 퍼포먼스’를 벌였다. 우리의 미래에 대한 장례식이었다. 엄청난 오염과 기후위기를 만들어내고, 그로 인한 가뭄에 시달리는 와중에도 가장 많은 양의 물을 사용하는 축산 대기업에 천문학적인 예산을 지원한 주지사에게 책임을 묻는 것이었다. 이날 활동가들은 주지사에게 더 이상 공장식 농장, 도살장을 확장하지 않겠다는 모라토리엄을 선언할 것을 요구했다.
_______ 지극히 평범한 우리들의 힘
결국 20명의 활동가들이 연행됐다. 이 글을 쓰는 와중에 도살장을 가로 막은 활동가 11명의 재판일이 확정됐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코로나로 계속해서 미뤄지던 디엑스이 활동가들의 공개구조 재판들도 동시에 재개됐다. 디엑스이코리아가 2019년 벌인 도계장 락다운 사건도 얼마 전 대법원 심리가 결정됐다. 동물권 활동가들은 아픈 동물을 구조한 것, 비폭력적인 방식으로 동물의 고통을 알린 이유로 중범죄 혐의로 기소된다.
동물해방컨퍼런스의 마지막 날인 9월30일 어린이 활동가들은 상원의원들에게 기후위기와 공장식 축산에 대한 책임을 묻는 편지를 전달했고, 활동가들은 주 청사 앞마당에 죽어가는 동물들의 그림을 그렸다. 디엑스이 제공
락다운 한 활동가들을 지지하는 시위를 하던 도중 은영 활동가(왼쪽)와 나는 도살장 입구 바닥에다 분필로 동물권 운동의 메세지를 남겼다.
그러나 이 모든 재판들은 동물의 현실을 드러내는 자리가 될 것이다. 중요한 것은 폭력의 진실이 더 널리 퍼져 나가고, 널리 알려질수록 동물권에 동참하는 사람들이 늘어날 것이란 희망이다. 올해 동물해방컨퍼런스는 무엇보다 그런 희망이 절실히 느껴진 자리였다. 이미 거대한 전환은 시작이 되었다. 그 변화의 흐름에는 지극히 평범한 활동가들이, 시민들이 있었다. 이제 우리 모두가 이 흐름에 응답할 차례다.
글 섬나리 디엑스이·서울애니멀세이브 활동가, 사진 디엑스이 코리아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