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작가 로버트 메이의 책 ‘루돌프, 빨간 코 순록’(왼쪽)의 이야기를 과학적으로 검증한 논문이 2012년 나왔다. 순록의 코에는 모세혈관이 빽빽하고 적혈구가 풍부해 실제로 붉다는 내용이다. 위키피디아코먼스, 영국의학저널(BMJ) 제공
자연과 동물의 세계는 알면 알수록 신비롭고 경이롭습니다. 애니멀피플의 주간 뉴스레터를 담당하는 댕기자(견종 비글·6살)가 36년차 환경전문기자 조홍섭 선임기자에게 신기한 동물 세계에 대해 ‘깨알 질문’을 던집니다.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동물 버전 ‘홍섭스 애피랩’ 전문은 애피레터에서 무료로 볼 수 있습니다. ▶▶애피레터 구독신청하기 : 검색창에 ‘댕기자의 애피레터’를 입력하세요!
Q 댕기자가 묻습니다
선배님, 크리스마스가 코앞입니다. 댕기자도 산타 할아버지에게 선물을 받을 수 있을까요. 산타 오시는 길을 루돌프 코가 밝게 비춰줘야 할 텐데! 그나저나 정말 캐롤에 나오는 것처럼 루돌프 코는 빨갛고 빛나는 게 맞나요?
A 조기자가 답합니다
올겨울 눈도 많고 날씨도 추워 ‘빛나는 빨간 코’ 순록인 루돌프의 활약이 어느 때보다 기대돼. 종일 밤이 계속되는 혹독한 북극의 하늘을 밝히면서 산타클로스의 썰매를 끄는 순록들을 이끄는 모습이 생생하게 떠오르네. 근데 그게 가능할까? 물론, 가능하지. 수많은 아이가 산타의 선물을 받는 게 증거잖아. 오늘은 루돌프의 빨간 코가 어떻게 가능한지만 알아볼게.
먼저 루돌프의 탄생 과정부터. 1939년 미국 작가 로버트 메이(1905~1976)가 낸 ‘루돌프, 빨간 코 순록’이란 책의 주인공으로 태어났어.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어린이를 위한 책을 써 달라는 백화점의 주문을 받고 고심하던 메이는 안개 낀 시카고 거리를 걷다가 빨간 코로 안개를 밝히는 캐릭터를 번개처럼 떠올렸대.
순조롭진 않았어. 편집자는 빨간 코가 알코올 중독자를 떠올리게 한다며 탐탁지 않게 생각했대. 난관을 돌파하게 한 건 빨간 코 때문에 구박받던 어린 순록이 나중에 산타의 썰매를 끈다는 멋진 스토리였지. 어린이판 아메리칸 드림이었어. 책은 600만 부나 팔렸고 루돌프는 크리스마스의 상징이 됐지.
메이는 순록이 어떻게 생겼나 보려고 편집자와 함께 시카고 링컨동물원에 가보기도 했어. 근데 순록 이미지 검색한 적 있어? 코가 빨개? 분홍빛을 보기도 힘들지. 루돌프가 특별한 순록이니까 그럴 텐데, 그렇다면 모두 지어낸 이야긴가?
여기서 반전이 나와. 루돌프의 코를 과학적으로 연구한 논문이 나왔어. ‘영국 의학 저널(BMJ)’이라고 제법 권위 있는 학술지가 2012년 12월에
‘왜 루돌프의 코는 빨간가: 관찰 연구’란 제목의 논문을 실었어. 네덜란드와 노르웨이 의학자들이 건강한 성인 5명과 성체 순록 2마리를 대상으로 실험한 내용을 보고한 거야.
실험해 봤더니 순록의 코에는 모세혈관이 빽빽하고 적혈구가 풍부한 것으로 나타났어. 그래서 붉게 보인다는 거지. 코의 모세혈관은 1㎟당 20개로 사람보다 25%나 많았대. 실제로 순록을 트레드밀에서 걷게 한 뒤 열화상 카메라로 찍어봤더니 코끝이 붉게 나와. 뜨겁다는 거지.
이 논문은 대중매체가 아주 좋아해서 자주 인용하지만 학계에서는 별 영향력이 없는 게 사실이야. 루돌프 코에 대해 진지하게 접근한 예가 하나 더 있긴 해. 근데 약간 ‘동심 파괴’ 버전이야. 들을 준비 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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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김지숙 기자
suoop@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