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자유연대 부속 한국동물복지연구소가 26일 ‘승마체험산업 실태조사’보고서를 발간했다. 승마장으로 보내진 퇴역마들은 열악한 환경에서 체험에 동원되고 있었다. 사진은 안과 질환 의심으로 한쪽 눈을 못 뜨고 있지만 체험에 이용되고 있는 말. 동물자유연대 제공
드라마 촬영 중 바닥에 고꾸라진 뒤 사망한 말 ‘까미’, 폐목장에 버려져 굶주리다 구조된 ‘별밤이’,
경찰기마대로 활동하다 어딘지 모를 승마장·사슴농장으로 팔려간 많은 말에겐 공통점이 있다. 모두 한때 경마를 위해 경기를 뛰던 경주마들이다.
경주마들은 은퇴 뒤 과연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동물자유연대 부속 한국동물복지연구소가 퇴역 경주마들이 가게 되는 승마장의 실태를 국내 최초로 조사한 ‘승마체험산업 실태조사-경기도 및 제주도 승마장 사육환경·건강상태 실태조사’ 보고서를 26일 발표했다.
제주 20곳 중 14곳, 영양 이상 상태
한국동물복지연구소(연구소)는 이날 오후 서울 중구 환경재단 레이첼카슨홀에서 연구소가 올해 4~9월 실제 방문한 경기도·제주도의 승마체험시설 48곳의 사육환경과 말 건강 상태와 국내 승마체험시설 현황, 관련 법령, 해외 사례 등을 발표했다.
조사 결과, 말들은 깔짚(동물 우리의 바닥에 까는 짚이나 톱밥)이나 물이 제대로 제공되지 않는 환경에서 사육되고 있었다. 한쪽 눈이 실명되거나 여러 건강상의 문제가 관찰됐지만 제대로 된 처치를 받지 못한 채 체험에 동원되고 있기도 했다. 또 정신적 스트레스 징후인 이상행동도 다수 관찰됐다.
26일 오후 서울 중구 환경재단 레이첼카슨홀에서 한국동물복지연구소 이혜원 대표가 발표를 하고 있다. 동물자유연대 제공
연구소는 총 488개소의 승마체험시설 가운데 시설이 가장 많은 경기도와 관광·체험을 통한 말 이용이 두드러진 제주도 두 곳을 조사 지역으로 선정했다. 경기도 승마장 28개소, 제주도 승마장 20개소를 이용객으로 가장하고 방문해 조사를 진행했다.
조사결과 승마장에서 보유한 다수의 말에게서 건강상 우려가 발견됐다. 동물의 건강을 가장 일반적으로 평가하는 마체상태점수를 기준으로 너무 마르거나 비만한 개체가 있는 시설이 10곳 중 7곳에 달했다. 경기도의 경우 28개소 중 22개소(78.6%)의 말들이 적정 체중을 벗어나 있었다. 제주는 총 20개소 중 14개소(70%)에 영양 이상 상태인 말을 보유하고 있었다.
참고로 연구소가 확인한 승마체험시설은 농어촌형 승마시설이 273개소(55.9%)로 가장 많고, 이어 체육시설 승마장이 137개소(28.1%), 기타 승마시설이 78개소(16%)로 집계됐다. 지역별로는 경기도가 108개소(22.1%)로 가장 많았으며 이어 제주도 75개소(15.4%), 경상북도 72개소(14.8%), 경상남도 45개소(9.2%) 등의 순이었다.
영양상태가 좋지 않아 지나치게 마른 말(왼쪽)과 발굽 관리가 안되어 일부가 갈라진 발굽 상태. 동물자유연대 제공
물·깔짚 없고…식분증 등 이상 행동도
육안으로 확인 가능한 병변이 관찰된 곳도 절반이 넘었다. 말들에게서는 상처 및 흉터, 부분 탈모, 안과 질환, 출혈 등 건강상의 문제가 발견됐다. 말 건강 관리의 핵심으로 꼽히는 발굽 역시 경기도 5곳, 제주도 4곳에서는 제대로 관리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심지어 제주에서는 한쪽 눈을 제대로 뜨지 못하는 말도 승마 체험에 이용되고 있었다.
연구소는 말들이 신체적 문제뿐 아니라 심인성(환경·심리적 요인에 의한) 이상 행동을 보이는 경우도 다수라고 밝혔다. 말들이 스트레스를 받을 때 보이는 이상 행동인 여물통 물기(Crib-biting), 공기 흡입(Wind-sucking), 사물 핥기(Environment licking), 몸 흔들기(Weaving) 등이 문제 행동이 다양한 형태로 관찰됐고, 제주에선 자신의 배설물을 먹는 식분증을 보이는 개체도 발견됐다. 그러나 말들의 건강 검진, 치료를 정하는 규정은 전무하다는 것이 연구소의 설명이다.
깔짚이 부족한 마방의 모습(왼쪽)과 이물질에 오염된 물그릇. 동물자유연대 제공
보고서는 말에 대한 관리 소홀 및 부적절한 사육 환경 실태도 지적했다. 조사 업체 90% 이상이 마방에 깔짚을 제공하지 않거나 일부에게만 제공됐으며, 신선한 물이 충분히 제공되지 않는 업체도 60~90%에 달했다. 또한 실외마사가 있는 승마장에서는 말을 결박해 행동반경을 제한하는 곳이 다수 발견됐는데 제주 방목지의 경우, 관광 승마 체험을 위해 말에게 안장을 얹은 채 장시간 대기시키는 업체가 절반 이상(58%)인 것으로 조사됐다.
5살에 은퇴해 승마장으로…복지 체계 반드시 필요
보고서는 퇴역마와 승마체험시설을 제대로 관리하기 위해서는 현행법의 개정과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현재 말과 관련한 법률은 말산업육성법, 체육시설법, 한국마사회법, 동물보호법 등이다. 그러나 말산업육성법, 한국마사회법은 말 관련 산업, 번식 등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 말의 생명 보호 및 복지를 다루지 않고 있다. 동물보호법 또한 말 관리 혹은 사육환경, 복지를 정하는 내용을 담고 있지 않다. 연구소는 △말 관리 및 말복지 관련 법안 마련 △말 등록 의무화 △승마 관련 영업 구분 지침 마련 △승마장 및 승마시설 관련 법 일원화 △승마장 관리 종사자 의무교육 시스템 구축 △말 학대 발생 시 대응지침 마련 등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사진은 안장을 착용한 채 결박되어 있는 말. 동물자유연대 제공
연구소 이혜원 소장은 “전수조사를 통해 전국 승마체험시설 전반을 파악하고, 동물복지를 고려한 개편이 이루어져야 한다. 국내 정확한 말 자원 현황을 파악하고 말 복지 개선을 위해서는 말 등록 의무화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말에 대한 전문성을 갖춘 기관을 선정하여 학대 상황에 대응하고 더 나아가 말 복지를 위한 시스템 만들어 나가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이날 발표회에 참가한 재활승마학회 김정현 이사는 “평균 수명이 20살에 달하는 말들이 2살이면 경마장에 입성해 5살이면 경기에서 은퇴한다. 5살이면 말들이 성체가 되기도 전인데, 어린 나이에 경기에 내몰렸다가 빨리 은퇴하고 있는 것”이라며 “한해 새로 태어나는 1000~1200여 마리 중 소수만 경마에 적합하며 나머지 대다수는 이른 시기 승마, 교육, 촬영 현장으로 가게 되는 만큼 말 복지 체계가 꼭 마련되어야 할 것”이라고 했다.
‘승마체험산업 실태조사’ 보고서 전문은 동물자유연대 누리집(
https://www.animals.or.kr/report/print/65099)에서 확인할 수 있다.
김지숙 기자
suoop@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