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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은 2010년 티브이(TV)에서 본 ‘구제역 살처분’ 뉴스 영상이었다. 살처분 당하는 돼지는 살아서 구덩이로 밀려 떨어졌다. 죽지 않고 기어 올라왔지만 결국 살처분 차량에 의해 죽음을 맞았다. 죄 없는 돼지가 죽는 5초의 순간이 ‘그린블리스’의 시작이 됐다. 친환경 패션브랜드 그린블리스는 유기농 면으로 양말, 의류, 손수건 등을 제작하는 기업이다. 그린블리스 유신우 대표는 소·돼지가 예방적 살처분을 당하는 모습을 보고 동물과 환경, 건강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2013년 창업한 그린블리스의 양말에는 자연스레 그의 생각들이 담겼다. 그린블리스는 환경에 주는 피해를 줄이기 위해 의류의 경우 염색을 하지 않고, 양말 또한 재고가 쌓이지 않도록 프로젝트별로 제작한다. 유기견, 돌고래, 곰이 새겨진 양말 그가 만드는 제품에는 돌고래, 유기견, 사육곰, 습지, 멸종위기 동물이 등장하고 동물보호법 강화와 펫숍 입양 근절, 생물다양성을 지키자는 메시지가 프린트됐다. 제품을 팔아 난 수익 중 일부는 동물과 환경을 지키는 단체들에 후원금으로 전달됐다. 지난 9월 창간 10주년 행사에서 공개된 내용을 보면, 그간 그린블리스가 제품을 제작해 후원한 단체가 25곳, 협업 단체는 120여 곳에 달했다. [%%IMAGE2%%]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지난 6일 그린블리스는 ‘2023 동물복지대상’ 우수상(환경부장관상)에 선정됐다. 유신우 대표는 이날 수상소감에서 “단순한 양말, 의류, 패션 브랜드가 아닌 동물과 환경에 피해를 최소화하여 만들고, 이를 통해 동물들의 고통이 조금이나마 줄어들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했다. ‘내향인’이라 시상대에 오르는 게 힘들었다는 그는 수상 소감을 꼼꼼히 적어와 단숨에 읽어 내렸다. 그린블리스가 그리는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시상식을 마친 유신우 대표를 6일 서울 마포구 한 카페에서 만났다. “상에 전혀 관심도 없고, 정부 정책에 동의하지 않는 부분도 많아서 수상에 고민이 됐지만, 일단 망하면 안 되니까. 상이 브랜드 알리는 데 도움이 되겠죠.” 10주년 행사 때도 그가 자주 한 말이었다. “망하지 않게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창업 당시보다 더 가난해지고, 흰 머리도 늘고, 나이는 먹었지만 그린블리스를 시작한 것에 후회는 없다고 했다. 창업 4년째 되던 해엔 거의 문을 닫아야 할 정도로 회사가 어려웠다. 가지고 있던 자본금도 바닥나 주변 지인, 친구들에게 도움을 청해야 할 정도였지만 다행히 연말에 한 자동차 기업에서 대량 주문이 들어왔다. 그는 “평소 철학대로라면 거절했을 주문”이지만, 살아남는 게 우선이라고 생각했다. 죽기 전 후회하지 않을 결정은 무엇일까 물론 이후에 들어온 대기업 협업 제안은 대부분 그의 기준에 맞지 않아 성사되지 않았다. “창업 초기 그린블리스의 성장성을 보고 대만 클라이언트가 투자를 제안했지만 싫다고 했어요. 브랜드 철학이 퇴색될 것 같았거든요.” 전국적인 로드숍 체인을 가진 화장품 회사의 협업 제안도 결이 맞지 않다고 생각해 거절했다. 대기업의 빠른 유통과 대량 생산은 ‘예쁘고 편안하게 오래 쓰자’는 그의 철학과는 맞지 않았다. [%%IMAGE3%%] 그가 원하는 브랜드가 무엇이길래? 그린블리스는 종종 ‘한국의 파타고니아’ ‘한국의 프라이탁’과 같은 별명으로 불린다. 두 브랜드 모두 동물의 희생과 소비를 최소화하는 경영 철학으로 유명한 패션 브랜드들이다. 유 대표는 “초창기엔 롤모델이라고 생각했지만 규모가 커지면서 그들의 방향이 맞나 의구심도 들었다. 이제는 한국의 ‘무엇무엇’이 아니라 그냥 그린블리스로 불리고 싶다”고 했다. 그는 여전히 창업 당시 영감을 얻었던 아마존 창업자 제프 베이조스의 ‘후회 최소화의 법칙’을 떠올린다고 했다. 죽음에 가까워졌을 때, 어느 쪽을 택해야 덜 후회할 수 있을까를 떠올리며 결정을 내린다는 것이다. “그린블리스는 ‘인류의 마지막을 함께 하는 브랜드’가 되고 싶거든요.” 친환경 소재를 골라 오래 사용할 수 있는 제품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하는 이유다. 동물·환경을 위한 끊임없는 질문 식물성 유기농 소재를 우선으로 사용하지만 불가피한 합성 섬유를 쓸 때도 있다. 의류는 일부 목, 팔 부위를 제외한 옷 전체를 100%로 유기농 면으로 제작하지만 양말은 탄성을 위해 스판, 폴리에스터들이 들어간다. “합성 섬유는 세탁 때 미세플라스틱이 발생하거든요. 다른 방법을 찾고 싶은데 계속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에요.” 불가피한 선택이지만 계속 환경에 해를 덜 끼칠 방법을 연구 중이라고 했다. [%%IMAGE4%%] 그의 ‘끊임없는 질문’은 일상생활까지 이어진다. “비건 채식을 하면 많은 동물의 살리는 효과가 있어요. 그런데 많은 채식 식재료들이 농약과 살충제를 사용하고, 지엠오(GMO) 제품인 경우도 있어요. 이런 재료들은 나비, 애벌레, 벌을 죽이죠. 그럼 어떤 동물도 희생당하지 않았다고 할 수 있을까요.” 플라스틱 프리와 채식을 실천 하고 있지만 동물권을 지키고 환경을 보호하는 일이 생각보다 단순하지 않다는 이야기다. “주변 지인들은 좀 단순히 생각하라고 해요. 하지만 동물, 환경에 관심 있는 시민 1% 가 아닌 99%에게 알려질 때까지 멈추지 않을 생각입니다.” 김지숙 기자 suoop@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