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끄네집 대문 앞에는 늘 굶주린 길개들이 찾아온다. 히끄가 대문 쪽을 향해 바깥을 내다보고 있다.
제주도에 이주한 지 어느새 5년이 넘어가지만, 이번 겨울은 유난히 혹독했다. 며칠 동안 마을에 고립될 정도로 눈이 자주 왔고, 이 집으로 이사하고 나서 처음으로 수도가 얼었다. 갑작스러운 한파에 사람도 당황스럽지만 매일 밥 먹으러 오는 길고양이들도 오지 않아 아침에 일어나면 밤사이 왔다 갔는지 사료 그릇을 먼저 살피는 나날이었다.
추웠던 제주도에 드디어 봄이 왔다. 봄을 알리는 텃밭에 핀 노란 유채꽃을 보다가 유채꽃 너머로 두 개의 돌덩어리가 보이자, 내 손으로 묻어준 길고양이들이 생각났다. 길고양이에게 혹독하지 않은 계절은 없겠지만, 겨울을 잘 버틴 길고양이가 있는 반면에 그러지 못해 고양이 별로 떠난 아이들을 이야기하려고 한다.
그날 아침 나는 일어나서 세수하려고 욕실에 들어갔다. 우리 집 세면대 앞에는 큰 창이 있는데 나는 양치를 하면서 무의식적으로 밖을 보고 있었다. 그때 길고양이와 함께 내가 밥을 챙겨주는 길개들이 짖으면서 무언가를 쫓아갔고, 발로 괴롭히고 물려고 했다. 안경을 쓰지 않은 나는 그것이 족제비 혹은 큰 새인 줄 알았다. 눈을 찡그려 그것이 무엇인지 발견한 후 “야!” 고함을 치고, 잠옷 차림으로 대문을 박차고 달려갔다.
그것은 검은 새끼 고양이였다. 다행히 개에게는 물리지 않았다. 하지만 두 눈이 고름으로 가득 차서 눈을 뜨지 못하고 있었다. 크기를 보아 태어난 지는 한 달이 넘어 보였고, 건강이 나빠져서 엄마 고양이한테 버려진 걸 본 길개들이 발로 가지고 놀고 있던 거로 보인다. 엄마 고양이는 출산 후에 보금자리가 불안하다고 느끼면 자식들을 새로운 장소로 옮기면서 다른 자식을 지키기 위해서 아픈 자식을 버리기도 한다고 했다.
‘병원에 데려가야 하나, 오늘은 토요일인데, 시내로 가야 하나? 이웃인 한카피님, 점장님도 안 계시는데 어떻게 시내에 나가지? 그렇게 해서 살아난다 해도 월요일에 육지 가야 하는데 누가 이 아이를 돌보지? 지금 우리 집에는 히끄와 임보중인 잔잔이도 있는데…’ 생과 사를 헤매는 작은 고양이 앞에서 나는 머릿속으로 부끄럽게 저울질을 하고 있었다.
고양이를 안으려고 만지자 싫은지 내 손을 물려고 했다. 나도 조금은 무서워 집에 가서 장갑을 끼고 와야겠다 싶다가도 저 멀리 길개들이 지켜보고 있어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 길개들은 내가 자리를 뜨면 새끼 고양이에게 다시 달려들 것만 같았다. 용기를 내어 아이의 뒷덜미를 잡자 얌전히 몸을 맡겼다. 그때 마침 민박 손님이 체크인을 했다. 새끼 고양이를 우선 집으로 데려와 안방에 있는 히끄를 피해서 작은방에 두고 손님을 안내했다.
3분도 채 안 됐을 것이다. 작은방에 다시 돌아갔을 때, 새끼 고양이는 그 사이에 죽어버렸다. 3분도 안 됐는데 몸이 굳은 채 죽어있었다. 집안의 다른 존재를 눈치 챘는지 안방에서는 히끄가 야옹거리며 울었고, 그게 마치 곡하는 소리처럼 구슬프게 들렸다.
텃밭으로 데려가 땅을 파서 묻어줬다. 길개들이 땅을 팔까 봐 큰 돌을 올려놨다. 며칠 뒤, 죽은 아이의 형제로 보이는 고양이가 또 길개의 공격을 받아 죽었고, 먼저 간 고양이 옆에 나란히 묻어주었다. 길개들을 원망하고 싶지는 않다. 책임감 없이 쉽게 개를 키우고, 귀찮아져서 버린 사람들 때문에 길개가 있고, 길고양이가 있기 때문이다.
부디 다음 생애에는 두 눈에 고름이 아닌 예쁜 세상만 담기를…. 내가 목덜미를 잡았을 때 엄마 고양이가 너를 데리러 왔다고 생각하기를…. 너를 누르고 있는 돌의 무게를 엄마 품에 너무 꼬옥 안겨있어 갑갑한 것이라고 느끼기를 감히 바래본다. 그리고 그때 너를 지켜주지 못해서 정말 미안했다.
글·사진 이신아 히끄 아부지
※새 연재 ‘히끄의 탐라생활기’를 시작합니다. 제주 성산일출봉 인근의 작은 마을 오조리에 사는 ‘우주대스타’ 고양이 히끄와 그의 반려인 ‘히끄 아부지’가 살아가는 이야기를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