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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멀피플 인간과동물

‘개답게’ 그냥 아파도 된다고요?

등록 2019-02-25 13:54수정 2019-02-25 15:40

[애니멀피플] 마승애의 내 이웃의 동물
심장사상충에 감염되었지만 방치된 ‘순돌이’
밖에서 키우는 개는 실내에 사는 개보다 모기에 노출될 여지가 많기 때문에 심장사상충에 감염될 가능성이 높다. 게티이미지뱅크
밖에서 키우는 개는 실내에 사는 개보다 모기에 노출될 여지가 많기 때문에 심장사상충에 감염될 가능성이 높다. 게티이미지뱅크
“엄마! 순돌이가 많이 아프대!”

친구와 놀러 나간 아이가 친구 손을 잡고 와서 말했다.

“아프다니?”

아이의 친구인 소망이가 훌쩍이며 말했다.

“순돌이 심장에 병이 생겼대요. 못 고친다고 해요.”

순돌이는 소망이 할머니네 마당에 사는 순하고 활발한 ‘발발이’다. 얼마 전 순돌이가 숨을 몰아쉬고 헉헉댄다고 해서, 동물병원에 가보라고 권해준 기억이 났다. 아이들과 달려가 보니 누워서 헉헉대며 숨을 고르고 있는 순돌이 주위로 순돌이네 식구가 심각한 표정으로 둘러 앉아 있었다. 얼른 할머니께 물었다.

“어떻게 된 일이에요?”

“한솔 엄마 왔우? 동물병원에서 그러는데, 심장에 벌레가 산대. 뱃속에 물도 가득 차고 거기선 못 고친대.”

“심장사상충에 감염되었나 보네요. 복수가 찼다니 말기네요. 심각하군요.”

“심장사상충? 그게 무슨 말이에요?” 아이들이 갸우뚱하며 물었다.

“심장사상충은 모기가 옮기는 기생충이란다. 모기가 개를 물면 모기 몸 속에 있던 벌레가 피를 타고 들어가서 심장에서 살게 되지. 심장에 들어간 벌레는 자리를 잡고 엄청 크게 자라. 너희들 비올 때 지렁이 봤지? 얇고 긴 지렁이 같은 커다란 벌레 여러 마리가 개의 작은 심장 속을 꽉 채우면 심장이 일을 못 해. 그러면 이렇게 아프게 돼. 그대로 두면 개가 죽게 된단다.”

“이런 끔찍한 병이 있다니… 몰랐어요.”

아이들이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소망 할머니가 한숨을 쉬며 이어서 말했다.

“큰 병원 가서 수술하라고 하더라고. 가면 돈이 억수로 들 텐데, 무슨 개한테 그런 돈을 써! 개는 그저 자연스럽게 살다 가는 게지.”

“어머니! 이렇게 아프게 될까 봐 제가 저번에도 심장사상충 예방약 먹여야 한다고 말씀드렸던 것 같은데요. 예방약을 안 먹이신 거예요?”

그러고 보니, 그동안 여러 번 권했고 분명 알았다고 했었는데 어떻게 된 건지 이상했다.

“아! 그게 뭐. 동물병원 가는 것도 귀찮고, 일 년 치씩 사라는데, 몇만원씩 돈을 쓰자니 아깝기도 하고 말이야.”

“몇만원 아끼시려다 수백만원 들게 생긴 거예요!”

“옛날엔 먹다 남은 밥 먹이고, 아무런 약 안 먹여도 행복하게 오래 잘 살다가 갔어. 우리 소망이 영양제도 못 사 먹이는데. 어떻게 개한테 계속 그런 비싼 돈을 들여! 개는 개답게 키우는 게지!”

살짝 언성이 높아지는 것 같아서, 그리고 이쯤 되면 더는 할 말도 없어서 난 우리 아이를 데리고 그냥 집으로 돌아왔다. 소망이네 사정을 모르는 건 아니지만, 너무 서운했다. 수의사로서, 또 동물이 아픈 것을 보지 못하는 내 성격으로 솔직히 그 사정이란 것조차 이해하기 힘들었다.

얼마 전 유기동물 사설보호소를 관리하는 소장님과 설전을 한 적이 있다. 보호소에 새로 들어온, 심각한 피부병을 가진 강아지가 있었는데 민간요법으로만 치료하고 있었다. 아이의 피부병은 분명히 수의학적 치료 없이는 치유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게다가 다른 보호견들도 예방접종은커녕 구충 및 심장사상충 약을 주지 않고 있었다. 나는 조심스레 동물병원에 가보기를 권해보았다.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자기가 최선을 다하고 있으니 참견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동물병원은 돈이 너무 많이 들어서 싫다고, 수의사들 배를 불려줄 생각이 없다는 것이다. 나는 갑자기 돈만 밝히는 수의사가 된 셈이 됐다. 더는 아무 말도 못 하고 돌아섰다.

동물복지에서 말하는 다섯가지 중요한 원칙 중 몇 가지가 생각났다. ‘적절한 수의학적 치료를 받을 수 있는 자유’, 그리고 ‘고통받지 않을 자유’. 이런 생각을 하며 걷다 보니 나도 모르게 우리 아이의 손을 꽉 잡고 말았다.

“앗! 아야. 엄마 왜 그래요? 화났어요?”

“미안해. 너한테 화난 건 아니란다. 잠시 생각을 하다가 그랬어.”

“저도 속상해요. 순돌이는 그냥 이대로 죽어야 하는 거예요? 수술받으면 안 돼요?”

“증상이 이 정도 진행된 개의 심장 수술은 몹시 어려운 수술이거든. 게다가 수술한다고 해도 낫기도 쉽지 않고 말이야. 소망이네가 감당할 수 있을 것 같진 않구나.”

“그래서 화 난 거에요? 돈이 없어서?”

“아니. 그보다는 미리미리 예방해 주었다면 순돌이가 안 아팠을 거란 생각이 들어서 말이야. 왜 동물병원에 가는 걸 그리도 싫어들 하는 걸까? 계속 이야기해도 설득이 안 돼. 그게 화가 난단다. 돈 벌자고 하는 이야기가 아닌데, 하지 않으면 동물이 고통에 빠질 수 있는데, 왜 동물만 자연스럽게 키우고 싶다는 이유로 아무런 의학적 처치를 받지 못해야 하는 건지. 마음이 아프구나.”

다음 날 아침, 소망이네 할머니가 찾아왔다.

“아이들이 너무 마음 아파해. 나도 좀 그렇고…. 뭐 다른 방법은 없우?”

“알아보니, 비수술적인 방법으로도 꽤 장기간 고통을 줄이면서 살아낸 경우가 있다고 해요. 계속 노력해 보시겠어요?”

“그래. 그동안 못 해줘서 좀 미안하긴 해. 뭐라도 좀 해봐야지. 살아있는 생명인데.”

그나마 반가운 마음에 소망 할머니의 손을 꼭 잡아드렸다.

예방할 수 있는 병을 막지 않으면 동물이 더 큰 고통에 빠질 수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예방할 수 있는 병을 막지 않으면 동물이 더 큰 고통에 빠질 수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동물은 아파도 되나요 ?

동물보호법에는 동물보호의 기본원칙이 언급되어 있습니다 . ‘동물의 5대 자유’라는 국제적인 동물복지의 기준에서 출발한 원칙으로,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

제 3조 (동물보호의 기본원칙 )

누구든지 동물을 사육 ·관리 또는 보호할 때에는 다음 각호의 원칙이 준수되도록 노력하여야 한다 .

1. 동물이 본래의 습성과 신체의 원형을 유지하면서 정상적으로 살 수 있도록 할 것

2. 동물이 갈증 및 굶주림을 겪거나 영양이 결핍되지 아니하도록 할 것

3. 동물이 정상적인 행동을 표현할 수 있고 불편함을 겪지 아니하도록 할 것

4. 동물이 고통 ·상해 및 질병으로부터 자유롭도록 할 것

5. 동물이 공포와 스트레스를 받지 아니하도록 할 것

이 가운데, 동물을 고통· 상해 및 질병으로부터 자유롭게 한다는 것은 예방접종을 통해 질병 예방을 하는 것은 물론 다쳤을 때 , 질병에 걸렸을 때 , 신속한 수의학적 치료를 받게 해 고통을 최소화하는 것을 말합니다 .

옛날처럼 자연스럽게 키운다거나 , 돈이 아까워서 등 동물에게 예상되는 고통을 주게끔 만 만드는 것은 동물을 사랑하는 행위가 아닌 방치 혹은 힉대에 해당하는 행위입니다 . 우리가 구호기금을 통해 아프리카의 전염병에 고통받을 수 있는 아이들을 위해 예방약이나 백신 등을 지원하는 것과 같이 동물들도 예상되는 치명적인 전염병으로부터 보호받을 권리가 있습니다 .

마승애 동물행복연구소 ‘공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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